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 아주 재미있게 잘 읽고 양귀자 작가의 다른 소설들도 봐야지~ 룰루~ 하고 본 건데 이거, 생각보다 묵직하다. 단편을 모아 놓은 소설집인데, 그중 몇 편은 주인공이 동일해서 연작의 느낌이 나기도 한다. 슬픔도 힘이 된다 / 양귀자 ■에서 아버지의 이장 터를 알아보고,이장 보상금을 수령할 겸 나선 가족 여행길의 이야기인 척 하지만 사실은 너무도 끔찍한 군부독재시절의 이야기를 풀어 놓는 , 이후 새로운 직장인 출판사에서 노동조합이 조직되는 이야기를 담은 까지가 하나의 큰 덩어리이다. 여기에 해직 교사들의 이야기인 까지, 결코 쉽지 않은 이야기들이 이어진다. 그러다 맨 마지막, 작가의 자전적 이야기처럼 읽히는 에서야 조금 숨통이 트인다. 사실 이것 역시 시종일관 무겁고 어두운 분위기를 고수하지만 유..
양귀자 中 그 순간의 어디쯤에서 그는 고문자들이 주고받는 말을 듣게 되었다. 내 딸이 피아노 경연대회에서 금상을 받았대. 한 사내가 자랑스럽게 말하였다. 우리 큰놈은 공부는 잘하는데 몸이 약해서 말야, 좀 있으면 고3이 될 텐데 큰일이라구. 고문자들의 대화를 좀더 자세히 듣고 싶었지만 터져나오는 단말마의 비명을 어쩔 수 없었다. 이제는 목이 잠겨서 더 이상 비명을 지르지 못할 정도였고 콧속에서는 타는 냄새, 눋는 냄새까지 피어올랐다. 몸이 약한 아들을 걱정하고 피아노에 재주가 있는 딸을 자랑하고 있는 고문자들 옆에서 그는 몸서리를 쳤다. 소름이 끼쳤다. 최후의 몸부림으로 악을 쓰고 있는 한 인간을 옆에서 지켜보며 아무렇지도 않게 자식 이야기를 하는 고문자를, 아아, 그는 결코 용서할 수 없었다. 눋..
박완서 작가의 작품이 하나의 전집으로 엮여 있어 여기저기 헤매지 않고 바로 골라들 수 있어서 참 좋다. 아마도 발표 순으로 1권부터 순서가 매겨져 있는 것 같아 이번엔 1권인 을 빌려왔다. 나목 / 박완서 ■생각했던 것보다 쉽게 읽혀서 놀랐다. 막연히 그런 부담을 가지고 있었다. 장황한 묘사나 설명이 한페이지 빽빽하게 들어차 있을 것만 같은 느낌. 그런데 굉장히 편하게 읽을 수 있는 그야말로 '소설'이었다. 인물들이 아주 흥미롭게 배치된. ■전쟁의 상흔을 안고 사는 인물과 그 시대에 대한 이야기-같는 거창한 이야기는 작품 분석에 맡겨두고. 나는 꽤 재미난 통속소설같은 느낌으로 읽었다. 그 정도로 잘 읽히고, 인물과 사건이 어렵지 않게 다가온다는 뜻이다. 미군부대의 상점에서 일하는 경아(이경..
아니 CGV는 이런 기획전을 하면서 왜 나한테는 연락을 안 했지??? 이벤트 상세 www.cgv.co.kr 정말 우연히, 아주 오랜만에 CGV 홈페이지에 들어갔다가 영화 목록에서 을 발견하고 어찌나 놀랐는지. 처음엔 동명의 다른 영화인 줄 알았다. 근데 맞았다. 내가 좋아하는 그 이. 나쁜교육 Bad Education / 페드로 알모도바르 Pedro Almodovar ■이걸 영화관에서 다시 보게 될 줄이야 ㅠ_ㅠ 볼 수 있는 시간대가 마침 오늘 딱 하루였는데, 기적적으로 바로 하루 전에 이 기획전 소식을 알게 되어 바로 예매를 하고 하루종일 설렜다. 혼자 실실 웃기도 하고, 넘치는 흥분을 가라앉히려고(?) 영화 보기 전에 일부러 남산 여기저기를 헤매며 기운을 빼기도 했다. ■나는 가엘..
