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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 좋은 주말인데 아무것도 안 하고 집에만 있기는 싫어서 무작정 집을 나섰다.
사실 아주 무작정은 아니었고, 몇 가지 조건을 걸고 갈만한 곳을 미리 찾아보긴 했다.
1. 많이 걸을 수 있고
2. 사람이 적은 곳
조건을 충족하려면 실내보단 야외여야 했고, 그 중에 사람이 많지 않을 만한 곳이란.
태강릉 | 태릉 - 강릉
가까운 곳이라 오히려 갈 생각을 못 했던 곳이었다. 어렴풋한 기억에 초, 중등 시절 쯤, 학교에서 단체로 갔던 것 같기도 하고. 뭔지도 모르고 그냥 놀다 온 곳 정도로만 기억에 남아 있었다. 의미있는 곳들이 의외로 이런 식으로 가볍게 스쳐지나간다. 그래서 이참에 한 번 다시 제대로 구경하자 싶었다.
태릉
조선 11대 왕(태-정-태-세-문-단-세-예-성-연-)중종의 세 번째 왕비 문정왕후의 능이다.
강릉
조선 13대 왕(태-정-태-세-문-단-세-예-성-연-중-인-)명종과 인순왕후 심씨의 능이다.
사실 이런 정보도 이번에 처음 찾아봤다. 태릉을 단순한 근처 동네의 지명으로 여기고 산 지가 너무 오래된 탓이다. 무려 왕과 왕후의 릉인데.
6호선 화랑대역에서 걸어가는 코스를 택했다. 화랑대역에서 태릉 매표소 입구까지 도보로 20여 분이 걸리는 것으로 나왔는데, 상관 없었다. 많이 걷는 것도 오늘의 목표였으니까. 길은 넓었고 인도엔 사람이 드물었다. 길을 따라 걷는데 어마어마하게 커다란 가로수들이 끝없이 이어졌다. 오래된 길이라는 뜻이었다. 사람은 적고 오래되고 큰 나무들이 많은 길. 걷기 좋은 길이었다.
하지만 날씨가.....
낮 최고기온이 30도였다. 화랑대역에서 태릉까지, 가로수가 길게 이어지긴 했지만 드문드문 그늘 없는 땡볕이 이어지는 길을 걷는다는 것이 쉽지는 않았다. 슬슬 오늘의 선택이 잘못된 것은 아니었을까 약간 후회하기도 했다. 하지마 일단 시작했으니 가는 데까진 가봐야지.
태릉 매표소는 아담했다. 그 앞으로 작게 자리잡은 주차장에도 차들이 몇 대 없었다. 사람이 적은 곳. 맞게 찾아온 것 같았다. 표를 구매했다. 만 25세에서 64세까지는 입장료가 1,000원이다. 할인 받을 수 있는 게 있는지 확인해보라고 안내해주셔서 보니 노원구 주민은 50%를 할인받을 수 있었다. 나 이런거 받아보는 거 처음인데!! 신 나서 신분증을 보여드리고 입장료의 50%를 할인받았다.
입장하자마자 조선왕릉전시관이 보인다.
들어갔다.
규모는 그리 크지 않은데 깔끔하고 꼭 필요한 정보들을 잘 담아 놓은 곳이었다. 한바퀴를 둘러보는 데 시간도 얼마 걸리지 않았다.
열어보라고 해서 열어봤더니 이렇게 귀여운 모형들이 들어 있었다.
이거 너무 귀여웠다. 기념품으로 팔아도 좋겠다 싶었을만큼.
아 진짜 이건 직접 봐야된다. 너무 귀엽다. 너무너무 귀엽다!
간략하게 전시관을 둘러보고 나와 옆으로 난 길로 향했다. 나무가 울창한 편이라 태릉이 바로 보이지는 않았다.
이런 길을 따라 조금만 걸어가면
드디어 태릉이 보인다.
정확히는 태릉 앞 홍살문이다. 어. 근데 생각보다 홍살문이 크지 않아서 놀랬다. 원래 홍살문 엄청 크고 위압감 드는 그런 거 아닌가? 했는데 나중에 간 강릉 홍살문도 비슷한 걸 보니 원래 이런 크기인가보다. 근데 왜 나는 홍살문이 엄청 큰거라고 생각했지. 아마 홍살문이 있는 공간이 주는 기운 같은 게 있어서 그랬나보다. 홍살문이 있는 곳들이 대부분 넓은 공간에 거대한 건축물이나 릉, 묘 같은 것이 있는 곳들이니 보통 기운이 아니긴 했을거다.
홍살문에서부터 정자각까지 향로와 어로가 놓여 있다. 왼쪽의 향로는 제향 시 향과 축문을 들고 가는 길이고 그 옆에 약간 낮은 단인 어로는 제향을 드리러 온 왕이 걷는 길이다. 관람객은 어로로 걷는 것을 권장하고 있다.
정자각까지 어로를 따라 걸었다. 정자각 앞에서 보면 그 뒤로 태릉의 일부가 보인다. 액자에 걸린 그림처럼 보이긴 하나 보이는 면적이 너무 작고 릉의 전체가 보이지는 않는다. 그래서 정자각 위로 돌아갔는데, 정자각보다 릉이 높아 올려다보아야 하는 구도였다.
