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그녀는 변기 뚜껑을 닫으려는 순간 재빨리 얼굴을 내미는 '머리'의 모습을 보았다. 변기 뚜껑을 집어 던지듯 황급히 닫았다. 몇 번이나 물을 내렸다. 화장실을 나오려다 그녀는 조심스럽게 변기 뚜껑을 열어보았다. '머리'와 눈이 마주쳤다. 물속에서 그녀를 마주 보고 있었다. 주위에는 머리카락이 떠 있었다. 그녀는 다시 변기 뚜껑을 닫았다. 레버를 눌렀지만 물은 더 내려가지 않았다.그녀는 가족들에게 이야기했다."알을 스는 것도 아니고 무는 것도 아니면 그냥 두지 그러니."가족들은 더 이상 흥미를 갖지 않았다. 정보라 中 머리 정보라 작가의 를 읽다 생소한 표현을 발견했다. 그래서 바로 찾아봤는데, 나와 똑같은 궁금증을 가졌던 어느 분이 무려 국립국어원에 문의를 하셨었다! 근데 국립국어원에..
마침내 그녀는 어렸을 때의 물건들을 모두 깔끔히 정리해서 두 무더기로 나누었다. 그녀가 직접 산 장난감과 장신구, 학교 친구들이 보낸 편지와 비밀 사진, 먼 친척들에게서 받은 선물 등이 한 무더기를 이루었고, 아버지에게서 받은 물건이나 아버지와 직간접적으로 관련된 물건들이 한 무더기를 이루었다. 그녀는 이 두 번째 무더기에 관심을 보였다. 분노도 기쁨도 없는 무표정한 얼굴로 그녀는 그 무더기 속의 물건들을 하나씩 꼼꼼하게 들어내서 폐기했다. 편지와 옷, 인형의 속, 바늘겨레 와 사진. 그녀는 이런 물건들을 벽난로에서 태웠다. 진흙이나 도자기로 만들어진 인형들의 머리, 손, 팔, 발은 벽난로 안에서 고운 가루가 될 때까지 부숴버렸다. 이렇게 태우고 부순 뒤에 남은 재와 가루는 한 곳으로 모아서 자기 방에 ..
잘코사니 어떻게 그런 일이 벌어졌는지는 아직도 알려져 있지 않지만, 벨로캉 척후 개미들의 보고에 따르면, 그 후로 까망개미들의 둥지 전체를 난쟁이개미들이 차지하게 되었다고 한다. 벨로캉 개미들은 그 사건을 그저 팔자 소관으로 치부하고 심지어는 재미있어하기까지 했다. 라는 뜻의 냄새도 통로에 퍼져 나왔다. 「개미」 中 잘코사니 명사 | 고소하게 여겨지는 일. 주로 미운 사람이 불행을 당한 경우에 하는 말이다. 감탄사 | 미운 사람의 불행을 고소하게 여길 때에 내는 소리. 재미있고 귀여운 말이다. 잘코사니. 잘난 척 하더니 꼴 좋다 ㅋㅋㅋ 요런 의미구만? ㅋㅋ
발씨 수개미와 암개미와 병정개미가 자세를 한껏 낮추고 더듬이를 뒤로 젖힌 채, 통로를 질주하고 있다. 그 통로는 이제 비밀 통로가 될 수 없게 되었다. 그들은 그렇게 암개미 거주 구역을 빠져 나와 아래층으로 내려간다. 얼마 안 가서 좁은 통로가 끝나고 갈림목이 나온다. 거기서부터 네거리가 자꾸 나온다. 그렇지만 발씨가 익은 327호가 낭패스러워하는 동료들을 이끌고 간다. (중략) 지구의 모든 생명들을 위해 아침이 찾아온다. 세 개미가 다시 내려가기 시작한다. 지하 36층, 103683호의 발씨가 익은 곳이다. 103683호는 이제 통로로 나가도 위험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바위 냄새를 풍기는 병정개미들이 거기까지 그들을 따라올 리는 없었다. 「개미」 中 발씨 길을 걸을 때 발걸음을 옮겨 놓는 모습 관용..
