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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닝타임이 세 시간이라는 건 알고 봤는데, 생각했던 것보다 몸이 좀 힘들긴 했다. 화장실은 괜찮았는데 허리도 아프고 엉덩이도 아프고... 어지간한 영화가 아니었으면 진짜 집중력 떨어졌을 듯.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몰입해서 잘 봤다. 

 

오펜하이머 

 

 

 

두서없이 막 늘어놓는 감상이다. 

 

놀란이! 킬리언 머피를 엄청 좋아한다더니!! 오펜하이머로 아주 뽕을 뽑았구나! 

킬리언의 얼굴 클로즈업으로 시작되는데, 이 때 킬리언의 눈동자가 정말 너무 아름답고 오묘하고 환상적이다. 원래 그렇게 신비로운 눈동자를 가진 배우인 줄은 알았는데, 영화 내내 킬리언의 눈이 강조될 때마다 속으로 탄성을 내질렀다. 와.. 진짜 환상적이다. 그리고 진짜 돋보이게, 예쁘게 잘 찍었다. 킬리언의 눈동자뿐만 아니라 킬리언의 얼굴이며 분위기 자체에 공을 들이고 엄청 신경쓴 게 느껴졌다. 주인공인 오펜하이머를 잘 보여주고자 하는 마음이었겠지만, 그 덕분에 킬리언이 독보적으로 아름다운 존재감을 뽐낼 수 있게 되었다. 이것이 바로 덕후의 덕질이로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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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의 놀란의 영화를 듬성듬성 봤다. 테넷은 봤지만 덩케르크는 못 본 정도? 그래도 따져보니 꽤 보긴 했다. 메멘토-다크나이트 시리즈-인셉션-인터스텔라-테넷까지. <오펜하이머>는 SF가 아닌 전기영화라는 사전 정보를 접하고는 인셉션-테넷 라인보다는 덩케르크 라인에 가까울 것 같아서 덩케르크를 못 본 게 조금 아쉬웠다. 그런데 보고 나니 영화의 장르는 달라도 연출이나 분위기는 인셉션-테넷 라인, 더 나아가 메멘토까지 떠올리게 해서 신기했다. 인물을 중심으로 다루는 전기영화이나 시간선을 복잡하게 꼬아 보여주는 것이 놀란다웠다고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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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펜하이머의 대학 시절 

- 맨해튼 프로젝트 시작 전, 오펜하이머의 대학 교수 시절

- 맨해튼 프로젝트의 책임자로서의 오펜하이머 

- 종전 이후의 오펜하이머(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와 엮이는)

- 원탁 회의에서의 오펜하이머

- 보안 인가 청문회의 오펜하이머 

 

대략 이런 순서로 오펜하이머의 일대기가 흐른다. 그런데 이 오펜하이머의 시간들이 가장 최근인 스트로스 제독(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의 인사청문회를 통해 되짚어진다. 영화가 흑백과 컬러를 오가는데, 이게 뭔 의미가 있다고 얼핏 들었던 것 같은데.. 기억이 안 난다. 오펜하이머 시간들이 컬러고, 스트로스의 시간은 흑백이었나...? 

 

시간선이 꽤나 복잡하게 얽힌다. 그래도 웬만하면 다 파악이 되는데, 좀 헷갈렸던 게 원탁회의 장면이었다. 스트로스 제독과 오펜하이머의 첫 만남 장면에서는 스트로스 제독과 오펜하이머 중 오펜하이머에게 좀 더 우위에 있는 모습처럼 보이는데, 원탁회의 장면에서는 그 권력의 추가 스트로스 쪽으로 쏠려있는 것 같았다. 그래서 이게 도대체 어느 시점이냐... 언제 이렇게 스트로스랑 오펜하이머의 관계가 역전이 되었느냐...가 궁금했는데 시간이 흐를수록 원탁 회의는 종전 후의 시점이고, 그 쯤 스트로스가 꽤나 정치적 권력을 손에 쥐고 난 상태임을 짐작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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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로스 이 나쁜놈 

열등감과 자격지심으로 똘똘 뭉쳐서, 결국 스스로 제 앞길을 말아먹는 놈 

 

 

오펜하이머와 아인슈타인에게 스트로스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 아무것도 아닌 놈이었는데 이 놈이 자격지심에 꽁해가지고! 이 나쁜 놈이! 오펜하이머를!!! 

