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반응형

 

 

영업당하다

어느 커뮤니티 게시판에서 <소크라테스 패러독스>를 영업하는 글을 보았다. 소크라테스의 재판에 대한 극을 랩으로 풀어낸 공연이라니. 재미있겠군. 그렇게 넘어갈 수도 있었는데, 하필이면 시간이 남아도는 연휴, 집에만 틀어박혀 지내기엔 슬슬 지루해지던 참이었다. 공연 예매 사이트에 들어갔고, 제일 익숙하고 보고 싶은 배우 페어의 공연이 마침 연휴 마지막 날이었고, 게다가 앞열 정중앙 자리가 보라색으로 빛나며 동동 떠 있었다.

이건, 보라는 신의 계시다. 

 

 

스콘(서경대학교 공연예술센터) 1관 첫 방문 

지나다니며 위치는 알고 있었지만 공연을 보러 방문한 건 처음이었다. 입구는 찾았으나 어디로 가야 하나 잠시 둘러보는 사이, 성큼성큼 나를 앞질러 계단을 오르는 사람이 있었다. 아, 저긴가 보군. 열심히 앞사람을 따라 몇 층을 올라갔다. 아니 그런데 여기는 <그때도 오늘>이라는 공연을 하고 있는 곳이다. 아니. 여기가 도대체 어디지; <소크라테스 패러독스>가 스콘 몇 관인지도, 공연장이 몇 층인지도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간 탓이었다. 부랴부랴 공연장을 검색했다.

<소크라테스 패러독스>의 공연장은 스콘1관, 지하 3층이다. 

 

 

스콘1관 D열 정중앙 시야 

공연일을 며칠 남겨둔 시점이었는데도 중앙 자리가 동동 떠있기에 혹시 단차가 안 좋나... 시야가 별론가... 엄청 걱정했는데, 웬걸. D열이면 배우 눈높이~눈높이보다 조금 낮은 정도로 관람하기 아주 좋은 높이였다. <소크라테스 패러독스>는 회전무대장치를 사용하기 때문에 다른 공연보다 높이를 조금 높인 것 같았는데, 그렇다고 쳐도 D열은 아주 굉장히 좋은 자리였다. 게다가 단차도 아주 좋아서 어지간해서는 앞사람 때문에 방해를 받지 않을 것 같았다.

스콘1관 D열 시야: 아주 쾌적함

 

 

감상 

 

아니 이렇게 재밌는 걸 그동안 자기들끼리만(?) 보고 있었단 말이야???!!?!?!?!?!?!!!??? 

 

 

 

극은 앙상블의 노래로 시작된다. 무대 한켠에 소크라테스가 함께 등장하고, 이 때 객석 2층에 멜레토스가 무대를 내려다보고 있다 앙상블의 소개를 받고 무대로 향해 걸어오며 랩을 한다. 멜레토스의 랩은 소크라테스를 법정에 기소한 이유를 설명하고, 한껏 소크라테스를 조롱한다. 소크라테스는 그저 으쓱 해보일 뿐이다. 가끔은 조롱이 담긴 멋진 랩에 호응하며 박수를 보이기도 한다. 멜레토스가 득의양양하게 무대를 마치고 소크라테스가 자기 변론의 시간을 갖는다. 그렇게 둘이 팽팽히 맞서는 것이 모두 랩으로 진행된다.

 

자칫 유치해보이면 어쩌나 우려했던 것과는 달리 랩도 멋있고 그 안에 담긴 각자의 입장과 팽팽한 대립 의견들도 제법 심오하다. 게다가 그 랩을 하는 사람들이 양동근과 치타다. 랩이 가볍거나 볼품없을 수가 없다.

 

무엇보다 좋았던 건 가사의 대부분이 우리말이다. 이게 뮤지컬이라고 생각하면 당연할 수도 있는데, 이야기를 하고 노래를 하는 방식이 '랩'이라고 생각하면 이야기가 조금 달라진다. 랩이라는 장르의 특성상 라임을 맞추는 과정에서, 혹은 멋을 부리는 과정에서 영어의 혼용이 주는 편리함과 까리함을 포기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제작 과정이 새삼 궁금해지는 순간이었다. 랩 메이킹에 배우들이 얼마나 참여를 했는지도 궁금해졌다. 이건 개인적으로 차차 알아보도록 하겠음 

 

그 안에 담긴 이야기에 소크라테스와 멜레토스의 관계가 잘 담겨 있고, 실제 소크라테스의 철학적 사유와 그의 삶에 대한 정보들이 얼마나 진지하게 담겨있는지를 알고 들으면 더 대단하게 느껴진다. 