정자각을 통해서 보는 것보단 탁 트여 좋긴 한데 뭔가 좀 아쉽다. 뭔가... 넓은 대지 위에 거대한 릉이 솟아오른, 경주의 대릉원 같은 느낌을 기대했는데 그러기엔 너무 멀찍이서 우러러 봐야하는 거리감이 조금 아쉬웠달까.
태릉 오른편으로 멋진 향나무맞나?를 보며 걸어나오면 강릉으로 이어지는 숲길이 보인다.
태릉과 강릉을 걸어서 오갈 수 있다고 했다. 방문 전 찾아 본 후기에 의하면 약간의 오르막이 있다고 했다. 그리고 숲길 앞 안내 표지판에는 왕복 1시간 정도라고 쓰여 있었다. 나는 각오가 되어 있었다. 멧돼지를 만날 수도 있다는 건 좀 무서웠지만
시작은 완만했다. 길은 잘 다듬어져 있었다. 나무가 울창해 해도 거의 들지 않았다. 걷기 좋은 길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얼마 안 가 날벌레들이 꼬이기 시작했다. 길 옆으로 졸졸 물이 흐르고 있었다. 여기만 지나면 괜찮겠지 생각했는데 날벌레들은 끈질기게 따라붙었다. 잠시도 손을 쉴 수가 없었다. 날벌레들.. 너무 많다. 더운 날 습한 숲길이라니. 날벌레가 많을만도 했지만 그래도 싫은 건 어쩔 수 없다 T_T
그리고 길도 조금씩 가팔라지기 시작했다. 어어. 이 정도라고? 싶은 길이 이어졌다. 그리고 아마도 가장 높은 곳이다 싶은 곳에 작은 초소같은 곳이 있었다. 태릉 숲길 관리자분이 아닐까 싶은 분이 그 곳에 계셨다. 그리고 그곳을 지나면서 내리막길이 시작됐다. 여기부터는 해도 좀 들기 시작했다. 내 주변에서 떠나지 않던 날벌레도 어느순간 사라졌다. 드디어 좀 편해졌나 싶은데, 이제는 내리막의 경사가 장난이 아니다. 아이구야. 가파른 내리막길을 지나면 숲길이 강릉의 옆구리로 쭉 빠져 내려온다.
강릉도 역시 홍살문 뒤로 향로와 어로가 놓여 있다. 사실 이때 너무 힘들어가지고 사진이고 뭐고 얼른 쉬고 싶었다. 그래서 강릉 앞까지 가서 구경 한 번 하고 바로 의자를 찾아 늘어졌다. 날이 너무 더웠다. 태릉-강릉 숲길이 난이도가 높은 건 아니었는데 더운 날씨와 반갑지 않은 동행날벌레이 나를 더 힘들게 했다.
의자에 앉아 생각했다. 태릉으로 돌아가지 말고 그냥 강릉 밖으로 나가버릴까. 그럼 도로길을 따라 좀 더 빨리 집으로 갈 수 있었다. 그런데 왠지 아까웠다. 강릉으로 넘어올 생각에 태릉을 제대로 돌아보지 않고 지나쳐 온 탓이다. 강릉보다 태릉의 공간이 좀 더 넓었고, 가보지 않은 산책길도 있었다. 온 김에 다 돌아보고 가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다시 태릉-강릉 숲길을 오르는 것을 택했다. 가파른 내리막이 가파른 오르막이 되고, 날벌레가 없는 길에서 날벌레가 있는 길로 접어들었다. 날벌레 진짜 어마어마하다. 여름에 태릉-강릉 숲길 가실 분들은 날벌레 대비를 단단히 하세요. 정말 장난 아닙니다.
그래도 한 번 와 본 길이라도, 다시 넘어가는 길은 좀 덜 힘든 것 같았다. 태릉-강릉 숲길을 왕복하는데 1시간이 걸린다는데, 체감 상 시간은 그보다 긴 것 같고 힘들기도 엄청 힘들었다. 날이 좀 선선했으면 이 정도로 힘들진 않았을텐데 T_T
태릉으로 넘어와 좀 더 넓은 공간에 잠시 앉아 쉬었다. 그늘 아래 있으니 바람이 시원하긴 하다. 어느새 사람들도 드문드문 보였다. 그렇다고 해도 태릉 안에서 본 사람의 수가 20명을 넘진 않을 정도로, 정말 한적하고 조용했다. 힘들어도 이게 너무 좋더라.
그치만 자연풍이 주는 시원함엔 한계가 있는 법. 나는 다시 조선왕릉전시관으로 향했다. 속세의 냉풍이 필요했다. 근데 내가 워낙 더위를 먹어서 그런가, 여기도 생각보다 시원하진 않았다. 그래도 잠시 앉아 쉬다가 아무래도 빨리 들어가는게 제일이겠다 싶어 태릉-강릉 나들이를 마무리했다.
많이 걷기 목표 달성했다. 근데 바보같이, 하필 제일 더울 시간에 돌아댕겼다. 아이고야....
사람이 많지 않다는게 가장 좋았다. 다음에 태릉 또 놀러 가야지. 좀 덜 더울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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