 

사실 나는 그 장면에서 오펜하이머와 아인슈타인이 나누는 대화가 별 거 아닐 줄 알았다. 아인슈타인이 어두운 표정으로 오펜하이머에게서 등을 돌리는 건 서로의 가치관이 맞지 않아 그저 인사를 나누고 아는 척을 하는 것마저도 내키지 않아서, 그래서 그런 줄 알았다. 그래서 정말 아무일도 없었는데, 스트로스가 괜한 오해를 하고 그 오해가 열등감과 만나 눈덩이 불 듯 커진 것일 줄. 

 

그런데 오펜하이머와 아인슈타인의 대화가 생각보다 되게 심오한 것이었다. 무려 엔딩을 장식하는, 그치만 스트로스와는 전혀 아무런 관계도 없는 게 맞는. 

 

역시, 결론은 스트로스 이 나쁜놈!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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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캐스팅을 자랑하는 와중에 제일 눈에 띄었던 배우는 의외로 조쉬 하트넷이었다. 사실 나오는 줄도 몰랐다. 그런데 너무 건장하고 우람하고 멋진 교수님으로 나와서 나올 때마다 너무 보기 좋았다. 비쩍 말라서 예민해 보이는 오펜하이머와 함께 있을 땐 상대적으로 더 건강하고, 씩씩하고, 그런 이미지로 느껴졌다. 되게 오랜만에 보는 것 같은데 분위기가 되게 좋았다. 반갑고 보기도 좋아서 인상깊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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맷ㅠㅠㅠ 맷 데이먼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우리 맷이 군인으로 나온대서 되게 안 어울린다고 생각했거든요? 군인? 구운이인? 왜냐면 보통 헐리웃 영화에서 군인은, 주인공이 아닌 한 좋은 역할로는 안 나오니까요.

 

융통성 없고 고지식하고 아무튼 되게 안 좋은 이미지로 주로 나오는지라, 고위급 군인이라고 해서 우리 맷이 어떻게 그런 배역을 맡았을까ㅠㅠ 우리 맷 뭘 보고? ㅠㅠㅠ 이랬는데 보고 나니 왜 맷 데이먼이 그 역할을 했는지 알겠다. 맷 데이먼의 부하이긴 했으나 같은 군인으로 나왔던 데인 드한 봐봐. 보통 군인은 그런 이미지라고. 

 

맷 데이먼(그로브스 장군)은 보기 드문 좋은 군인이었다. 처음엔 좀 강압적인 사람인 줄 알았는데, 갈수록 오펜하이머와 진심으로 교감하고 서로에게 든든한 조력자가 되어주는 인물이었다. 알고 보니 MIT 출신의 이과생이라 오펜하이머랑 더 잘 통했나보다. 

 

 

<오펜하이머> 출연자 중 가장 좋아하고 기대했던 배우가 맷 데이먼이었는데, 역할도 좋아서 만족도가 엄청 높아졌다. 사명감과 책임감은 물론, 인간적이기도 한 그로브스 장군 아주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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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이 영화가 도대체 왜 15세입니까? 

논란이 되는 장면들에 대한 이야기를 이미 들어 알고 있었던 터라, 영화 시작 전 우르르 몰려 들어오는 중학생 남짓한 학생들의 모습을 보고 괜히 안절부절 못했다. 워낙 인기 많은 감독의 신작이라 15세 정도면 초딩까지도 다 보러 올 수 있는 정도인데, 과연 이 영화를 그렇게 어린 아이들이 봐도 될 것인가... 언제부터 우리 나라가 이렇게 노출에 관대해 졌나. 