보꾹지붕의 안쪽. 지붕 안쪽의 구조물을 가리키기도 하고 지붕 밑과 반자 사이의 빈 공간에서 바라본 반자를 가리키기도 한다. 박완서 中 나는 이불을 푹 썼다.그래도 들리는 흉가를 흔드는 바람소리. 행랑채의 뚫어진 지붕으로 휘몰아쳐 들어와 부서진 기왓장을 짓밟고, 조각난 서까래를 뒤적이고 보꾹의 진흙을 떨구고, 찢어져 늘어진 반자지와 거미줄을 흔들고, 쌓인 먼지를 날리느라 마구 음산한 휘파람 소리를 내며 돌아다니는 바람은 이불 속에서 귀를 막아도 사정없이 고막을 흔들어 댔다. 집의 구조물을 가리키는 말들이 낯선 게 진짜 많다. 예전에 더그매도 되게 낯설고 처음보는 단어라 단어장에 적어뒀었는데,희한하게 그 이후로는 종종 더그매가 눈에 띈다. 역시 아는 만큼 보이는 건가. 단어장 | 더그매「 캐리 ..
구뜰하다형용사 변변하지 않은 음식의 맛이 제법 구수하여 먹을 만하다 박완서 中 나는 이 중정에서 다시 한 번 행랑채의 이지러진 한쪽을 돌아보고 쫓기듯이 쪽문을 지나 어머니의 손을 놓고 단 하나 불이 켜진 안방으로 뛰어들게 마련이었다.어머니는 까닭 없이 혀를 두어 번 차곤 내 가쁜 숨결이 채 가라앉기도 전에 밥상을 들여오고 이내 구뜰한 찌개 냄새라도 풍기면 나는 쉽사리 마음이 놓였다."먼저 잡수시지 않고... "나는 내가 밥그릇을 반쯤 비울 때까지 맞은편에 우두커니 앉았다가 수저를 들기 시작하는 어머니에게 왠지 짜증 비슷한 걸 느꼈다. 모르는 단어가 쏟아져 나올 것을 각오하고 을 읽기 시작했다.대충 맥락상 알 것 같은 건 넘어가고 완전 처음보는 어휘만 정리해 봐야지.
처음 을 보고 너무 재미있고 좋아서 도진기 작가의 다른 작품을 몇 개 더 찾아봤지만, 그만한 만족을 느끼지 못했다. 그래서 이제 더는 볼 일이 없겠다 싶었는데, 대표작 중 하나로 꼽히는 이 자꾸 마음에 걸렸다. 이건 좀 재미있을까? 이건 좀 만족스럽지 않을까? 기대와 의심을 동시에 품고 결국은 읽기 시작했다. 정신자살 / 도진기 ■아.....? 아아....? 이렇게 된다고...? (1분 전 마지막 장을 덮은 자의 감상입니다) ■호불호가 강할 수 있는 작품이라는 얘기를 들었는데 그럴만 하다. 나는, 음, 으음, 음, 호는 아닌 것 같다. 그렇다고 불호까지는 아니고 그냥 기대했던 것만큼은 아닌 느낌? ■쪽지를 남기고 떠난 아내, 그 후로 무기력한 삶을 살다 자살을 꿈꾸게 된 남자 길영인은 온라인..
메가박스에서 콜롬비아 100주년 특별기획전을 하고 있다. 라인업을 구경하다 컨텍트arrilval이 있는 걸 보았고, 이번달 영화관 나들이는 이거다!!!! 하고 당장 예매했다. 컨텍트 arrival ■이번에야말로 일령이를 제대로 꼬셨다. 테드창의 소설이 원작이고, 영화를 보기 전에 그걸 한 번 읽어보면 어떻겠니? 했더니 순순히 그러겠다고 한다. 근데 별로 내키진 않았는지 미루고 미루다 영화 보러 가는 당일에야 겨우 영화 컨텍트arrival의 원작인 테드창의 를 읽었다. ■ 영화가 원작을 많이 각색했냐고 묻는 일령이에게 별로 각색되지 않았고, 거의 그대로다- 라고 대답했었다. 아니 근데 이게 웬일이야. 다시 보니 각색이 어마어마하게 됐다. 외계인과의 조우 이후 혼란과 불안으로 난리가 나고 국가들간에..