 

자기 변론과 몇 차례의 논쟁 후 1차 배심원 판결이 이루어진다. 이 때 소크라테스는 220대 280으로 유죄를 선고받는다. 그리고 이어지는 형량 판정의 시간에서 소크라테스는 여전히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는다. 제발 한 번만 무릎을 꿇으라고, 동정이라도 받아 살고 보자고 하는 사람들의 말도 듣지 않는다. 결국 소크라테스는 사형을 선고받는다.

 

소크라테스가 독약을 받아 마시는 장면 대신, 소크라테스트는 독백한다. 양동근 배우의 내공이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긴 독백의 호흡이 전혀 어색하거나 지루하지 않고, 오히려 그 감정을 따라 내가 가슴을 졸이고 안타깝고 애가 타서 두 손을 꽉 쥐게 되는 것이다. 죽음을 앞두고도 전혀 두려워하거나 겁내지 않는, 초연한 모습을 보였던 기원전 400년 경의 철학자가 정말 내 눈 앞에 서 있는 것 같았다. 소크라테스가 살아 있었다면 정말 저런 모습으로 저렇게 말하고 저런 표정을 짓지 않았을까. 

 

 

이렇게만 보면 꽤나 진지하고 무거울 것 같지만 웃음을 주는 포인트들이 제법 많다. 일단 소크라테스를 연기하는 양동근 배우 특유의 능청이나 말장난이 그렇고, 무게를 잡고 있다가도 앙상블이나 소크라테스에게 툭 던지는 치타의 짧은 말 한마디 같은 것들. 이 부분에서는 양동근 배우의 역할이 어마어마하긴 하다. 그야말로 독보적이다. 말투나 몸짓에서, 그리고 스치는 표정으로 분위기를 그야말로 쥐락펴락한다. 느물느물함을 기본으로 깔고 있던 소크라테스가 정색하고 표정을 굳히는 짧은 순간에는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도(?) 너무 무섭고 미안하고 죄책감이 들기도 했다. 저는 당신의 유죄에, 사형에 찬성하지 않았습니다, 소크라테스님 ㅠㅁㅠ

 

 

커튼콜 (부제: 다 외웠어?  ≥∇≤)

커튼콜 때 야광봉을 들고 흔들기도 한다는 얘기는 미리 들어 알고 있었다. 그런데 공연 중의 분위기로 봤을 땐 연뮤덕 특유의 얌전함과 조심스러움이 느껴져서, 커튼콜 때도 이정도겠거니 예상했다. 그런데 웬걸, 극이 끝나고 암전되자마자 여기저기서 야광봉이 켜지기 시작했다. 꽤 많네...? 싶었던 순간 커튼콜이 시작되고 처음엔 주고 받기만 하는 것 같던 소리들이 점점 가사 전체를 집어삼키기 시작했다. 무려 랩 가사를. 오늘이 특별히 더 많은 분들이 따라한 것이었는지, 랩을 줄줄 따라 하는 관객들을 보며 치타가 기뻐하며 외쳤다. 

 

다 외웠어?  ≥∇≤

 

 

분위기가 정말 너무 좋았다. 배우분들도 공연때보다 더 신나게, 정말 무대 공연 하듯이 랩을 하고 무대를 휘저었다. 나도 너무 신났지만 나는 오늘이 처음이라 아쎄유쎄 할 때 겨우 한마디 따라할 수 밖에 없는 게 너무 슬펐다. 나도 랩 따라하고 싶다. 나도 치타한테 귀여움 받고 싶다(?).

 

 

기분좋은 설렘과 흥분감을 가지고 공연장을 나설 수 있는 공연이었다. 실제로는 비극적인 사건인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이래서 패러독스인가? 소크라테스의 죽음의 현장이라는 비극적인 광경을 목격하고, 이렇게까지 희망차질 수 있다니? 

