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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보다 먼저 이 책을 읽은 일령이와 일령 모친의 의견이 갈렸다. 일령 모친은 딱히 흥미를 느끼지 못했고, 일령이는 아주 재미있었다며 나에게 추천했다. 자, 나는 과연 어느 쪽의 취향을 따를 것인가.
설자은, 금성으로 돌아오다 / 정세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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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 대강의 설명을 들었을 땐 다소 흔한, 어쩌면 아류같기도 한 설정이 의아했다. 집안의 남자의 역할을 대신해 성을 바꾸고 살게 된 여자의 이야기라고 하면 누구나 쉽게 떠올리게 되는 유명한 이야기가 있기 마련이다. 그래서 기대를 조금 내려놓았고, 어쩌면 약간은 미심쩍어하며 읽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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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은, 일령이에게 조금 더 기울어졌다. 처음엔 잘 몰랐는데 읽을수록 매력이 느껴지는 소소하고 잔잔하고 순수하고 순한 맛의 착한 수사 추리극이었다. 추리극이긴 하지만 자극적이거나 기묘한 수법을 파헤치고 사건을 해결하는 것보다는 사람들의 사연과 관계에 깔린 감동같은 게 더 주가 되는 것 같다. 나는 그랬다. 그래서 몇 번이나 좀 울컥, 눈물이 날 뻔 했다. 내기에서 이겨 상을 내려주겠다 하니 모시는 주인의 옷과 갑옷을 달라 한 혜요, 친구를 위해 길쌈대회에서 위험을 무릅쓰는 귀희, 흰매를 진심으로 위하던 미끼 새지기가 나를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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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피소드를 거듭할수록 설자은이 한걸음 한걸음 중요한 인물이 되어가는 것 같다, 했더니 기어코 마지막 에피소드에서는 왕의 측근에까지 이른다. <손바닥의 붉을 글씨>에서 전쟁을 치르고 온 장군의 집안에 벌어진 사건을 해결하더니 <보름의 노래>에서는 길쌈대회에서 일어난 비밀스런 사건을 해결하고, <월지에 엎드린 죽음>에서는 왕의 앞에서 벌어진 매잡이의 죽음을 파헤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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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자은 시리즈1이라는 이름이 붙은 것을 보면 이후로 더 많은 이야기들이 나올 것은 분명하다. 게다가 마지막에 왕이 설자은에게 준 특명을 생각하면 이야기는 무궁무진할 것이다. 다만 그 이야기들도 <설자은, 금성으로 돌아오다>처럼 다소 잔잔하고 부드러운 풍으로 흘러갈 것이라고 생각하면 취향을 좀 탈 수는 있겠다 싶다. 사건이 풀려가는 과정도 주로 대화로 풀려가고, 그마저도 점잖으니 엄청난 흥분이나 고양감을 느끼게 하는 스타일은 아니다. 자은이 설명하는 대로 점잖게 따라가면 우리 정서에 맞는 울림과 감동과, 동정과 연민같은 감정을 느끼게 하는 사연들이 따라 나오며 해결이 되는 스타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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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출신의 목인곤이 아주 쓸모있는 인물로 나온다. 자칫 이 인물이 설자은을 넘어설까 걱정되는데, 작가님이 알아서 잘 하시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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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다 보니 재미있게 본 게 맞는 것 같다. 일령이에게 이 기쁜 소식을 전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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