일령이가 제목만 보고 꽂혀서 볼까?말까?하고 있기에 그럼 내가 먼저 봐주지! 하고 빌려온 책이었다. 표지도 예쁘고 여기저기 추천도 많이 받은 것 같기에 기대를 좀 하고 있었는데. 사라진 지구를 걷다 / 에린 스완 ■이렇게 재미없고 안 읽히는 책은 정말 오랜만이었다. 정말 재미가 하나도 없었다. 안 읽히는 것도 재미가 없어서 안 읽혔던 거다. 나는 정말 재미를 하나도 느끼지 못했다. ■그래도 꾸역꾸역 읽기는 다 읽었다. 다 읽었다고 하니 일령이가 기대에 찬 눈으로 어땠냐고 묻는다. 그래서 그냥 이실직고 했다. 절반 정도 읽다가, 아무래도 이건 아닌 것 같아서 대각선 읽기로 대충대충 읽어내렸다고. 그랬더니 대각선 읽기가 뭐냐, 그걸 독서라고 할 수 있냐, 묻는데... 맞아... 그건 읽은 게 아니야..
버마재비는 마흐무드의 기사가 실린 신문이 너덜거리도록 주머니에 넣고 다니며 커피숍에 갈 때마다 세 가지 유형의 정의를 곱씹었다. 신의 정의, 법의 정의, 거리의 정의 운운 하는 단락을 큰 소리로 읽기도 했다. 법의 정의는 실패했지만, 마흐무드라는 놈에게 반드시 신의 정의를 보여주겠어! 친구들 얘기에 따르면, 버마재비는 마흐무드가 바스당원이며, 아랍어 선생이라는 애비는 무신론자라고 비난하고 다닌다고 했다. 마흐무드는 쥐 죽은 듯 집에만 처박혀 지냈다. 저 미친놈이 무슨 짓을 할지 어떻게 알겠는가. 그때 친구 파리드 샤와프가 전화를 걸어 바그다드의 신문사에 일자리가 있다고 알려주었다. 형제들과 상의한 결과 가장 이상적인 해결책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마흐무드가 마이산을 떠나면, 좀 더 차분하게 문제를 해결..
표지를 바꿔가며 끊임없이 나오고 또 나오는 작품이라고 들었다. 그래서 궁금했다. 도대체 무슨 책이기에? 어떤 내용이기에? 모순 / 양귀자 ■책의 뒤에 덧붙은 작가의 말 같은 건 잘 읽지 않는 편인데, 은 그것마저 작품의 일부인 것처럼 느껴져 연달아 같은 마음으로 읽어 내렸다. 행복과 불행, 삶과 죽음, 정신과 육체, 풍요와 빈곤. 의 창작노트 곳곳에는 이런 종류의 복합어들이 아주 많이 발견된다. 흘려 쓴 글씨로 붙박여 있는 그 편린들은 아마도 주제에 관한 내 마음의 무늬일 터였다.얼마 전부터 나는 이런 식의 서로 상반되는 단어들의 조합을 보면 그냥 지나치지 못했다. 하나의 개념어에 필연적으로 잇따르는 반대어, 거기엔 반드시 무슨 곡절이 있을 것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그 곡절을 보편성으로 풀어 ..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의 신작이고, 틸다 스윈튼과 줄리안 무어가 나와서,그리고 마침 문화의 날이라서봤다. 룸 넥스트 도어 The Room Next Door ■감독과 배우 외에는 아무런 정보도 없는 상태로 봤다. 그래서 이게 두 여자의 사랑이야기인걸까, 하는 오해를 해버렸다. 하지만 아니었다. 에서 두 사람은 우정을 나눈다. ...아닌가? ■암으로 죽음을 앞둔 마사와 그녀의 곁을 지키게 된 잉그리드의 이야기다. 마사는 '내가 나를 죽이면, 암이 나를 죽이지 못한다'고 말하며 자신의 죽음을 스스로 설계한다. 어찌 보면 잉그리드는 마사의 계획에 휘말려버린 셈인데, 잉그리드의 존재 자체가 비현실적일 정도로 이상적인 사람이라, 여리고 약해보이지만 누구보다도 단단하게 마사의 곁을 지켜준다. ■내가 죽..
