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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을 수 있습니다.
속편의 숙명이란 전편의 성공을 발판삼아 힘껏 도약하거나, 발판에 발이 닿기도 전에 허무하게 무너져 내리거나-인 것 같다. 성공과 실패를 너무 극단적으로 표현한 게 아닌가 싶지만, 너무 잘 만든 전편을 두고 있는 속편은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 모, 아니면 도.
나이브스 아웃: 글래스 어니언은 꽤 잘 만든 영화다. 재미도 있고 긴장감을 놓치지도 않는다. 글래스 어니언만을 놓고 보았을 때는 그렇다는 얘기다.
그런데 이 앞에 전편인 나이브스 아웃이 놓이면, 얘기가 좀 달라진다. 상대적으로 글래스 어니언의 매력이 훅 떨어진다. 물론 지극히 개인적인 감상이다. 그러니까, 나이브스 아웃 1편과 비교했을 때 나이브스 아웃: 글래스 어니언이 '나에게' 주는 매력이 상대적으로 덜하고, 덜 흥미진진하고 덜 유쾌하다는 뜻이다.
[나이브스 아웃]은 브누아 블랑을 중심으로 이어지는 세계관이다. 1편에서는 외딴 저택에서 벌어진 유명한 추리소설 작가 할란의 죽음을 두고 추리를 펼쳤고, 2편은 고립된 섬에서 제한된 등장인물 사이에서 벌어진 살인사건을 두고 추리를 한다. 2편의 사건을 단순히 이렇게 표현할 수 밖에 없는 건, 공식적인 홍보 내용이 이거라... 더 얘기하면 스포가 되니까....
아무튼. 1편의 브누아 블랑은 신비로운 매력을 뽐내다 허술한 모습을 보이기도 하고, 인간적인 면모와 천재적인 추리 능력까지 정말 모든 매력을 다 보여준다. 하지만 1편의 주인공은 브누아 블랑이 아니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1편의 주인공은 마르타다. 브누아 블랑은 철저히 중립을 지키며 객관적으로 사건을 해결해야 하는 인물이지만, 어느새 궁지에 몰린 마르타를 살뜰히 보필하는 조력자의 역할을 수행한다. 모든 추리는 브누아 블랑의 머리에서 이루어지고 브누아 블랑이 입에서 흘러나오지만, 전체적인 흐름은 철저히 마르타를 중심에 두고 있는 영화인 것이다. 어느하나 중요하지 않다고 할 수 없는 다수의 등장인물들 사이에서 유일하게 한 발짝 떨어져 적당히 거리를 유지하면서, 혼란한 상황을 차근히 수습하는 인물.
그런데 글래스 어니언에서의 브누아 블랑은 1편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다. 언뜻 보면 글래스 어니언에서 역시 자신은 한 발짝 떨어져 있고,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앤디를 보필하는 역할인 것처럼 보이지만, 뭔가 다르다. 브누아 블랑이 시작부터 초대장을 받으며 시작해서 그런 걸까. 2편은 처음부터 끝까지 브누아 블랑이 주인공이고, 덕분에 브누아 블랑의 매력이 반감된다. 1편에서 속내를 알 수 없는 미스테리한 탐정으로 시작해 인간적인 면모와 정의로움까지 보여주었던 브누아 블랑의 매력을 2편에서는 다 까고 시작하기 때문인 것 같다. 1편의 매력 중 하나는 브누아 블랑이라는 인물에 대한 호기심이다. 그런데 2편에서는 그럴 수가 없다. 그러니 처음부터 등장해서 이야기의 모든 흐름에 관여를 하게 되고, 전체적인 판을 짜는 것마저 브누아 블랑이 되어버리니 다른 인물들이 상대적으로 너무 평범하고 납작해진다. 각자가 가진 개성이 어떤 의미있는 상황을 만들거나 놀라운 반전을 일으키지 못하는 것이다. 정치인은 정치인답고, 과학자는 과학자답고, 연예인은 연예인답고, 인플루언서는 인플루언서답다. 각자의 역할에 충실하지만 그 이상의 반전이 없다.
