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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다

20230118 | 안젤리크 / 기욤 뮈소

카랑_ 2023. 1. 18. 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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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욤 뮈소의 <안젤리크>를 읽었다. 신간을 읽은 게 얼마만인지. 

 

 
안젤리크
《안젤리크》는 한국에서 19번째로 출간하는 기욤 뮈소의 장편소설이다. 2004년에 발표한 《그 후에》 이후 기욤 뮈소의 소설 모두가 프랑스 베스트셀러 1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하고 있다. 세 번째 소설 《구해줘》는 아마존 프랑스 85주 연속 베스트셀러 1위를 기록했고, 국내 주요 서점 200주 이상 베스트셀러에 등재되었다. 매년 《르 피가로》지와 〈프랑스서점연합회〉에서 조사하는 베스트셀러 작가 순위에서 8년 연속 1위를 기록했다. 2016년에는 《당신, 거기 있어줄래요?》가 한국 영화로 만들어져 대단한 화제를 불러 모았다. 2018년 작 《아가씨와 밤》이 2022년 《FR2》 방송에서 6부작 드라마로 제작되어 인기리에 방영되었고, 그 외 다수의 소설이 영화와 드라마로 제작되었다. 그의 소설은 현재 세계 45개국에서 출간돼 독자들로부터 폭넓은 공감과 지지를 이끌어내고 있다. 프랑스 언론은 ‘기욤 뮈소는 하나의 현상’, ‘페이지터너라는 말이 가장 잘 어울리는 작가’, ‘언제나 상상의 한계를 뛰어넘는 반전으로 독자들을 놀라게 하는 작가’라는 수식어를 붙여주며 찬사를 보내고 있다. 《뉴욕 타임스》는 기욤 뮈소에게 ‘서스펜스 마스터’라는 수식어를 붙여주었고, 스페인의 《엘 문도》는 ‘기욤 뮈소 현상은 여전히 계속된다.’라는 말로 10년 전 프랑스 언론의 수식어를 오마주했다. 기욤 뮈소는 20년 가까이 작가로 활동하는 동안 매년 한 권씩 소설을 내고 있고, 프랑스뿐만 아니라 세계 각국에서 베스트셀러가 되고 있다. 초기에는 로맨스와 판타지가 결합된 작품들이 주를 이루었다면 근래 들어 스릴러의 비중이 큰 편이다. 기욤 뮈소가 무려 20년 가까이 변함없는 인기를 누리고 있는 비결이 있다면 언제나 변신을 위한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기 때문이다. 최근 3년 동안 기욤 뮈소는 《아가씨와 밤》, 《작가들의 비밀스러운 삶》, 《인생은 소설이다》를 통해 작가와 등장인물들의 관계를 주제로 매우 깊이 있고 내밀한 이야기를 선보였다. 작가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현실과 픽션 사이의 팽팽한 긴장 관계를 집중 조명한 이 세 편의 소설을 일컬어 기욤 뮈소 자신은 ‘작가 3부작’이라고 부른다. 프랑스에서는 실제로 이 세 편의 소설을 따로 묶어 출판하기도 했다. 《안젤리크》는 기욤 뮈소가 작가에 주목했던 소설에서 반전과 서스펜스를 능수능란하게 구사하는 이야기꾼으로 되돌아왔음을 알리는 작품이다. 언제나 자신이 치열하게 살아왔지만 세상이 공정한 대우를 해주지 않아 늘 같은 자리를 맴돌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가진 간호사 안젤리크 샤르베, 지하철에서 불량배가 휘두르는 칼을 온몸으로 막아내며 여성 승객의 안전을 지켜주기 위해 최선을 다하지만 추격 과정에서 총을 발사해 범인이 반신불수가 되는 바람에 여론의 비난에 직면하고 감찰까지 받게 된 강력반 반장 마티아스 타유페르, 태어나자마자 생모에게 버림받고 새엄마를 유일한 엄마로 알고 자라지만 그 엄마마저도 석연치 않은 죽음을 맞게 되자 직접 진실 규명을 위해 뛰어든 의대생 루이즈 콜랑주, 각고의 노력 끝에 영광스러운 파리 오페라 발레단의 에투알 무용수 자리에 올랐으나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명성을 누린 시간은 잠시뿐 다시 무대 뒤로 쓸쓸히 사라지는 아픔을 겪는 스텔라 페트렌코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안젤리크》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어느 누구 하나 예외 없이 우리가 저마다 비밀 하나쯤은 감추고 살아가는 것과 마찬가지로 치유하기 쉽지 않은 상처를 안고 있다. 그 상처를 누군가는 제대로 봉합하고, 덧나지 않게 약을 바르고, 말끔히 아물게 해 성장의 밑거름으로 삼지만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건강하고 순탄한 성장을 방해하는 장애 요소가 되기도 한다. 가령 안젤리크의 경우 후자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안젤리크는 스스로 생각하기에 열심히 살았으므로 세상에서 합당한 자리가 주어져야 마땅하고, 그 자리를 타인이 차지하고 있기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빼앗을 수 있다는 식의 비뚤어진 가치관을 갖고 있는 인물이다. 기욤 뮈소는 《안젤리크》에서 다양한 인물들을 등장시키지만 어떤 특정한 잣대로 그들을 평가하거나 규정하려고 들지 않는다. 그저 그들이 뚜벅뚜벅 길을 걸어갈 때 슬며시 뒤따라가 보고 그 결과를 기록으로 남겨두는 목격자 역할에 충실하고 있다. 여러 인물들을 입체적으로 관찰하면서 그들이 성장기에 겪었을 상처를 그려보고, 그 상처들이 다른 상처들을 만났을 때 어떤 물리적 혹은 화학적 반응이 일어나는지 지켜볼 뿐 적극적으로 나서서 이렇게 또는 저렇게 하는 게 좋겠다는 식의 훈수를 두지 않는다. 어찌 보면 기욤 뮈소는 우리가 사는 세상의 이곳저곳에 돋보기를 들이대 가면서 부분적이나마 한 시대의 자화상을 그리고자 애쓰고 있는지도 모른다. 《안젤리크》는 저마다 독특한 개성을 가진 인물들이 파리와 베네치아를 오가며 펼치는 반전 소설로 처음부터 끝까지 긴장의 끈을 늦출 수 없다.
저자
기욤 뮈소
출판
밝은세상
출판일
2022.12.21

