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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님에 대한 약간의 애정과 왠지 흥미로울 것 같은 스토리에 관심이 조금 있었는데 개봉 당시에는 선뜻 영화관까지 가서 볼 생각은 들지 않았다. 나중에 OTT나 VOD 나오면 봐야지 하고 미뤄두고 있었는데 마침 시간과 금액(?)이 맞아떨어져서 봤다. 

 

 

 

유령

※ 주의: 스포 매우 많음. 그냥 대놓고 다 말함.

 

 

굉장히 신경써서 힘을 빡! 주고 찍은 건 알겠다. CJ에서 신경을 썼던 작품 중 하나라는 얘기를 들은 기억이 난다. 화면 때깔부터해서 세트나 소품, 의상까지 진짜 신경 많이 쓴 느낌이 난다. 

 

조선총독부에 잠입한 유령(독립운동 단체인 흑색단의 요원)을 색출하기 위해 외딴 호텔에 갇힌 5명의 인물. 그들을 압박해오는 일본군과 그 과정에서 밝혀지는 비밀들(?)과 유령들의 활약을 보여주는 영화다. 

 

굉장히 흥미진진할 줄 알았는데 생각만큼 막 긴장감넘치고 쪼이는 느낌은 아니었다. 유령이 누구인지 처음부터 알려주고 진행되어서 그런 것도 있지만, 전체적으로 심리전보다는 육탄전에 가까운 느낌이라 그런 것 같다.

 

그런 면에서 조금 흥미로웠던 건, 여성과 남성의 육체적 대결 장면이 몇 차례 나오는데 여성이 힘이나 기술적인 면에서 전혀 밀리지 않는 느낌을 준다는 것이었다. 연약하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상대방 남성에게 날리는 주먹의 타격감이나, 힘겨루기에서 전혀 뒤지지 않는다. 이게 현실적으로 가능한가 싶을 정도로 대등한 수준으로 싸운다. 멋지고 신기한 경험이었다. 남녀의 대결에서 총칼을 다루는 능력이 아닌 신체적 능력으로도 밀리지 않는 느낌을 주는 우리나라 영화가 또 있었나 싶다. (있을지도 모름. 그냥 내가 처음 본 것 같아서 하는 말임.)

 

이하늬는 그래도 어느정도 이해가 됐는데, 박소담까지 그렇게 막 엄청난 신체적 능력을 보여주니까 문득 이 영화가 생각났다. 

 

<경성학교>와 <유령>은 같은 감독(이해영)의 작품이다.

 

경성학교를 무사히 졸업하고(?) 신체적 능력이 향상되어(?) 독립운동에 뛰어든 박소담인건가....? <유령>과 <경성학교>의 감독이 같다보니 이 요상한 유니버스를 연결짓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의도한 바는 아니었겠지만 나는 그랬다고. 그리고 뭐, 이렇게 연결되는 것도 괜찮아 보이는데? 나쁘지 않잖아? (아님)

 

나는 유령으로 의심받는 사람들을 호텔에 몰아 놓고 유령이 누구인지를 밝히는 과정을 보여주는 영화인 줄 알았다. 그런데 이건 사실상 전반부에 불과하고, 후반부에서는 그곳을 탈출한 이후의 이야기까지 보여준다. 그 과정에서 이야기가 조금 늘어지고 집중력이 떨어지는 느낌을 받았다.

 

유령에 집중할 줄 알았는데, 의외로 설경구 캐릭터를 꽤 비중있게, 그리고 심혈을 기울여 보여준 것이 문제였던 것 같다. 

 

설경구는 일본인 아버지와 조선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을 연기한다. 모든 것이 완벽해 보였지만 조선인의 피가 흐른다는 이유로 좌천되고 의심받는 인물인데, 이런 이유로 상당히 복잡하고 계속해서 의심의 끈을 놓을 수 없는 인물처럼 보여진다. 나는 사실 그래서 설경구가 뭔가 반전의 키를 쥐고 있을 줄 알았다. 다소 뻔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고서야 그렇게까지 신경써서 인물의 서사를 만들어줄 이유가 없지 않나. 하지만 설경구는 끝까지 조선을 부정하고 일본인이기를 자처하는 나쁜놈일 뿐이었다. 그런 놈인데... 왜 그렇게 뭐가 있는 것처럼 자꾸 서사를 줬지...? 번뇌와 갈등같은 걸 보여주고 싶었나...? 결국 그냥 일본 앞잡이일 뿐인 놈을...? 설경구가 죽는 장면조차도 너무 아름다운 연출을 해놨다. 아니 도대체 왜요... 감독님 도대체 왜 설경구 캐릭터에 왜 그렇게 신경을 쓴거예요... 설경구 캐릭터는 자신의 존재에 대한 근본적인 갈등 고뇌 번뇌 혼란 이런거 없이 그냥 오로지 일본인으로 인정받고 싶을 뿐인, 일본인으로서의 자아밖에 없는 나쁜놈이잖아요... 