 

더 나아가서는, 굳이 앵글을 그렇게 잡은 놀란이 너무너무 원망스러웠다. 그렇게 다 안 보여줘도 이야기를 진행하고 이해하는 데에는 아무 문제가 없었는데. 둘이 대화하는 장면만이라도 좀 어깨 위로 좀.. 응? 그렇게 잡아주고.. 둘이 첫 만남에 교감하는 것도 그냥 대화 정도로 풀어 갔어도 될 것 같은데.. 도대체 왜.. 오펜하이머가 호사가요, 바람둥이라는 사실은 나중에 대사로 퉁쳐서 잘만 보여주더만, 진과의 관계는 왜 그렇게 노골적인 앵글로 잡아놨는지 모르겠다. 오펜하이머의 청문회 씬에서 등장하는 진의 모습 또한, 굳이 그랬어야 했나 싶고. 그런 방식이 아니어도 충분히 잘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이잖아요, 놀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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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끝나자 여기저기서 완전 이과영화잖앜ㅋㅋㅋ 하는 소리들이 들렸다. 아니.. 이게 그렇게 받아들여지다니. 나는 너무나 너무나 인문학적인 영화라고 생각했는데. 양자물리학이니 뭐니 하는 전문용어들이 나오긴 하지만 그건 인물들을 설명하기 위한 아주 작은 요소일 뿐이고, 영화는 그저 집중해서 오펜하이머라는 인물을 잘 따라가기만 하면 된다. 그 과정에서 일어나는 인물의 행동이나 심리 변화라든지, 고뇌 같은 것들을 느끼면서. 사실 <인터스텔라>나 <테넷>도 굳이 영화의 바탕이 되는 여러 물리학적 이론들을 알지 못해도 스토리를 이해하는 데 크게 무리가 없다고 생각하는 입장에서, <오펜하이머>는 그보다 훠얼씬 더 쉬운 편이라고 생각한다. '인물'과 '이야기'만 잘 따라가면 되니까. 

 

 

<오펜하이머>는 놀란이 놀란 식으로 만든 '사람'에 대한 영화니까. 핵폭탄을 만드는 과정이 아니라 그것을 만든 '사람'에 대한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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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사실 이건 굳이 아이맥스로 안 봐도 될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놀란의 영화이긴 하지만 스케일을 자랑하거나 장면들이 거의 없고, 주로 인물 클로즈업에 집중하는 영화라서. 킬리언의 얼굴 감상 및 인물들의 표정, 감정의 변화를 좀 더 거대하게 느끼고 싶다면 물론 주저없이 아이맥스를 선택하면 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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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란의 전작 중 <오펜하이머>와 가장 닮은 작품은 <메멘토>같다. <메멘토>가 인물의 기억을 조각내고 섞었다면, <오펜하이머>는 인물의 삶을 잘게 조각내 섞은 느낌이다. 끝까지 다 봐야 하나의 시간선을 완성할 수 있다는 것도 비슷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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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론 아주 흥미롭고 재미있었는데, 호불호가 갈리는 것도 이해한다. 일단 <오펜하이머>는 우와앙 쾅쾅 하는 느낌의 영화가 아니고, 세 시간이라는 러닝타임이 정말 쉽지 않기 때문이다. 러닝타임이 꽤 길다 하는 전작들도 아슬아슬하게 3시간을 넘지 않았던 것에 비해 <오펜하이머>는 꽉 채운 3시간이다. 몇 분 차이라고는 해도 이게 영화적 재미를 따졌을 때 <오펜하이머>는 정말, 버티기가 쉽지는 않은 영화다. (인터스텔라 169분 / 인셉션 147분 / 테넷 15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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킬리언 머피 연기 천재 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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