서껀 교수는 자기 이야기에 몰두해선 연신 요란한 몸짓을 해가며 왔다갔다 했다. " 아프리카에 흐르는 독혈이라 할 만해. 살아 움직이는 독이지. 그 수도 엄청나다네. 마냥 개미의 한 군체는 매일 평균적으로 50만 개의 알을 낳지. 양동이 몇 개를 가득 채울 만한 양이지. 그러니까 검은 황산이 개울을 이뤄 비탈길도 오르고 나무에도 올라가는 셈이지. 아무것도 그 흐름을 막을 수 없어. 새서껀 도마뱀서껀 곤충 잡아먹는 포유류서껀 운수 사납게 가까이 갔다가는 그 자리에서 형체도 없이 사라지지. 계시록의 한 장면 아닌가! (후략) " 「개미」 中 서껀 / '…이랑 함께'의 뜻을 나타내는 보조사 / 체언의 뒤에 붙어, 해당 체언과 다른 것들을 아울러 가리키는 뜻을 나타내는 보조사 그리고 '서껀'과 같은 보조사를 가리..
두남두다 " 그분이 회사를 떠날 때 무슨 일이 있었나요? " " 우리 간부 중의 한 사람과 어떤 일 때문에 말다툼을 했어요. 그 일에서는 단언컨대... 그 사람이 전적으로 옳았어요. 그 간부가 그의 사무실을 뒤진다는 걸 알고 에드몽이 꾀를 내어 간부를 혼쭐이 나게 만들었지요. 에드몽은 모두가 덮어 놓고 간부만 두남두는 걸 보자, 떠나지 않을 수 없었던 겁니다. " 「개미」 中 두남두다 1. 잘못을 두둔하다. 2. 애착을 가지고 돌보다. 아직 개미 1권을 채 절반도 못 읽었는데 처음 보는 어휘가 넘쳐난다.
반거들충이 난 언제나 반거들충이처럼 일을 했어. 내 이성이 위험이 닥쳐오고 있다고 일러주기만 하면 언제나 하던 일을 그만두었지. 지금 내 꼬락서니가 어떤가 보라고. 위험한 일 한 번 제대로 겪어 본 적도 없고 인생살이에 성공하지도 못한 한 사내의 모습을 보란 말이야. 내친 걸음에 갈 데까지 가보는 기백이 있어야 하는데, 난 한번도 그래본 적이 없어. 베르나르 베르베르 「개미 」1권 中 반거들충이 무엇을 배우다가 중도에 그만두어 다 이루지 못한 사람 아 되게.. 요즘말같다. 비하의 의미를 지닌 어미로 흔히 사용되는 글자가 들어가 있어서 그런가. 생각해보니 '-충이'로 끝나는 말이 원래도 좀 이런 비하나 비난의 의미를 담고 있긴 했구나. (ex.식충이) 그치만 요즘은 여기저기 막 갖다 붙여 남발하고 있어서 ..
책에서 끌신이라는 단어를 보았고, 나는 당연히 이것이 '슬리퍼'의 번역 표현인 줄 알았다. 그래서 와 번역 잘 했네, 하고 있었는데. 끌신 뒤축은 없고 발의 앞부분만 꿰어 신는 신 그런데 연관 단어에 '옛말'이 있다....? 슬리퍼는 참조어란다...? 단순히 슬리퍼의 우리말 표현이 아니라 원래 있던 어휘란 말인가...! 점점 '끌신'이 '슬리퍼'의 번역어가 아닌, 원래 존재했던 어휘라는 느낌이 강하게 들기 시작한다. 정말일까? 정말 '끌신'이 옛날부터 있었던 것일까? 끌신의 옛말인 ㅅㄱㅡ을신(나름 최선을 다해 표기함;)이 17세기 문헌에서부터 나타난다고!! 그럼 진짜 이거 슬리퍼를 단순 번역한 게 아니라 원래부터 있던 개념이었던 거네? 헐 이거 너무너무 신기하다. 서양의 슬리퍼가 알려지고 거기에 맞는 번..