 

 

 

 

안젤리크 인물 관계도

 

나름 열심히 정리해 봤다. <안젤리크>의 주요 인물은 다음과 같고, 다음과 같이 엮여있다. 어떤 관계로 엮여 있는지는 일부러 적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 관계를 표시하다간 까딱 잘못하면 스포를 해버릴 것 같아서. 그리고 이야기의 중요한 복선이나 반전 요소가 되는 부분도 표시하지 않았다. 

 

안젤리크 인물 관계도

 

책의 제목은 <안젤리크>이지만 이야기의 중심은 루이즈와 마티아스를 중심으로 펼쳐지고, 주요 사건은 루이즈의 엄마인 스텔라의 죽음에서부터 시작된다. 루이즈는 은퇴한 형사인 마티아스에게 막무가내로 엄마의 사건을 해결해달라고 들이대고, 결국 마티아스가 그 제안을 받아들이면서 일어나는 일들을 담고 있다. 추리해가는 과정에서 인물들의 사연이 얽히고, 과거의 사건과 비밀들이 드러나며 모든 것이 유기적으로 이어지기 시작한다. 

 

<안젤리크>를 먼저 읽은 건 큰 조카님이다. 책 소개글을 보고 재미있어 보여서 읽었다고 한다. 먼저 읽고는 나에게 말하길, 재미있는데 뒷부분의 개연성이 조금 약하고, 마티아스의 과거 이야기는 좀 쓸데없어 보여요 라고 했다. 

 

나는 기욤 뮈소의 소설이 처음이었다. 그래서 약간의 기대와 호기심을 가지고 읽기 시작했다. 거기에 조카님의 감상을 더해 약간의 의구심까지 가지고. 

 

다 읽고 난 나의 감상은, 조카님의 감상에 일부 동의한다 이다. 

 

루이즈의 의뢰에 대한 답은 소설 중반부에 일찌감치 밝혀진다. 이쯤에서부터 이 책은 추리보다는 각 인물들간의 얽히고설킨 관계를 짚어가기 시작한다. 사건을 중심으로 펼쳐지던 초반부가 흥미진진했다면 후반부로 넘어가면서는 묘한 막장 드라마의 향기가 풍긴다. 아주 비약하자면, 이 책에서 가장 마지막에 밝혀지는 사실은 결국 출생의 비밀인 셈이었다. 

 

이 책은 팬데믹의 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거기에 현대 사회 문제나 이슈들이 다양하게 섞여 풍부한 배경을 만들어낸다. 주요 인물의 코비드 감염으로 인한 사망, 은둔형 외톨이에 가까운 조력자, '인셀'이 일으키는 비극적 범죄, 교권의 추락, 인물의 서사를 보충해주는 젠더 이슈 등이 그것이다. 거기에 개인의 욕망을 표출하는 인물들이 더해져 결코 단순하지 않은 인간상들을 다양하게 보여준다.

 

언뜻 조화시키기 어려울 것 같은 근 2~3년 이내에 대두된 사회 문제나 사회 현상들을  굉장히 자연스럽게 담아낸 것이 굉장히 놀라웠다. 그 가운데 마티아스의 과거 이야기가 포함되어 있고, 조카님은 이것이 다소 생뚱맞다고 여겼던 모양이다. 하지만 나는 이 역시 설득력있는 인물의 과거사이자 인물 설정이라고 생각했다. 위험에 빠진 시민을 구해냈지만, 오히려 과잉 대처로 비난을 받게 되는 상황에서 마티아스가 느끼는 괴로움과 분노에 공감했기 때문이다. 그의 반대에서 마냥 그를 비난하기 바쁜 이들에게 나 역시 화가 났고. 