지난번에 을 보고, 그것과 주인공이 같은 일종의 시리즈가 더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20241104 | 목격자들 / 김탁환양귀자의 을 읽은 후, 우리나라 작가가 우리말로 쓴 작품을 읽는 것이 얼마나 편안한 일인지를 새삼 깨달았다. 그래서 외국소설만 보지 말고 한국소설도 좀 봐야지, 하면서 가볍게 읽을 생각으karangkaran.tistory.com 그래서 그 시리즈들도 한 번 다 봐볼까 하는 마음으로 빌렸다. 방각본 살인사건 / 김탁환 ■제목을 많이 들어본 것 같았다. 그래서 나름 기대도 많이 하고 잔뜩 긴장을 하며 읽기 시작했는데. ■역사추리소설이라고는 하는데 추리보다는 역사에 좀 더 방점이 찍혀 있는 느낌이다. 인물과 시대적 분위기를 굉장히 진지하게 다루고 있어서 그런 것 같다. 사건..
방각본 살인사건 中 "그렇다면 형님께서도 검술이나 궁술 외에 다른 걸 하십니까?" 백동수가 자랑스러운 듯 잠시 하늘을 보고 웃었다. "나? 나야 전부 잘하지. 특히 개나 소를 키우는 데 관심이 많다네. 지금도 기린에 산 하나를 얻어 소들을 방목하고 있지. 언제 한번 자네에게 자세한 걸 가르쳐 줌세. 가축을 키우는 것 또한 그 안에 참으로 오묘한 세계가 있으니까." 천하의 협객 백동수가 개나 소를 키운다? 어쩐지 격에 맞지 않는 일인 듯했다. 기린 麒麟현(縣) 이름. 지금의 강원도 인제군(麟蹄郡) 기린면(麒麟面) 지역에 있었다. 본래는 고구려의 기지군(基知郡)이었는데, 고려 때 기린현으로 고쳐 춘천(春川)에 예속시켰다. 동물 기린도 알고, '기린아'라고 할 때의 기린도 아는데 저 기린은 뭔지 ..
자밤 의존명사 나물이나 양념 따위를 손가락을 모아서 그 끝으로 집을 만한 분량을 세는 단위 사라진 지구를 걷다 中 가끔 비는 독약 먹는 꿈을 꾸었다. 물론 그것이 꿈이 아니라는 건 알고 있었다. 아버지는 잠을 자야 할 시간이 되면 비의 수프에 어떤 가루를 한 자밤 넣었다. 고기가 치아에 얕은 막을 형성하면 그 밑으로 싸한 맛이 느껴졌다. 눈앞은 혼탁해졌고, 혀는 마비되어 움직이지 않았다. 하지만 아버지가 옳았다. 자는 게 좋았다. 아버지는 친절했다. 아버지는 수월하기를 바랐고, 비가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기를, 밀쳐내도 울지도 않기를 바랐다. 하필 비에게 안좋은 일이 있었던 부분이다어휴, 다시 봐도 끔찍하네
용원명사 관청에서 임시로 채용한 사람명사 품팔이로 살아가는 사람 박완서 中 수술실엔 의사들의 전용문이 따로 있었지만 영빈은 먼저 병실에 들러 영묘하고 같이 용원 아저씨가 미는 바퀴 달린 침대차를 따라 엘리베이터를 탔다. 20241108 | 아주 오래된 농담 / 박완서양귀자의 을 읽고, 우리말로 쓴 우리문학이 얼마나 편안하게 읽히는지를 새삼 깨달은 뒤 제일 먼저 생각한 게 바로 이거였다. 박완서 작가의 글들을 읽어보면 어떨까. 그동안은 왠지 재미없을karangkaran.tistory.com
엽렵하다형용사 바람이 가볍고 부드럽다형용사 슬기롭고 민첩하다형용사 분별 있고 의젓하다 박완서 中 그때 화제는 단연 영묘의 몸매 관리였다. 누가 아이를 둘씩이나 낳았다는 걸 믿겠느냐, 꼭 처녀 같다는 아내의 찬탄은 질투일지언정 조금도 과장이 아니었다. 어머니도 만족해서 남편 잘 만나 사랑받고 고생 모르니 늙을 일이 뭐가 있겠느냐고 흐뭇해했다. 엽렵한 어머니지만 너무 만족한 나머지 그게 결혼하고 이날 입때 맞벌이로 바스라진 며느리 마음을 상하게 하고, 아들 입장을 난처하게 할 수도 있는 데까지는 생각이 못 미친 듯했다. 20241108 | 아주 오래된 농담 / 박완서양귀자의 을 읽고, 우리말로 쓴 우리문학이 얼마나 편안하게 읽히는지를 새삼 깨달은 뒤 제일 먼저 생각한 게 바로 이거였다. 박완서..