 

 

 

 

 


 

 

공교롭게도 내가 지금 한창 필사를 하고 있는 <젊은 베르테르의 기쁨> 첫 장이 바로 소크라테스에 대한 부분이라, <소크라테스 패러독스>에서 이야기하는 그 모든 것이 귀에 쏙쏙 들어오고 머리에 콕콕 박혔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실감했다. 소크라테스가 하는 이야기들이, 소크라테스를 비난하는 멜레토스의 이야기들이 너무나도 생생하게 느껴졌다. 

 

 

 

 

필사 (43/386) | 젊은 베르테르의 기쁨

소크라테스의 사유 방식에 대한 정리였다.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고 반대의 경우, 예외적인 상황들을 들며 본질을 파고드는 그런 방식. 그런데 이쯤 되니 묘하게 거슬리는 문장들이 보인다. 위의

karangkaran.tistory.com

::: 필사는 현재 진행형이다 :::

 

 

 

  이하,  <젊은 베르테르의 기쁨 (알랭 드 보통)> 에서 발췌   

 

그의 아버지 소프로니스쿠스는 조각가였던 것으로 짐작되며, 어머니 파에나레트는 산파였다.  젊은 시절 소크라테스는 철학자 아르켈라오스의 제자였으며, 그 뒤로 줄곧 철학을 실천했으나 그것을 기록으로 남긴 적은 없었다. 물질적인 소유에는 관심이 없었던 그는 가의에 대한 대가를 받지 않았기 때문에 점점 가난에 찌들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일년 내내 똑같은 외투를 걸쳤으며(구두장이의 가정에서 태어났다는 설도 있지만) 언제나 맨발로 걸어다녔다. 아내 크산티페는 변덕스런 성격으로 악명이 자자했는데, 소크라테스에게 그런 여자와 결혼한 이유를 물으면 "말(馬)을 훈련시키는 사람은 가장 거친 말을 다룰 줄 알아야 하지 않느냐"는 식이었다. 

 

 

자신의 아내를 말(馬)에 비유했었다니.

<소크라테스 패러독스> 극에서 소크라테스는 아테네 시민들을 살찐 말에 비유한다.

 


 

일부 사람들은 소크라테스를 괴롭혔고, 몇몇은 그를 죽이고 싶어했다. 기원전 423년 봄 디오니소스 극장에서 처음으로 공연된 <구름>에서, 아리스토파네스는 어떠한 상식이든 뻔뻔스러울 만큼 꼼꼼히 논리를 따지지 않고는 절대로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는 이 철학자의 모습을 아테네 사람들에게 풍자적으로 보여주었다. 소크라테스 역을 맡은 배우는 기중기에 매달린 바구니에 담긴 채 무대에 모습을 나타냈는데, 그 이유는 소크라테스가 자신의 정신은 높은 곳에서 더 잘 활동한다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멜레토스가 등장하며 소크라테스를 기소하는 랩에서 이 내용이 나온다. 

아리스토파네스의 <구름>, 그리고 공중에 매달린 소크라테스.

 

 


 

 

(소크라테스와 메논의 대화)

메논은 덕이 높은 사람은 훌륭한 것들을 손에 넣을 수 있을 만큼 대단히 부유한 존재라고 소크라테스에게 확신에 찬 목소리로 주장했다. 그러자 소크라테스는 몇가지의 질문을 더 던졌다. 

 

소크라테스: 훌륭한 것이라. 그렇다면 건강과 재화 같은 것을 의미하는가?

메논: 황금과 은을 획득하는 것도 포함되지요. 높고 영광스런 관직도 마찬가지고요.

소크라테스: 그대가 인정하는 훌륭한 것들은 그게 전부인가?

메논: 그렇죠. 그런 종류의 모든 것들을 의미합니다. 

소크라테스: 그대애게는 '획득'이라는 단어 앞에 '정당한'과 '정직한'이라는 형용사를 덧붙여도 아무런 차이가 없는가? 그리고 훌륭하다는 것들이 정당하지 못한 방법으로 얻어졌다 해도 그대는 여전히 그것을 미덕이라고 부를 것인가? 

메논: 절대 그럴 수는 없지.