 

후반부가 약간 시시하다는 점, 그리고 인물들의 관계를 끼워 맞추다보니 개연성이 조금 떨어지는 것 같다는 점을 빼면 나름 재미있고 쉽게 잘 읽히는 소설이었다. 그리고 감히(겨우 하나 읽고) 추측하건대, 기욤 뮈소는 굉장히 기술적으로 글을 잘 쓰는 작가인 것 같았다. 배경이나 상황에 대한 묘사를 써내는 것을 전혀 어려워하지 않는, 막힘없이 써내려가는 스타일인 것 같다. 쓸데없는 감정의 소용돌이보다는 배경이나 상황에 대한 간결한 묘사를 택하고, 좁고 깊은 이야기보다는 넓고 얕은 이야기를 펼쳐내는 편이 아닐까. 처음으로 접한 소설이 나쁘지 않아서 언제든 가볍고 재미있게 읽고 싶은 게 생기면 그의 소설을 선택할 수 있을 것 같다. 

 

그 와중에 발견한 오류

잊어버리다 / 잃어버리다

 

" 첼로를 차 안에 놓아두고 자동차 열쇠를 꽂아둔 상태로 내렸던데 그러다가  잊어버리면  어쩌려고 그래? "

 

 

맥락 상 '잊어버리면'이 아니라 '잃어버리면'이 맞는 거 같다. 

일부러는 아닌데 우연히 이런 오류를 발견하면 그 순간부터 약간 주객이 전도된다. 갑자기 눈에 불을 켜고 오류를 찾고싶어진다. 물론 내용을 적당히 잘 따라가면서. 

 

역력하다

 

 

이건 오류라기 보다는 조금 어색하게 읽혀서 사전을 찾아봤다. 

 

역력하다
표준국어대사전: 자취나 기미, 기억 따위가 환히 알 수 있게 또렷하다. 
고려대한국어대사전 : (자취나 낌새가 어디에) 훤히 알 수 있게 분명하고 또렷하다.

 

 

뜻으로만 보면 쓰임이 잘못된 것 같지는 않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역력하다'가 쓰이는 경우는 물리적인 흔적이나 눈에 분명히 띄는 자국보다는 기분이나 분위기, 감정 등을 표현할 때 쓰이는 경우가 많다. 사전의 예문을 찾아보면 그 차이가 좀 더 와닿는다. 

 

 

나를 경계하는 것도 같고 두려워하는 것도 같은 그런 표정이 역력하게 드러나 있었다.

     출처 <<이청준, 조율사>>

 

말끝을 흐리는 엄마의 얼굴에 역력한 공포가 떠올랐다.

     출처 <<박완서, 도시의 흉년>>

 

사람들의 표정에는 우울하면서도 의기소침한 빛이 역력했고, 시끌벅적하던 아우성 소리도 언제 그랬나 싶게 땅속으로 꺼져 버렸다.

     출처 <<막심 고리키, 어머니>>

 

원균은 갑자기 안색이 굳으면서 어찌해야 할지 몰라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출처 <<고정욱, 원균 그리고 원균>>

 

 

이런 쓰임으로 주로 보다보니 '자국이 역력하다'는 표현이 어색하게 느껴진 것 같다. '흔적이 역력했다'는 식으로 쓰인 예문도 있으니 틀린 표현은 아니긴 하다. 아닌 것 같은데 그냥 내가 거슬리는거지. 

 

다양한 폰트의 사용이 주는 눈의 피로 

이건 좀 호불호가 갈릴 것 같다. <안젤리크>에는 일반적인 소설의 흐름 외에 기사글이나 인터뷰 상황이 자주 등장하는데, 여기에서 쓰이는 폰트가 각각 다르다. 

 

기사에 사용되는 폰트                                             인터뷰에 사용되는 폰트

 

 

 

기사는 한 페이지를 넘지 않는 짧은 분량이라 다소 부담스러운(?) 크기의 폰트여도 크게 무리가 되진 않았다. 그런데 마티아스의 과거를 들여다보는 과정에서 마티아스의 인터뷰 상황을 글로 옮긴 부분은 가독성이 그리 좋지 않은 타자기 형태의 폰트가 꽤 길게 이어졌다. 어떤 분위기를 주려고 했는지는 알겠는데, 눈에 피로를 주는 형태라 좀 많이 불편했다. 강조를 위해 짧은 문단에 사용되는 건 괜찮은데 이렇게 길게 이어지는 건 좀 눈이 아픈 것 같다. 내용이 눈에 잘 들어오지도 않고. 

 

 

뭐. 다 그냥 개인적인 의견입니다. 

 

책 얘기보다 사족이 더 길었던 <안젤리크> 감상문이었습니다. 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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