세 번째 메시지를 녹음한 다음날, 회사로 진모 전화가 걸려왔다. 그럴 줄 알았으므로 나는 흔연스럽게 전화를 받았다. 양귀자 中 흔연스럽다형용사 기쁘거나 반가워 기분이 좋은 듯하다. 흔연하다형용사 기쁘거나 반가워 기분이 좋다 진짜 초면인 어휘다. 그래도 가물가물 들어본 것 같기도 한데 뜻을 모르겠는 어휘들도 간혹 있는데, 이건 진짜 초면이다. '흔연하다', '흔연스럽다'를 알게 되어 흔연하구만! 요렇게 쓰면 되는 건가? ㅋㅋ 20241026 | 모순 / 양귀자표지를 바꿔가며 끊임없이 나오고 또 나오는 작품이라고 들었다. 그래서 궁금했다. 도대체 무슨 책이기에? 어떤 내용이기에? 모순 / 양귀자 ■책의 뒤에 덧붙은 작가의 말 같은 건 잘 읽karangkaran.tistory.com
어차피 모든 것이 장난같은 일이었다. 장난으로 시작했던 일이 장난으로 끝나지 않으면 얼마나 무렴한가 말이다. 그럴 때 마주치는 진실의 얼굴은 얼마나 낯선가 말이다. 나는 끝까지 진모의 장난을 지원할 생각이었다. 그 애가 이 삶에 대해 무렴해하지 않도록. 양귀자 中 무렴하다1. 형용사 염치가 없다2. 형용사 염치가 없음을 느껴 마음이 부끄럽고 거북하다. '민망하다'나 '무안하다', '머쓱하다' 같은 느낌으로 이해했는데 어휘의 본뜻은 생각했던 것과는 조금 달랐다.그럼 각각 어떤 차이가 있나 한번 알아보기나 하자. 민망하다1. 형용사 보기에 답답하고 딱하여 안타깝다.2. 형용사 낯을 들고 대하기가 부끄럽다. 무안하다 형용사 수줍거나 창피하여 볼 낯이 없다 머쓱하다1. 형용사 어울리지 않게 키가 ..
어머니는 '살인'만 인정하고 '미수'는 무시해 버렸다. 내가 '살인'은 무시하고 '미수'만 인정한 것과는 정반대였다. 하지만 나는 애써 어머니를 설득하지 않았다. 어머니야말로 가장 흥감하게 '미수'를 받아들였을 것이 분명했다. '미수'가 아니었다면 어머니는 쓰러져버렸을 테니까. 양귀자 中 흥감하다¹ 동사 넌덕스러운 말로 실지보다 지나치게 떠벌리다. 흥감하다² 1. 동사 마음을 움직여 느끼다.2. 동사 흥겹게 느끼다. 아니, 어휘 뜻 찾다가 또 모르는 어휘가 나와버렸다. 넌덕스러운 게 뭐람. 넌덕스럽다형용사 너털웃음을 치며 재치있는 말을 늘어놓는 재주가 있다. 몰랐던 어휘를 두 개나 얻다. 흥감하다. 넌덕스럽다. 20241026 | 모순 / 양귀자표지를 바꿔가며 끊임없이 나오..
맨날 유행가만 듣는 주제라고 지청구를 들은 자기 어머니를 위해 주리가 "엄마, 그럼 오디오 끄고 '가시나무' 연주해 주세요. 정말 좋던데?" 하는 것을 보면 요즘 이모가 연습하는 피아노곡은 아무래도 시인과 촌장의 '가시나무'인 모양이었다. 이모가 좋아하는 유행가는 세대를 뛰어넘어 내게도 늘 좋았기에 틀림이 없을 것이었다. 양귀자 中 지청구1. 명사 아랫사람의 잘못을 꾸짖는 말2. 명사 까닭 없이 남을 탓하고 원망함 예시로 든 본문에서는 아마도 2번의 뜻인 것 같다. 이모가 뭘 잘못해서 꾸지람을 하는 느낌이 아니라, 못마땅한 듯 핀잔을 주는 느낌이라. 20241026 | 모순 / 양귀자표지를 바꿔가며 끊임없이 나오고 또 나오는 작품이라고 들었다. 그래서 궁금했다. 도대체 무슨 책이기에? ..