소크라테스: 그렇다면 황금과 은의 획득에는 정의나 절제, 경건함, 아니면 미덕의 다른 요소들이 덧붙여져야 할 것 같군. 실제로 황금과 은을 가지지 못했다는 사실은, 만약 그런 결과가 그것을 구입할 수 없었던 상황에 따른 것이라면... 이를테면 그런 것을 구입하는 것이 정당하지 못한 일일 수도 있었던 상황이라면, 황금과 은의 결여는 그 자체로 미덕이 되지 않겠나?

메논: 그럴 것 같군요.

소크라테스: 그렇다면 그런 것들을 소유하는 것이 그런 것들을 소유하지 못하는 것보다 더 덕이 있다고는 말할 수 없지 않은가.

메논: 선생님이 결론엔 도저히 반박할 수가 없군요.

 

 

이건 그냥 소크라테스식 문답법을 보여주는 한 예라서 그냥 옮겨 적어 봄.

 

 


 

 

소크라테스는 70세가 되던 해 인생의 소용돌이에 휘말렸다. 아테네 시민 세 명 ㅡ 시인 멜레토스, 정치인 아니토스, 웅변가 리콘ㅡ은 소크라테스가 괴상하고 사악한 인간이라고 낙인찍었다. 그들은 소크라테스가 아테네의 신들을 숭배하지 않았고, 아테네의 사회적 기틀을 깨뜨렸으며, 젊은이들로 하여금 아버지에게 대들도록 했다고 비난했다. 따라서 그들은 소크라테스의 입을 다물게 하고, 더 나아가서 그 한 사람쯤은 죽여도 괜찮다고 믿었다. 

 

 

<소크라테스 패러독스>에서 멜레토스의 첫 등장.

소크라테스를 법정에 세운 세 명의 인물들.

 

 


 

소크라테스의 재판이 열리던 날, 배심원들은 시민 500명으로 구성되었다. 

 

<소크라테스 패러독스>에서 관객은 바로 이 500명의 배심원 중 한 명이 된다.

애석하게도, 투표권은 없다.

 

 


 

소크라테스는 자신이 다른 사람들에게 이상하게 비칠 수 있는 삶을 살았다는 점은 인정했다. 

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관심 가질 일들을 게을리 해왔다. 돈을 버는 일, 재산을 관리하는 일, 군대나 일반 시민들로부터 존경을 받거나 권력의 자리를 차지하는 일, 아니면 오늘날 여러 도시에서 조직된 정치적 모임이나 정당에 가입하는 일 등이 그것이다. 

 

 


 

소크라테스는 배심원들이 자신을 석방하는 조건으로 그런 활동을 포기할 것을 요구한다 해도 결코 그 제안을 받아들일 수 없노라고 설명했다. 

 

나는 늘 해왔던 방식 그대로 사람들과 대화를 계속할 것이다. '너무도 훌륭한 친구들이여, 그대는 아테네 시민이오. 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지혜와 힘으로 가장 유명한 도시에서 살고 있소. 그런 마당에 가능한 한 많은 돈을 긁어모으고, 명성과 명예를 차지하는 데 관심을 쏟다니, 부끄럽지도 않은가? 그러면서 그대의 영혼의 진실과 이해, 완성에는 전혀 관심을 쏟지 않다니'라고. 

 

 


 

500명으로 구성된 배심원들이 판결을 내릴 차례가 되었다. 잠시 숙고한 뒤 배심원 220명은 소크라테스의 무죄를, 280명은 유죄를 결정했다. 그러자 소크라테스는 찡그린 얼굴로 말했다. 

 

" 표 차이가 이렇게 적으리라고는 생각지 않았는데. " 

 

법정에 앉아 있던 배심원들은 전혀 전문가들이 아니었다. 그들 가운데는 늙은이와 상이군인이 상당수 포함되어 있었다. 그들은 손쉽게 부수입을 올릴 수 있는 수단으로 배심원을 노리던 사람들이었다. (…) 소크라테스의 재판에 배심원으로 참여한 사람들은 무서운 편견을 가진 채 재판정에 들어왔다. 그들은 아리스토파네스가 소크라테스를 풍자적으로 그린 연극에 영향을 받은 터라 한때 막강했던 도시에 들이닥친 세기말적 재앙에 그 철학자가 어떤 역할을 했다고 막연히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배심원들의 결정과,

그런 결정을 내린 배심원들이 어떤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었는지,

그리고 그들이 그런 결정을 내리게 만든 아테네의 상황은 어땠는지 이해를 돕기 위한 부분.

