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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에 이끌려 읽기 시작했다. 

 

제목의 분위기를 그대로 담은 첫 시작은 강렬했다. 강압적인 분위기에서 억지로 음식을 입에 집어넣어야 하는 여자들. 자신들의 용도를 알기에 마음 편히 음식을 씹어 삼킬 수 없는 여자들. 그 가운데 주인공인 로자가 있다. 

 

로자는 베를린에서 일을 하다 만난 그레고리와 결혼해 함께 그레고리의 고향으로 왔다. 하지만 그레고리는 곧 징집되어 전쟁터로 떠나고, 로자는 히틀러의 음식을 먹는 여자로 뽑히게 된다.

 

그곳에서 함께 음식을 먹는 여자들의 이야기─를 기대하였으나 이야기는 조금 다르게 흘러간다. 여자들의 이야기도 있으나 로자의 개인적인 상실과 고통, 그리고 새로운 사랑, 그로 인한 혼란스러움 등을 이야기한다. 그 안에 불안하고 두려움이 가실 날이 없는 분위기들도 녹아 있다. 히틀러의 국민이었지만 온전히 보호받지도, 안정적인 삶을 누릴 수도 없었던 이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는 것이다. 

 

아무래도 처음에 읽기 시작한 이유가 제목에 있다 보니, 로자라는 개인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이야기들이 그다지 재미있게 읽히지는 않았다. 강렬했던 첫 시작과 초반에 집중적으로 펼쳐지는 '히틀러의 음식을 먹는 여자들'의 이야기는 흥미진진했다. 같은 공간, 같은 행위를 공유하며 서서히 서로에게 마음을 열어가는 여자들의 이야기가 나는 제일 좋았다. 그리고 로자와 엘프리데 사이에 피어나는 미묘한 감정들. 아니, 이건 로자의 일방적인 감정이었나? 아무튼 이 부분이 제일 궁금하고 제일 긴장감 넘쳤다. 엘프리데에 대한 로자의 감정이나 태도가 소설의 주요 흐름은 절대 아니지만, 많은 것을 상상하게 만들긴 한다. 엘프리데와 로자는 어쩌면 유대인과 독일인으로 비유되는 관계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했다. 근거는 없음.

 

 

 

 

결말이 썩 마음에 들진 않았다. 치글러(로자의 일탈 상대....? 스포인가...?)의 도움으로 탈출한 로자는 죽은 줄로만 알았던 남편을 다시 만나게 되지만, 그들의 삶이 해피엔딩으로 끝나지는 않는다. 현실적인 엔딩이라고 할 수도 있긴 하겠다. 

 

그치만! 

이 책의 제목이 '히틀러의 음식을 먹는 여자들'인데!!! 초반 잠깐과 중간중간 그들끼리 겪게 되는 사건 사고를 제외하고는 이야기가 점점 로자 개인에게 집중되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여자들로 시작해 로자의 허무한 인생으로 끝나는 마무리가 기대한 것과는 달랐기 때문이다. 

 

내 취향에는 그다지 맞지 않았고, 재미있다고 추천도 못 하겠다. 그냥...본 책이 됐다. 

 

근데 쫌 불안하다. 이런 식으로 마음에 안 들어했던 책들 중 하나가 나중에 알고 보니 노벨 문학상까지 받은 대단한 작품이었던 적이 있어서다. '히틀러의 음식을 먹는 여자들'도 사전 정보 하나도 없이 그냥 보기 시작한건데, 평단의 반응을 찾아보면 또 내 감상과는 전혀 다를까봐 무섭다. 엄청 좋은 작품이고 대단한 작품이면 어떡하지....? 

 

 

 

인상 깊었던 몇몇 구절들

 


 

임신이란 당신의 것이라고 생각했던 여자의 몸 안에 침입자가 들어와서 몸을 변형시키고 자기 필요와 기호대로 바꿔놓는 거야. 그 침입자는 당신이 들어왔던 곳과 똑같은 구멍을 통해 빠져나가지. 당신에게는 한 번도 허락되지 않았던 난폭함을 만끽하면서. 그는 당신이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영역을 침범해 당신의 여자를 영원히 제 것으로 만들어버릴 거야.
하지만 그 침입자는 당신의 것이기도 해. 당신의 여자 안에서, 그녀의 위와 간과 신장 틈에서 당신에게 속하는 무엇인가가 성장하는 거야. 당신 여자의 가장 은밀하고 깊숙한 곳에서.