1편에서는 정말이지 모든 인물들의 개성이 정신없이 튀어나오며 놀라움을 선사했다. 각자가 가진 성격과 사연이 얽히고 설켰고, 어느 하나 허투루 존재하는 인물이 없었다. 모두가 의심스럽거나, 크든 작은 사건과 관련된 모든 실마리를 쥐고 있었다. 촘촘히 짜여진 캐릭터의 성격과 개성은 그만큼 이야기를 치밀하게 했고, 마지막까지 긴장을 놓을 수 없게 만드는 역할을 했다. 정말 어느 하나 허투루 놓인 인물이 없었다.
2편이 아쉬운 이유는 인물이 1편만큼 치밀하게 짜여져 있지 않다는 것이다. 각자의 개성은 뚜렷하나 놀라울 정도로 눈에 띄지 않는 인물..라이오넬...?도 있고, 아마도 1편의 마르타와 같은 역할을 기대했을 인물조차도 마르타 만큼 나의 심금을 울리며 온 마음을 다해서 간절히 응원하게 되지 않는다. 억울함은 있으나 그 성격이 너무나도 다른 탓이다.
사실 글래스 어니언의 줄거리가 공개되었을 때부터 조금 불안하긴 했다. 나는 스케일이 큰 영화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데 글래스 어니언은 1편에 비해 스케일이 너무 커졌다. 장소나 배경의 규모가 확장되면 등장하는 인물도 덩달아 부푼다. 일상을 사는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닌 특별한 사람들의 이야기로 바뀐다. 글래스 어니언의 인물들이 그렇다. 마일스는 세계에서 손꼽히는 부자 사업가이고, 섬에 초대된 인물들은 정치인과 과학자, 연예인과 인플루언서 등이다. TV에서나 접하던 인물들을 영화에서 또 보는 셈이다. 나로서는 그들의 엄청난 비밀과 사건의 동기같은 것들이 전혀 공감되지 않는다. 나는 부자도 아니고, 정치인, 과학자, 연예인도 아니다. 세계가 어쩌고 하는 이야기가 나오는 순간 흥미가 뚝 떨어진다.
1편 역시 유명한 작가와 그 부를 함께 누리는 가족들이 나오지 않았느냐라고 할 수 있겠지만, 그 안에는 지극히 사적이고 가족적인 갈등들이 존재했다. 엄청난 대의가 목적이 아니다. 이기심, 욕심같은 하찮고 어처구니없는 이유로 벌어지는 개싸움일 뿐이다. 물론 그 과정에서 희생자가 생기긴 했지만... 할란 살려내 ㅠ_ㅠ
아무리 생각해도 캐릭터들이 너무 아쉽다. 앤디에게 이입을 해서 봤어야 할 것 같은데, 왜 그것마저도 못 했는지 모르겠다. 사실 앤디라는 캐릭터의 설정에 아쉬움이 크다. 왜.. 그.. 약간 치트키 같은.. 브누아 블랑이 그걸 잘 활용하긴 했지만 그 때문에 이야기의 전체적인 흐름에 브누아 블랑의 영향력이 너무 커졌고, 상대적으로 모든 인물의 매력이 확 죽었다. 인물들이 여기저기서 불쑥불쑥 개성을 드러내고 상황을 꼬아야 재미있는데 그런 부분이 너무나 예측 가능한 방향으로 흘렀다. 너무 강한 사회적 지위를 지닌 인물들었고, 그래서 오히려 너무 평범해졌다.
마지막엔 조금 허탈하기까지 했는데, 중요한 반전 요소이든, 그저 웃음을 주기 위한 인물이든, 뭐라도 할 것 같았던 인물이 정말 아무것도 아니어서, 아, 이건 뭐지 싶었다. 그러라고 넣은 요소일 것 같긴 한데, 별로 재미 없었다.