도서관 책장 사이를 활보하다 제목이 눈에 띄었다. 또 아무 생각 없이, 아무 정보 없이 그냥 빌려 옴. 바그다드의 프랑켄슈타인 / 아흐메드 사다위 ■폐품업자 하디의 손에서 태어난 무명씨, 여차저차 무명씨의 정체는 하디라고 밝혀지고 무명씨의 공포에서 벗어나며 마무리되는 이야기 그러나 어딘가에 여전히 살아남아 그 광경을 바라보는 무명씨 시체의 조각들로 몸을 기워가며 살아가는 무명씨는, 그곳이 바그다드이기 때문에, 폭발과 죽음이 일상적인 곳이기 때문에,썩은 육체의 부분부분을 계속 바꾸어 가며 살아갈 것이다 라고 급하게 메모를 해 둔 게 남아 있네. ■사실 처음엔 뭐가 뭔지 바로 이해가 되지는 않았다. 일단 등장인물들의 이름이 낯설어 단번에 관계가 파악되지 않았고, 이야기가 다소 혼란스럽게 서술되..
앞서 를 너무 재미있게 잘 봐서 작가의 다른 작품 중 제일 유명해 보이는 에 바로 도전했다. 20241019 | 제노사이드 / 다카노 가즈아키일령이 담임 선생님이 일령이에게 추천해주심 ↓일령이가 읽고 일령 모친과 나에게 추천함 ↓ 읽음 제노사이드 / 다카노 가즈아키 ■일령이가 읽고 영업할 당시, 내용을 열심히 설명해줬었karangkaran.tistory.com 13계단 / 다카노 가즈아키 ■살인 사건으로 사형을 선고받은 사형수가 있다. 하지만 사건 당시 오토바이 사고로 인해 사건 당시의 기억은 남아있지 않다. 증거와 정황으로 범죄가 인정되어 이제 곧 형 집행을 앞두고 있는 사건을 재수사하고 사건의 진위를 밝혀내는 이야기다. ■익명의 의뢰인으로부터 사건 재수사를 의뢰받아 움직이게 되는 사..
일령이 담임 선생님이 일령이에게 추천해주심 ↓일령이가 읽고 일령 모친과 나에게 추천함 ↓ 읽음 제노사이드 / 다카노 가즈아키 ■일령이가 읽고 영업할 당시, 내용을 열심히 설명해줬었는데 내가 받아들인 것은 "초인류를 말살하려는 세력과 그들을 보호하려는 세력 간의 싸움" 정도였다. 그다지 매력적으로 느껴지지 않아서 책을 읽게 될 줄은 몰랐는데, 일령이의 추천을 매번 모른 척 하기 미안해서 한번 읽어보자 싶었다. 그만큼 처음엔 별로 흥미가 없었다는 뜻. ■근데 이거 생각보다 굉장히 스케일이 크다. 내가 이해했던 것보다 훨씬 심오하고 다양한 인물들과 세력들이, 그 규모가 범지구적으로까지 확대된다. 아니, 범인류적이라고 해야 하나. ■다 읽고 나니 일령이가 설명한 내용들이 이해가 된다. 심지어 꽤 잘 ..
일령이와 일령 모친의 추천이었다. 이건 둘 다 좋다고 했다. 그래서 봤다. 여름을 한 입 베어 물었더니 / 이꽃님 ■듣고 싶지 않은 다른 사람의 속마음이 들리는 아이, 유찬스스로 태어나선 안 되었다고 생각하는 아이, 하지오 전학 온 지오가 곁에 있으면 유찬이에게 다른 사람들의 속마음이 들리지 않는 마법같은 이야기. ■미혼모의 딸인 지오와 화재로 부모님을 잃은 유찬이 유도의 마을 번영에서 만난다. 이래 저래 엮이고 각자가 가지고 있던 상처를 치유하게 되는 이야기이다. ■근데 나는 생각했던 것만큼은 아니었다. 뭐라 해야 하지. 진작 풀 수 있는 오해를 굳이 안 풀고 내내 묵혀둔 찜찜함, 그것을 풀어가는 과정에서 각자의 상처를 가진 남자아이와 여자아이가 서로를 위로하고 성장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감..