즐거운 식인 /서구의 야만 신화에 대한 라틴아메리카의 유쾌한 응수 임호준 세계 여러 지역에서 보고된 식인 풍습과 달리, 우연하게도 유럽은 역사 이래로 식인 풍습이 그다지 발달하지 않았다. 인류학자 마빈 해리스의 설명에 따르면 유럽 지역의 식량 사정이 다른 곳보다 나았던 것이 이유일 수 있다. 즉 5대 가축인 소, 돼지, 양, 말, 염소 등 동물이 풍부했고 인구 또한 중국처럼 밀집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유럽인들이 사람의 희생을 꺼리거나 사체를 존중했던 것은 아니다. 유럽에는 사람을 불태워 죽이는 풍습이 널리 퍼져 있었고 오랫동안 지속되었다. 해리스에 따르면, 켈트의 전사들은 갓 잘라 낸 적군의 머리들을 이륜 전차에 싣고 다녔으며, 집으로 가져가 서까래에다 주렁주렁 매달아 놓았다고 ..
댈러웨이 부인 中 / 버지니아 울프 그때 클러리서의 표정이 지금도 생각난다. 얼굴이 새빨개지고 일그러지더니 그 말에 테이블을 둘러싸고 앉았던 사람들이 그만 열없어지고 거북해져버렸어. 클러리서가 그런 일에 구애받는 걸 난 책망하진 않았어. 그 시절에 그처럼 곱게 자라난 처녀는 아무것도 모르는 법이니까. 하지만 클러리서의 태도는 거슬렸어. 그래서 나는 이라고 그런 경우에 들어맞는 말을 찾아서 그전처럼 불러본 거야. 이라고. 모두가 열없어했지. 클러리서가 말하는 동안엔 고개들을 숙이고 표정이 달라져서 일어났어. 샐리 시튼이 장난을 치다 들킨 어린애처럼 고개를 숙이고 얼굴이 벌게서 말을 하고 싶지만 겁이 난다는 모양이었던 것도 눈에 선해. 클러리서 때문에 사람들이 놀랐던 거야. 열없다 1. 좀 겸연쩍고 부끄럽다..
댈러웨이 부인 / 버지니아 울프 뒷골목 어느 주점에서는, 그 때문에 어떤 식민지인이 윈저 가를 수모했다는 이유로 말다툼이 벌어지고, 맥주 병이 터지는 일대 격동이 벌어져다. 그 소문은 또 길 건너에서 결혼에 쓸 눈결같이 흰 리본 달린 내의를 사던 소녀들의 귀에도 들어갔다. 아까 지나간 자동차는 표면상의 동요를 가라앉힌 것 같았으나, 사람들 마음속 깊이 숨은 그 무엇을 건드려 일으켰던 것이다. 수모하다 (受侮하다) : 모욕을 주다 흔히 수모를 받다, 수모를 당하다, 수모를 겪다 등으로 쓰이는 경우를 보다 '수모하다'라고 쓰인 걸 보니 많이 낯설었다. 뜻을 찾아보니 이미 알고 있는 것이었는데도. 수모하다. 수모를 하다. 이렇게도 쓰일 수 있구나. / 그나저나 댈러웨이 부인 완전 초반부를 읽고 있는데, 이거 ..
「학교가 끝나면, 미스터리 사건부」 - 윤자영 주민이 답하는 도중 말을 멈추었다. 선화와 선화 부모님의 혈액형이 뭔가 잘못되었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선화의 눈치를 보며 주민이 입을 뗐다. "음, 부모님께서 본인 혈액형을 잘못 알고 있을 수도 있어. 옛날 혈액형 검사에서 종종 틀린 경우가 나온다고 저번에 생명 쌤이 그러셨거든. 다시 검사해 보시면 아마 두 분 중 한 분은 다르게 나올거야." 머릿속 충격이 심장으로 내려왔는지 선화의 가슴이 두방망이질했다. 두방망이질 1. 두 손에 방망이를 하나씩 들고 서로 바꾸어 가며 하는 방망이질. 2. 두 주먹을 쥐고 번갈아 가며 때리거나 두드리는 일. 3. 가슴이 매우 크게 두근거림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두 손으로 무언가를 두드릴 때 '두방망이질'이라고 표현..