다 보고 나니 의외로 흥미로운 건 듀크의 엄마다. 가장 독특하고 입체적인 인물인 것 같다. 글래스 어니언에 쿠키가 있다면 듀크 엄마가 주인공이었으면 했다. 그런데 쿠키가 없더라. 듀크 엄마는 이제 못 보는 건가요...? 제일 좋았는데...?
글래스 어니언은 재미있는 영화이긴 하다. 다만 1편과 비교될 수 밖에 없는 속편이라는 게 문제다. 내가 1편을 너무 좋게 봤다. 그래서 아쉬움이 좀 크다. 영화 초반부를 보다 재미 없어서 껐다는 얘기들도 있던데, 그것도 이해가 된다. 본격적인 사건이 벌어지기 전까지 휴양지에 놀러 온 부자와 친구들의 모습은 다소 긴장감이 떨어진다. 그 고비만 잘 넘기면 그래도 재미있게 볼 수 있다. 다만 그 갈등이 다소 뻔하고 트릭이 단순하고 나아가 조금 어이없을 수도 있긴 하다.
보통 이상의 재미는 주는 영화라고 생각했는데 계속 생각해보니 아무래도 나는 이게 참 마음에 안 드나보다. 흑흑. 나이브스 아웃2 정말 기대했는데.... 영화관에서는 왜 개봉 안하나 하는 생각까지 했는데, 영화관에서 봤으면 더 후회할 뻔 했다.
그러고 보니 요새 영화들이 배경을 CG로 넣는 경우가 많은데, 그 효과가 의외로 눈에 잘 띄고 어색하게 느껴져서 큰일이다. 글래스 어니언도 배경을 CG처리한 경우가 많아서 조금 신경이 쓰였다. TV로 봐도 이 정돈데 스크린으로 보면 더 거슬렸겠지.
이것저것 생각나는 것들
넷플릭스가 자막 검수를 되게 엉망으로 한 줄 알았다. 전완점이니, 걸칠한이니.
실망할 뻔 했는데 이게 모두 의도된 것이었다고 해서 안심했다.
돈지라르가 뭔가 한참 생각했네 ㅋㅋㅋㅋㅋㅋ 원문은 piece of shit이라고 한다.
이건 좀 더 생각을 해봐야 할 부분인데, 다 보고 나서 왠지 모르게 킹스맨이 떠올랐다.
콕 찝어 말할 수는 없지만 글래스 어니언은 뭔가 묘하게 킹스맨을 닮았다.
뭘까, 이 찜찜한 느낌은.
뭔가 있을 것만 같았던, 섬을 떠돌아 다니던 미스테리한 남자는
감독(라이언 존슨)의 절친이자 나이브스 아웃 1편의 백인 형사라고 한다.
어쩐지, 낯이 익더라.
근데 이 인물도 참... 결과적으로는 너무 실망스러운 설정 중의 하나였다.
마일스를 연기한 에드워드 노튼의 연기가 가장 인상깊었다.
가장 다양한 모습과 섬세한 연기를 보여준 배우였다.
가만 생각해 보니 글래스어니언이 주는 시각적 화려함이 나에게는 시각적 불편함이 되었던 것 같다.
여성들이 비키니를 입은 헐벗은 여성들이 활보하는 모습 같은 거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비하인드를 듣고 보니 왜 그렇게 눈속임을 활용하고, 관객을 현혹시키려 했는지 모르겠다.
까메오를 등장시키기 전에 주요 인물들을 좀 더 복합적인 인물들로 만들었어야 했고,
눈속임보단 좀 더 짜임새 있는 트릭을 만들었어야 했다.
감독이 되게 신나서 만든 건 알겠다...
어느 리뷰 글을 보니 추리보단 코미디라고 하던데, 그 말에 동의한다.
글래스어니언의 장르는 코미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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