나보다 먼저 이 책을 읽은 일령이와 일령 모친의 의견이 갈렸다. 일령 모친은 딱히 흥미를 느끼지 못했고, 일령이는 아주 재미있었다며 나에게 추천했다. 자, 나는 과연 어느 쪽의 취향을 따를 것인가. 설자은, 금성으로 돌아오다 / 정세랑 ■처음에 대강의 설명을 들었을 땐 다소 흔한, 어쩌면 아류같기도 한 설정이 의아했다. 집안의 남자의 역할을 대신해 성을 바꾸고 살게 된 여자의 이야기라고 하면 누구나 쉽게 떠올리게 되는 유명한 이야기가 있기 마련이다. 그래서 기대를 조금 내려놓았고, 어쩌면 약간은 미심쩍어하며 읽기 시작했다. ■결론은, 일령이에게 조금 더 기울어졌다. 처음엔 잘 몰랐는데 읽을수록 매력이 느껴지는 소소하고 잔잔하고 순수하고 순한 맛의 착한 수사 추리극이었다. 추리극이긴 하지만 ..
예전부터 관심은 갖고 있었는데 이상하게 손이 가지 않았다. 희한하지. 그러다 요상한 의식의 흐름으로, 노벨문학상 수상을 계기로 관심이 건너건너 가다 부커상 후보작이었던 저주토끼에 다시 관심이 생겼다. 이참에 읽어볼까하고 빌렸다. 저주토끼 / 정보라 ■진작부터 알고 있었던 유명한 작품임에도 이상하게 손이 가지 않았던 건, 내 취향이 아닐거라는 직감때문이었나보다. 내가 이렇게 감이 좋은 사람이 아닌데 어째 는 이렇게 딱 들어맞았는지. ■단편집이다. 대표작인 라는 제목에서 느껴지는 묘한 으스스함이 전체적으로 녹아 있다. 환상 호러라는 장르라고 한다. 이런 느낌의 소설들을 막연히 '환상소설'이라고 생각했는데 거기서 더 세분화 된 갈래를 알게 되었다. 환상호러. ■저주토끼갉아먹고 갉아먹는 토끼때문에..
어느 날 그녀는 변기 뚜껑을 닫으려는 순간 재빨리 얼굴을 내미는 '머리'의 모습을 보았다. 변기 뚜껑을 집어 던지듯 황급히 닫았다. 몇 번이나 물을 내렸다. 화장실을 나오려다 그녀는 조심스럽게 변기 뚜껑을 열어보았다. '머리'와 눈이 마주쳤다. 물속에서 그녀를 마주 보고 있었다. 주위에는 머리카락이 떠 있었다. 그녀는 다시 변기 뚜껑을 닫았다. 레버를 눌렀지만 물은 더 내려가지 않았다.그녀는 가족들에게 이야기했다."알을 스는 것도 아니고 무는 것도 아니면 그냥 두지 그러니."가족들은 더 이상 흥미를 갖지 않았다. 정보라 中 머리 정보라 작가의 를 읽다 생소한 표현을 발견했다. 그래서 바로 찾아봤는데, 나와 똑같은 궁금증을 가졌던 어느 분이 무려 국립국어원에 문의를 하셨었다! 근데 국립국어원에..
도서관 책장을 지나치다 우연히 보았고 강렬한 제목과 표지의 색감에 반해 빌려왔다. 완벽한 딸들의 완벽한 범죄 / 테스 샤프 ■결론부터 말하자면, 재미 없었다. 그래서 대충 읽었다. 내 취향은 확실히 아니다. ■정신사납게 시점을 오간다. 그게 매력이 되는 경우도 있으나 이 책은 나에게 정신사나움과 산만함을 줄 뿐이었다. 은행강도와 직면한 현재의 상황과 과거 주인공이 겪었던 일들(사기꾼 엄마 밑에서 자라며 해온 여러가지 가식적이고 연극적인 일들, 범죄 공모자로서의 삶 같은)을 오가는 두 개의 시간선이 마지막에 하나로 모여든다. 그래서 소녀가 미래로 나아가는 것까지 보여주며 이야기가 끝난다. ■'뭔가 중요한 것'이 있는데, 자꾸 그걸 숨겨둔 채로 대화를 나누고 이야기를 진행시킨다. 숨겨진 과거가..