공산당선언 리부트 / 슬라보예 지젝 만일 우리가 화폐를 상품 내에 “그 자체로in itself” 존재하는 가치의 이차적 표현형태라 여긴다면, 즉 화폐가 우리에게 단순한 이차적 자원이며 교환을 가능하게 하는 실제적 수단일 뿐이라고 한다면 어떨까. 그럴 경우 좌파 리카도주의자들이 무릎 꿇었던 환영을 다시 불러들이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는 노동의 담지자가 수행한 노동 총량을 적시하고, 그 담지자에게 사회적 생산물에 상응하는 부분에 대한 권리를 부여하는 단순한 증서로 화폐를 대체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담지자: 생명이나 이념 따위를 맡아 지키는 사람이나 사물. 공산당선언 리부트에서 내가 모르는 게 한두 개겠냐마는~ 담지자가 제일 생소해서 골라봤다. 이런 뜻이로군. 하하.
뜻대로 하세요 As you like it / 윌리엄 셰익스피어 사랑에 빠진 사람은 볼이 홀쭉하고 매일 울어서 두 눈이 때꾼하다는데 당신은 멀쩡하지 않소? (로잘린드의 대사 中) 때꾼하다 눈이 쏙 들어가고 생기가 없다 들어본 적 있는 말인데 책에서 만난 건 처음인 것 같다. 듣는 것과 보는 것이 되게 색다른 느낌이다. 굉장히 구어체적인 느낌을 주는 표현인데 셰익스피어의 작품에서 만나니 갑자기 셰익스피어가 급 친근해진다.
젊은 베르테르의 기쁨 / 알랭 드 보통 우리가 철학자들에게 기대할 수 있는 것은 각자의 용렬 함을 극복하는 데 필요한 도움이다. 1. 용렬하다 (庸劣하다) 사람이 변변하지 못하고 졸렬하다. 2. 용렬하다 (勇烈하다) 용맹스럽고 장렬하다. 앗시.. 자존심 상해... 처음에 읽을 때 2번의 뜻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다시 보니 문맥 상 2번이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았다. 어? 뭐지? 사전을 찾아보니 1번의 뜻이 나온다. 알랭 드 보통의 에 나온 문장에서 쓰인 '용렬함'은 '변변치 못하고 졸렬하다'는 뜻이다. 대다수의 우리가 가진 변변치 못하고 졸렬한 모습을 극복하기 위해 철학자들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거다. '용렬하다' 이거 너무 '연패' 같은 어휘네. 똑같이 생겨가지고 완전 정반대의 뜻이잖아.
안 그래도 마루미 번의 살림은 넉넉지 못하다. 따라서 공사를 돕느라 큰 액수의 자금을 내게 되는 것보다는 편한 일이라 다행이지 않느냐고 성시 사람들은 생각했다. 외딴집 中 (미야베 미유키) 성시 성시 城市 성으로 둘러싸인 시가 성시 成市 1. 장이 섬. 또는 시장을 이룸. 2. 사람이 붐빔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성시 盛時 1. 혈기나 세력 따위가 한창인 때. 2. 국운이 흥성한 때. 성시 聲嘶 1. 목이 쉼 2. (한의) 창병이나 후두 따위의 병으로 목이 쉬는 증세 성시 聖時 어진 임금이 다스리는 세상 또는 시대를 높여 이르는 말 성시라는 단어를 처음 본 순간 '문전성시'를 떠올렸는데, 아무래도 그 의미가 아닌 것 같았다. 그래서 검색했다가 '성시'가 이렇게 다양한 뜻을 가진 단어라는 것을 알게 됐다..
히틀러의 음식을 먹는 여자들 로셀라 포스토리노 치글러는 잔디밭에 피크닉이라도 온 것처럼 사과를 크게 한입 베어 물었다. 사과를 깨물어 먹는 소리가 낭랑하고 불길하게 울려 퍼졌다. 그는 가슴을 한껏 내밀고 뒷짐을 진 채 걸어가면서 사과를 씹었다. … 치글러는 이렇게 말하고는 사과 과심을 내 접시 위에 올려놓고 나가버렸다. 베아테가 식탁 너머로 손을 뻗더니 손가락으로 사과 꼭지를 집었다. 나는 마음이 너무 뒤숭숭한 나머지 베아테가 왜 그러는지 궁금하지도 않았다. 치글러가 앞니로 깨물어서 그의 침이 묻은 사과 과심 주변 과육이 벌써 갈변하고 있었다. 과심 : 열매 속에 씨를 싸고 있는 딱딱한 부분 어려운 단어는 아니다. 보자마자 무슨 뜻인지는 알 수 있는 단어였는데, 본 적이 있는 단어인가 싶었다. 그래서 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