■망원 벨라또띠아 망원역에서 망원한강지구 가는 길에 골목골목 구경하며 다니다 우연히 발견하고 들어갔던 곳이다. 분위기도, 맛도 좋았다. 버섯케사디야와 타코, 타코볼을 시켰던 것 같다. 제일 맛있는 건 버섯케사디야였다. 버섯이 어찌나 쫄깃 탱글하던지. ■대학로 정돈 몇 년만에 간 건지 모르겠다. 아주 오래 전, 정돈이 유명해지기 직전, 대학로에서 우연히 아주 맛있게 먹었었는데, 그 후로 갑자기 너무 유명해져서 갈 때마다 대기줄이 길게 서 있는 걸 보고는 번번이 지나치기만 했었다. 그런데 금요일 저녁인데도 웬일로 대기가 없어서 냉큼 들어갔다. 안심과 새우, 카레가 함께 나오는 세트에 등심을 추가했다. 여전히 부드럽고 포근포근한 식감이다. 예전엔 저 동그랗고 약간 불그스름하게 나오는 안심이 신기하기..
구메구메부사 남모르게 틈틈이 박완서 中 비싼 한복과 터무니없이 장식적인 홈웨어를 구메구메 사나르고, 생활비까지 보태줌으로써 유지됐던 영묘의 시집살이는 바로 재벌가의 스캔들 그 자체였다. 누이는 오빠의 편견이라고 몰아붙였지만. 20241108 | 아주 오래된 농담 / 박완서양귀자의 을 읽고, 우리말로 쓴 우리문학이 얼마나 편안하게 읽히는지를 새삼 깨달은 뒤 제일 먼저 생각한 게 바로 이거였다. 박완서 작가의 글들을 읽어보면 어떨까. 그동안은 왠지 재미없을karangkaran.tistory.com
알겨먹다동사 남의 재물 따위를 좀스러운 말과 행위로 꾀어 빼앗아 가지다. 박완서 中 남을 약 올리는 실력에 있어서는 엄마가 한 수 위였다. 출가외인 좋아하네, 팍팍 돈 쓸 때는 세상에 없는 효녀처럼 추켜세우더니 며칠 신세 좀 지러 왔다고 출가 외인이라. 내가 오빠보다 이 집에 못 한 게 뭐가 있는데? 내가 없었으면 이 집도 유지 못 했어. 다 알면서 왜 이래요. 잊어버렸으면 다시 한 번 읊을까요? 엄마는 이러면서 외삼촌이 몇 번씩 잡혀먹은 집 찾아준 얘기, 외할아버지 입원했을 때 엄마 혼자서 음식 해나르고 입원비까지 전담한 얘기, 장례식 때 엄마 쪽에서 들어온 부의금이 훨씬 더 많았는데도 장례비로 쓰고 남은 돈을 엄마는 한 푼도 안 찾아간 얘기, 외할머니 회갑 때 해드린 패물과 옷의 목록을 일일이 ..
양귀자의 을 읽고, 우리말로 쓴 우리문학이 얼마나 편안하게 읽히는지를 새삼 깨달은 뒤 제일 먼저 생각한 게 바로 이거였다. 박완서 작가의 글들을 읽어보면 어떨까. 그동안은 왠지 재미없을 것 같아 외면하던 걸, 지금이라면 읽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도서관에 가서 일단 눈에 익숙한 아무거나 빌려 온 것이 이것. 아주 오래된 농담 / 박완서 ■제목은 들어본 적 있는데, 내용은 전혀 몰랐다. 그래서 처음 시작에 등장하는 남자 둘, 여자 하나인 초등학교 동창 셋의 이야기일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그렇다면, 공부 잘 하고 의사가 되기를 꿈꿨던 남자 둘의 경쟁에 관한 이야기일까? 역시 아님. 이야기는 아주 의외의 방향으로 흘러갔다. ■어렸을 때의 희망처럼 의사가 된 영빈과 그의 동생 영묘의 이야기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