 


 

여러 사람이 죄를 저지를 때는 눈 딱 감고 해치워야 한다. 어차피 죄책감은 빨리 사라질 테니 말이다. 집단적 죄책감은 형태가 모호하지만 수치심은 개인적인 감정이다.

 


 

잠은 사람을 현혹시킨다. 얼마나 많은 이가 다시 눈을 뜨리라 자신하며 눈을 감았다가 잠들고 말았던가. 잠은 죽음과 너무 비슷하기에 믿을 게 못 된다.

 


 

나는 겁쟁이였다. 그래서 무엇 때문에 엘프리데가 자기랑 상관도 없는 일에 그렇게 발 벗고 나서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정작 당사자는 원치도 않았는데 말이다. 엘프리데의 영웅심은 말도 안 되게 어리석은 행동이었다. 지난 몇 년 동안 내 눈에는 모든 영웅적인 행동이 어리석어 보였다. 나는 신념을 지킨다는 명목하에 앞에 나서는 모든 사람들이 창피했다. 특히 정의를 위해 나서는 이들을 볼 때는 더 그랬다. 그것은 낭만적인 이상주의의 잔재에 지나지 않았다. 현실과는 동떨어지고 순진해빠진 거짓 감정이었다.

 


 

나는 드디어 벌을 받았다. 내 벌은 독도, 죽음도 아니었다. 신은 사디스트예요, 아빠. 신은 다른 것도 아닌 생명으로 내게 벌을 주고 있어요. 신은 내 소망을 이뤄주고는 저 높은 곳에 앉아서 나를 비웃고 있어요. 

 

 

 

 

 

 

 
히틀러의 음식을 먹는 여자들
로셀라 포스토리노의 장편소설 『히틀러의 음식을 먹는 여자들』. 한국에 처음 소개되는 로셀라 포스토리노의 소설로, 실제 히틀러의 시식가이자 유일한 생존자였던 실존인물 마고 뵐크의 고백을 바탕으로 2차 세계대전 당시 히틀러의 음식에 독이 들었는지를 감별하기 위해 끌려간 여자들에 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평범한 인간인 로자가 스스로 악을 행하는 자와 악의 없이 악한 임무를 수행하는 인간의 틈바구니에서 생존해 나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소설 속 이야기는 1943년 가을 무렵부터 시작된다. 스물여섯의 로자 자우어는 베를린에서 폭격으로 부모를 모두 잃고, 전장으로 떠난 남편 그레고어의 고향인 그로스-파르치에 홀로 오게 된다. 당시 그로스-파르치에서 멀지 않은 곳에는 히틀러의 동부전선 본부인 ‘볼프스샨체(늑대소굴)’가 있었다. 적에게 독살당할 것을 의심했던 히틀러는 그 근처의 여성들을 모아 자신의 음식을 미리 먹어보게 했고, 로자는 그중 한 명으로 선택된다. 이렇게 소집된 열 명의 여성들은 매일 히틀러의 음식을 먹으며 하루에 세 번씩 음식이 주는 희열과 죽음의 위협을 함께 느끼는데……. 히틀러가 시킨 일을 하면 음식을 먹다 죽고, 히틀러를 추종해도 전쟁 종결 후엔 나치 추종자란 명목으로 죽어야 한다. 히틀러에 반대하면 그 역시 죽어야 한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주인공 로자는 삶의 커다란 모순을 경험한다. 내가 살기 위한 일이 어떻게 모두 내가 죽기 위한 일이 될 수 있을까. 시대의 격류에 휩쓸려 스스로 자신의 생존을 결정할 수 없는 평범한 삶을 산 로자. 지금 이 시대에는 로자가 없다고 할 수 있을지 생각해보게 하는 작품이다.
저자
로셀라 포스토리노
출판
문예출판사
출판일
2019.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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