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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한 기회에 시사회로 먼저 보았다. 개봉까지 정말 할 말이 많았는데 참고 또 참다가... 다 잊어버렸네...?
하얼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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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나는 불호다. 영화적으로도 별로였고, 안중근이라는 인물을 다루는 방식도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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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장센이 좋은 쪽으로 얘기를 많이 하던데, 나는 그것도 동의 못하겠다. 장엄한 풍광을 담아내는 장면이 몇몇 있긴 하였으나 그마저도 좀 따로 논다. 심지어 되게 쓸데없이 길게, 여러 컷으로 보여준다 싶은 장면도 있었다. 말 타고 사막을 가로지르는 장면 같은 건 그냥 '멋있어 보이려고' 찍은 것 이상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고생이나 고난, 고독 같은 것을 느끼게 해주고 싶었나 싶기도 한데, 그게 하나도 느껴지지 않아서, 그저 '멋'을 위한 장면이라는 생각에 몰입이 확 깨졌다. 거사를 앞두고 느껴져야 할 긴장감이 없는데, 평온하기까지 한 고독과 쓸쓸함이 무슨 소용인지.
그 외에도 영화는 지독하게 정적이고, 공간을 한정짓는다. 이 공간에서 저 공간으로 이동하고, 또 다른 공간으로 이동해서 대화를 나누는 것이 전부다. 그 대화라는 것도 작전 모의하는 공간 - 기차 타고 이동 - 다른 곳으로 이동하라는 지시를 듣는 공간 - 기차타고 이동 - 또 공간 - 공간 - 공간의 무한 반복이다. 구체적으로 무언가를 행하는 것이 없다.
그리고 영화를 본 직후 날려 썼던 후기를 보니 비장한 대화 - 갈등을 빚는 대화 - 애틋한 대화의 반복이라는 것도 있다. 그만큼 움직임보다는 대화가 주를 이룬다. 종합하면, 어딘가에 모여 앉아 심각한 대화, 진지한 대화, 비극적인 대화, 이동하라는 대화가 이어지는 식이다. 심지어 걸어가면서 대화하는 장면도 거의 없다.
되게 지루한 상황의 반복임에도 무언가 힘을 갖고 기대를 품게 하는 것은 그 상황에 놓인 인물 때문이다. 그만큼 안중근이라는 인물이 중요하다. 그런데 나는 영화를 보고 오히려 안중근에 대한 혼란만 가중되었을 뿐, 묵직한 울림같은 걸 느끼지 못했다. 잔뜩 무게를 잡는 영화 속에서 안중근이라는 인물 홀로 불안하게 흔들리는 탓이다. 안중근이 고뇌하고, 불안에 떨고, 죄책감에 짓눌리는 동안 무언가를 '하는' 것은 모두 주변인물들의 몫이다. 조우진과 박정민의 역할이 특히 그렇다. 그나마도 둘 사이에 뻔한 복선이 깔리고, 밀정 찾기 서스펜스가 가미되긴 하지만, 이것들이 아니었다면 영화의 활력이 완전히 죽어버렸을거라 그러려니 할 수밖에.
영화 속 상황과 달리 모든 상황이 착착 순조롭게 맞물려 돌아가는 것도 이상했다. 어디로 가라- 하면 어김없이 다들 가 있고, 누구를 만나라- 하면 쨘하고 그 인물이 나타난다. 무기같은 것도 별 어려움 없이 구해진다. 그냥 절절하게 호소하기만 하면 된다. 그 사이에 위기나 긴장이 별로 없다. 어디든 갈 수 있고 누구든 만날 수 있는 시대였나 싶을 정도다. 나는 영화 속에서 그들이 겪었을 고난과 역경이 느껴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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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프닝에 엄청 신경을 쓴 것 같았다. 대규모 인원이 투입된 전투 장면. 아, 근데 너무 잔인하던데요. 이게 최종 편집과정에서 어떻게 되었는지 모르겠는데, 내가 본 버전에서는 쓸데없이 너무 잔인해서 사실 그때부터 좀 짜증이 났다. 그게 일본군의 악행으로 비춰져야 마땅한데, 나로서는 그냥 되게 쓸데없이 잔인한 장면을 본 불쾌한 관객1이 되어버린 상황이라. 영화의 수위가 그 정도로 계속 유지되는것도 아니면서 뭐하러 그렇게 자극적인 묘사를 넣었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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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영화를 보고는 여러모로 충격이 가시질 않아서, 이게 진짜일까 싶어 안중근 의사에 대해 좀 찾아보기도 했다.
일단, 포로였던 일본 장교를 풀어준 것은 사실이었다. 그런데 그 일본 장교 캐릭터를 살려 끝까지 붙들고 가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아니 뭣하러 그 인물한테 그런 서사를 줘요? 영화 개봉 후 해당 역할을 한 배우에게 연기 잘 한다, 멋있다는 얘기가 나오던데, 이 영화를 보고 사람들이 그런 걸 느껴야 할 필요가 있나요? 기억에 남아야 하나요? 거기다 이등박문마저도 너무 캐릭터를 잘 잡아줘서 짜증이 났다. 헛소리를 멋지게 하니까 그게 카리스마처럼 보이잖아요. 도대체 왜 자꾸 일본놈들에게 멋진 이미지를 주냐고요. 이등박문 역으로 릴리프랭키를 섭외했다고, 그것까지도 홍보용으로 쓰이던데, 이게 과연 맞는건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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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적으로 차분하고 다소 서늘한 시선을 유지하고 싶었던 것 같은데, 그때문에 뜨겁게 타올라야 할 인물과 서사는 죽고 악역이 오히려 힘을 얻었다. 영화를 보면 그 덕분에 이등박문과 일본장교의 캐릭터가 얼마나 선명해졌는지가 느껴질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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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모로 굉장히 연극적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는데, 그 느낌은 처형대 장면에서 극에 달한다. 편집이 되었으려나. 내가 본 버전에서는 처형대 장면이 있었는데. 그거 정말 너무 꾸며진 연극 무대, 세트 위에, 눈부시게 빛나는 깨끗한 옷과, 홀로 핀조명 받고 서 있는 인물의 모습이라 너무 이질적이었다. 너무 작위적으로 꾸며진 모습들이라 뭐라 할 말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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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너무 웃겼던 거 하나. 이동장면의 배경이 거의 기차이고, 밀정찾기가 펼쳐지는 공간도 기차인데, 이 기차가, 너무 심하게 구불구불 휘어진다. 칸칸이 어긋날 정도로 휘어지는 걸 보고 있자니 너무 어이가 없었다. 당시의 철도가 아무리 열악했다 하더라도 그렇게까지 굽이굽이 휘어 놓지는 않았을 것 같은데... 탈선이 겁나는 건 둘째치고 기차가 그 위를 달린다는 게 신기할 정도로 너무 구불거리는 게 느껴졌다. 이런 게 보이니까 미장센이니 뭐니 하는 소리가 와닿지가 않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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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유치하고 뻔하다고 해도 좀 더 영웅적인 면모를 가진, 뜨겁게 타오르는 인물들의 이야기가 좋다. 소시민의 용기를 보여주는 영화나 이야기는 물론이거니와, 우리가 진정 감사하고 감동받아야 할 분들에 대해서는 마음 놓고 무조건적인 감사와 감동과 눈물과 응원을 보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영화가 너무 멋을 부렸다. 이런 류의 영화에서 우리가 바라는 것이 겉멋은 아닌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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