 


 

펠로폰네소스 전쟁은 참패로 끝났고, 스파르타─페르시아 동맹이 아테네를 무릎 꿇게 만들어 아테네는 봉쇄당했으며, 아테네 함대가 파괴되고 제국은 분할되었다. 가난한 지방에는 전염병이 창궐했고, 민주주의는 시민 1천여 명을 처형한 독재정권에 억압당했다. 

 

불결한 외투를 걸치고서,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질문을 던지며 거리를 떠돌던 소크라테스는 이미 잘 준비된 결점투성이의 제물이었다. 

 

그리고 그들이 그런 결정을 내리게 만든 아테네의 상황은 어땠는지 이해를 돕기 위한 부분2

 

 


 

 

소크라테스는 괴팍하지 않았다. 그가 다른 사람들의 의견들을 무시했던 것은 인간을 싫어해서가 아니었다. (…) 그는 자신의 일생 대부분을 아테네 시민들과 대화를 나누느라 새벽녘까지도 잠자리에 들지 못했다. 그는 아테네 시민들의 마음이 어떤 식으로 움직이는지를 알았을 뿐 아니라 불행하게도 그들의 마음이 종종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사실까지 목격했었다. 비록 그는 시민들의 마음이 언젠가는 제대로 작동하게 될 것이란 기대를 버리지 않았지만.

 


 

유죄판결을 받은 뒤에도 소크라테스는 사형을 피할 수 있었지만 비타협적인 태도를 굽히지 않아 그럴 기회를 놓쳤다.

 


 

만약 그대들이 나를 죽음에 처하게 한다면, 그대들은 나의 자리를 대신할 사람을 쉽게 발견하지 못할 것이다. 약간 우스꽝스럽게 표현하자면, 사실 나란 존재는 신이 이 도시에 내려줬는데, 아테네에 대해 말할 것 같으면 커다란 순종 말(馬)처럼 거대한 몸집 때문에 게을러지기 쉽고 그래서 쇠파리의 자극이 필요한 곳이 아닌가. 만약 그대들이 나의 충고를 받아들인다면 그대들은 나의 생명을 구해줄 것이다. 그러나 나는 곧 그대를이 졸음에서 깨어나 성가셔 하며 아니토스의 조언을 받아들여 일격에 나를 해치우고는 계속 잠을 청하리라 생각한다. 

 


 

소크라테스의 예견은 빗나가지 않았다. 판사가 두 번째이자 마지막 평결을 주문하자 배심원 중에서 360명이 소크라테스에게 사형을 내렸다. 

 


 

사형집행인이 으깬 독미나리가 든 잔을 들고 나타났다. 그 사람을 보자 소크라테스가 말했다.

 

" 그내는 이런 일에는 전문가일 테지 그래. 어떻게 하면 되는가? "

" 그냥 들이켜면 됩니다. 그리고 두 다리가 뻐근해질 때까지 걷다가 드러누우면 약효가 저절로 나타납니다." 

 

이 말과 함께 사형집행인은 독약 잔을 소크라테스에게 내밀었다. 소크라테스는 그 잔을 말없이 받았다. 한 점 떨림이나 낯빛의 변화, 자세의 흐트러짐 없이. 소크라테스는 잔을 입술에 갖다 대고 싫은 기색도 없이 가뿐한 마음으로 다 마셨다. 그때까지 우리 대부분은 그래도 눈물을 참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가 독약을 마시는 것을 보고, 또 실제로 그가 그 약을 다 마셨을 때는 우리도 더 이상 눈물을 참을 수 없었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아무리 자제하려 해도 눈물이 샘솟듯 솟아 나왔다. 크리톤은 도저히 눈물을 참을 수 없게 되자 밖으로 나가버렸다. 그리고 일찍부터 눈물을 끊임없이 쏟고 있던 아폴로도로스는 마침대 울부짖음과 비탄에 휩싸여 그곳에 있던 모든 사람들을 무너지게 만들었다. 그래도 소크라테마는 전혀 동요하지 않았다. 

<파이돈의 말>

 

 

 

 

 

 

반응형
댓글
«   2024/12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Total
Today
Yesterd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