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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를 바꿔가며 끊임없이 나오고 또 나오는 작품이라고 들었다. 그래서 궁금했다. 도대체 무슨 책이기에? 어떤 내용이기에?
모순 / 양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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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뒤에 덧붙은 작가의 말 같은 건 잘 읽지 않는 편인데, <모순>은 그것마저 작품의 일부인 것처럼 느껴져 연달아 같은 마음으로 읽어 내렸다.
행복과 불행, 삶과 죽음, 정신과 육체, 풍요와 빈곤.
<모순>의 창작노트 곳곳에는 이런 종류의 복합어들이 아주 많이 발견된다. 흘려 쓴 글씨로 붙박여 있는 그 편린들은 아마도 주제에 관한 내 마음의 무늬일 터였다.
얼마 전부터 나는 이런 식의 서로 상반되는 단어들의 조합을 보면 그냥 지나치지 못했다. 하나의 개념어에 필연적으로 잇따르는 반대어, 거기엔 반드시 무슨 곡절이 있을 것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그 곡절을 보편성으로 풀어 쓰는 직업이 작가 아니겠냐고 홀로 질문을 던지기도 했었다.
<모순>은 그 질문에 대한 하나의 대답이었다.
간략히 설명하기 참 어려운 소설이었다. 그래서 작가의 말을 좀 빌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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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진진. 스물 다섯.
엄마, 아빠, 남동생. 연애 관계에 있는 두 명의 남자. 그리고 이모.
안진진이 아주 담담하고 차분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한줄한줄 쌓아가는 소설이다. 약 30년 전에 쓰여진 소설이라 말투나 분위기가 요즘과는 사뭇 다르다. 그럼에도 안진진의 이야기에 함께 마음이 일렁인다. 아마 그래서 이 소설이 오래도록 사랑받고 있는 거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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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 하나하나를 곱씹게 되는 소설이었다. 어쩌다 문득 멋지고 공감되는 문장이 하나 튀어 오르는 것이 아니라 문단 하나가 통으로 와닿고, 어디까지를 꼽아볼까 하고 읽다보면 한 호흡 전체가 되기 일쑤다. 그래서 그런가, 작가의 말에 보면 '천천히 읽어주셨으면 좋겠다'라는 당부가 이해가 된다. 천천히 곱씹으며 음미할 수 있는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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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진진의 선택이 이해가 되지 않는 건 아니지만 한편으론 탄식이 나오기도 하고. 근데 그게 비단 안진진의 인생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안진진의 어머니나 이모의 삶 역시 그런 것을 보면, 여성의 삶이란 결국 탄식을 자아낼 수밖에 없는 것인가 싶고. 아아. 이렇게까지 비관적이고 싶진 않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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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스토너>를 읽고도 비슷한 느낌을 받았었다. 한 인물의 삶을 비추는데, 그저 따라가기만 하는데도 뭔가 굉장히 마음이 묵직해지고 여운이 길게 남는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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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작가가 우리말을 기가막히게 잘 써서 만든 우리말 문장을 읽는 것은, 과장을 약간 보태면, 황홀할 정도다. 멋지게 꾸민 문장이어서가 아니라, 매끄럽고 부드럽게 이어지는 문장과 맥락들이 너무나 자연스럽게 읽히기 때문에.
덕분에 처음 본 어휘가 몇 개야, 도대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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