워낙 유명한 책이고, 요즘 너무 흥미 위주로만 가볍게 책을 읽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에 슬쩍 끼워 넣어 봤다. 그치만 별로 기대는 하지 않았고, 재미가 없을 것 같다는 선입견에 내가 이걸 과연 읽기는 할까.. 하는 의구심마저 있었다. 스토너 / 존 윌리엄스 ■내가 과연 이걸 읽기는 할까? → YES재미 없을 것 같다 → NO ■뭐지요? 굉장히 잔잔한데 재미있고 흥미롭고 몰입되는 이 소설은?? ■스토너라는 인물의 일대기다. 청년기에서부터 시작된 그의 삶에 대한 이야기는 그의 죽음으로 끝을 맺는다. 아주 차분하고 담담하고 한발짝 물러선 시선으로 스토너를 이야기한다. 그런데 이게 진짜 신기하게 엄청나게 몰입이 된다. 그의 삶이 주는 애환이랄까. 스토너 본인은 너무도 덤덤하고 묵묵한데 그걸 지..
도서관 구경하다가 진짜 말도 안되게 표지와 제목이 마음에 들어서 빌려온 책. 이렇게 충동적으로 빌려온 책이 재미있고 마음에 들기가 쉽지 않은데, 과연. 토스카나의 저주받은 둘째 딸들 / 로리 넬슨 스필먼 ■일단 요즘 날씨가 너무 기가 막혀서 맨날 밖에 나가서 책 읽고 혼자 행복해하고 있다. 요 며칠, 평소보다 훨씬 많은 책을 읽는데 아마도 이 기가막힌 날씨가 한 몫 했을 것. 무엇보다도 의 배경이 이탈리아다보니 요런 화창하고 눈부신 날씨 속에서 책을 읽으면 나도 마치 이탈리아의 한복판에 들어와 있는 것 같은 착각과 환상을 느낄 수 있다─는 건 그냥 내 생각. ■가볍고 발랄하고 경쾌한 이야기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완벽히 맞았고, 거기에 감동도 더해졌다. 여자들만 나오는 여자들 얘기이고, 그들이 나 자..
마침내 그녀는 어렸을 때의 물건들을 모두 깔끔히 정리해서 두 무더기로 나누었다. 그녀가 직접 산 장난감과 장신구, 학교 친구들이 보낸 편지와 비밀 사진, 먼 친척들에게서 받은 선물 등이 한 무더기를 이루었고, 아버지에게서 받은 물건이나 아버지와 직간접적으로 관련된 물건들이 한 무더기를 이루었다. 그녀는 이 두 번째 무더기에 관심을 보였다. 분노도 기쁨도 없는 무표정한 얼굴로 그녀는 그 무더기 속의 물건들을 하나씩 꼼꼼하게 들어내서 폐기했다. 편지와 옷, 인형의 속, 바늘겨레 와 사진. 그녀는 이런 물건들을 벽난로에서 태웠다. 진흙이나 도자기로 만들어진 인형들의 머리, 손, 팔, 발은 벽난로 안에서 고운 가루가 될 때까지 부숴버렸다. 이렇게 태우고 부순 뒤에 남은 재와 가루는 한 곳으로 모아서 자기 방에 ..
동해 무릉별유천지 놀러 갈 때 여행메이트였던 책이다. 오가는 길에 거의 다 읽긴 했는데 마지막 한두 챕터가 남아 바람 솔솔 부는 공원에 나가 마저 끝냈다. 호랑이가 눈뜰 때 / 이윤하 ■많이 들어본 책인 것 같아서 고민 없이 빌렸던 건데, 결론부터 말하자면, 재미없었다. 당혹스러울 정도로 너무 재미가 없었다. ■호랑이 부족의 어린 일원이 우주군의 생도로 뽑혀 간다. 근데 그 직전에 앞서 우주군에 가 있던 동족의 삼촌이, 그것도 우주 함선의 선장인 삼촌이 반란을 저질렀다는 이야기를 듣게 된다. 우리 삼촌이 그럴 리 없어! 뭔가 잘못 된 거야! 라고 생각하고 가는데, 삼촌은 진짜로 반란을 일으킨 거였다. 함선에서 삼촌과 맞닥뜨리게 되고, 나는 누구를 믿어야 하는가 어디를 따라야 하는가 하는 갈등 끝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