 

 

 

마지막에 죽을 때에도, 총을 그렇게 맞고도 단번에 죽지 않고 자기 할 말을 다 하고 죽는다. 사실 나는 이때, 설경구가 뭐라고 씨부리기 시작했을 때, 말을 끝맺기 전에 그냥 시원하게 처단해버리는 결말을 생각했다. 그런 놈이 할 말을 다 하고 죽는 것 따위 보고 싶지 않았다. 말이 끝나기도 전에 쏴버려도 시원찮을 판에 끝까지 다 들어주고 죽이는 엔딩이라니. 이거 정말 너무 마음에 안 들었다. 

 

개인적으로 가장 좋았던 캐릭터는 서현우 배우가 연기한 천계장이었다. 처음엔 그냥 조금 재미있는 캐릭터인가보다 했는데, 본격적으로 호텔에 갇힌 뒤부터는 진짜 제일 눈에 띈다. 자신만의 세계가 확실하고 그래서 밀고도 서슴치 않는 인물인데, 그것이 밉긴커녕 너무 귀엽다. 인물 빌드업이 진짜 너무 좋다. 암호 해독 전문가답게 전문분야에서는 멋지게 활약하고, 그 외의 부분에서는 인물 특유의 개성이 흘러 넘친다. 강박에 가까워보이는 가지런한 정리정돈이나, 이성적이고 냉철할 것만 같은 모습과는 달리 오컬트를 신봉하고, 인간보다 고양이를 더 사랑하는 정말 독특하고 귀여운 인물이다. 

 

 

그래서 가장 마음이 가고, 끝까지 살아남길 바랐는데... 개인적으론 천계장의 죽음 이후로 영화의 재미가 뚝 떨어졌다. 무게잡는 인물들 속에 단비같은 귀여움을 선사하던 인물이었는데... 천계장 캐릭터 진짜 너무 좋았다. 의외성을 가진 캐릭터인데 참 잘 만들었고, 참 잘 연기했다. 

 

내 생각에 <유령>은 여성 투톱물이다. 미스터리하게 시작했으나 마무리까지 가는 과정을 보면 이것은 누구도 부정하지 못할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 너무 쓸데없는 양념이 너무 많다. 설경구와 박해수는 누가누가 더 나쁜놈일까요 알아맞춰보세요 하는 수준인데, 둘이 뭐 되게 심오하게 엮인다. 그리고 둘의 대결도 너무 진지하게 펼쳐진다. 하나도 관심 없는데요. 그냥 시원하게 총으로 빵빵 해버리고 살아남은 자가 유령을 쫓든, 둘 다 죽어버리든 했으면 좋겠는데요. 

 

설경구와 박해수를 강조할 시간에 박차경과 유리코의 서사를 좀 더 보여주지. 정작 박차경과 유리코의 이야기는 대사로 대충 얼버무린다. 사실 둘의 이야기가 엄청 감동적이거나 공감가지도 않는다. 박차경은 뭐 그렇게 사랑으로 엮이는 일이 많은지 모르겠다. 유령이 된 것도 사랑하는 사람때문이라고 하고, 함께 호텔로 끌려온 백호는 뜬금없이 박차경을 좋아한다고 고백하질 않나. 백호와 차경이 좀 애틋하고 비극적인 관계로 그려지긴 하는데, 약간 예측 가능한 전개였다. 

 

그러고 보니 과거까지 굳이굳이 영상으로 설명해준 게 설경구밖에 없네...? 도대체 설경구 캐릭터에 그렇게까지 신경을 쓴 이유가....? 

 

이 찜찜함은 엔딩 크레딧에서 정점을 찍는다. 크레딧에 설경구가 제일 먼저 이름을 올린다. 그다음이 이하늬, 박소담. 아니 이게 맞아요, 진짜? 설경구가 처음에 나오는 게 맞냐고요??? 이 영화 주인공이 설경구였어요?? 설경구가 유령이에요?? 왜 이하늬가 아니라 설경구지? 왜? 어째서? 

 

영화는 사실 오락영화로 보기 괜찮다 싶은 정도였는데 설경구의 죽음 장면과 엔딩크레딧에서 너무 충격을 받아서 영화에 대한 감상이 완전히 무너졌다. 제목은 유령인데 유령인 배우가 아닌 유령 잡는 일본인 역할의 배우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셈이다. 이게 맞냐고요. 

 

 

 

 

이하늬와 박소담이 너무 잘 해줬고, 여성들의 연대도 너무 멋있었는데, 이걸 자랑하기엔 영화가 너무 찝찝하게 끝난다. 집중과 강조의 대상을 잘못 잡은 것 같다. 심지어 엔딩이 이하늬와 박소담인데, 하나도 안 멋있다. 뭔가 좀 가볍고 어이없는 느낌이다. 설경구가 죽는 장면은 그렇게 신경써서 멋지게 연출을 해놓고. 

 

결론

  • 이하늬, 박소담 액션 좋아요.
  • 이하늬, 박소담 총 쏘는 거 멋있어요.
  • 이하늬, 박소담 능력치 대박이예요.
  • 박소담 찰진 욕과 까랑까랑한 일본어 하는 모습 너무 매력적이에요.
  • 박소담 신체회복능력이 무빙 장주원 뺨쳐요(?)
  • 천계장이 귀여워요.
  • 미장센은 좋아요. 

 

 

근데 보고 나면 찝찝해요. 통쾌하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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