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반응형

 

오랜만에 보고싶은 영화가 생겼다. 미루다간 놓칠 것 같아 맘 먹은 김에 바로 보러 갔다. 

 

존 오브 인터레스트 Zone of Interest

 

 

이래도 되나 싶은데, 나치나 홀로코스트 소재에 유독 흥미가 생긴다. 재밋거리로 여긴다기 보단, 그저 어떤 시선으로, 어떤 방식으로 그 시대를, 그 비극을, 그 악을 표현해 냈을까 하는 아주 단순한 호기심. 

 

정원을 나서면 곧장 군인들이 지키고 서 있는 수용소의 입구가 보인다. 정원은 수용소의 벽과 맞닿아 있고, 화창한 날씨에도 하늘에  피어오르는 시커먼 연기는 끊이지 않는다. 영화 내내 누군가의 고함소리와 총소리가 배경음악마냥 깔린다. 그 비극을 배경삼아 단란하고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살아가는 가족이 있다. 그곳은 아우슈비츠의 가장 가까운 곳, 그들만의 동화같은 보금자리이다. 

 

담백하게 가족의 일상을 보여주는 듯 하던 분위기가 중반 이후로 조금씩 그들의 위선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허드렛일을 도맡아 하지만 없는 사람 취급을 당하던 이들이 갇혀 있던 벽을 뚫고 하나의 존재로 드러나게 되는 순간은 '아무도 모르게 널 재로 만들어 버릴 수 있다'와 같은 협박을 받게 되는 순간이다. 그리고 스치듯 짧게, 카메라가 그들의 삶을 비춘다. 밤새 울어제끼는 갓난아이를 돌봐야 하는 여자가 있고, 집 뒤꼍에서 사랑을 속삭이는 이들도 있다. 똑같은 감정을 느끼는 모두 다 같은 사람이다. 

 

중간중간 완전히 이질적인 화면이 섞여든다. 열화상카메라로 찍은 듯한 느낌의 장면인데, 그 장면이 처음 나왔을 땐 무슨 장면인지 이해하지 못했다. 두 번째로 그 장면을 다시 보았을 때에야 어떤 상황인지 이해가 됐다. 소녀가 과일을 잔뜩 싸들고 나와 다급히 흙더미에 쑤셔 놓고, 빼곡히 꽂힌 삽에도 숨기듯 넣어 놓는다. 아마도 노역을 하는 장소일 것이고, 소녀는 그들을 위해 몰래 과일이나 먹을거리를 놓아두고 오는 것 같았다. 

 

이후, 사과 한 알을 놓고 싸운 사람들 때문에 생긴 소란이 창 너머로 들려오기도 한다. 

 

저런 짓을 하면, 인간이 인간으로 보이기나 할까? 라는 의문이 생길때 쯤 놀랍게도 독일인으로 가득 찬 파티장을 내려다보며 어떻게 하면 가스를 사용해 그들을 효과적으로 죽일 수 있을까-라는 상상을 하는 독일인을 만나게 된다. 

 

구토를 하는 장면을 보고, 앞서 의사의 검진을 받는 장면을 떠올리며 죽어라 이 나쁜놈! 했는데 그건 나같은 하수나 하는 생각이었다. 갑자기 튀어나온 현대의 아우슈비츠를 쓸고, 닦는 장면이 그렇게 연결이 된다. 현재의 아우슈비츠가 어떤 모습인지 전혀 몰랐는데 그냥 그 장면들이 되게 가슴을 묵직하게 짓누른다. 

 

영화 속에서 언급되는 이름들이 많은데, 과연 다들 실존 인물일까가 궁금해졌다. 들었을 때 확실히 아는 이름은 아이히만과 히틀러밖에 없어서. 

 

 

 

■■

영화를 볼 땐 스마트 워치를 풀든지... 영화 모드로 하든지... 아무것도 안 할거면 팔을 가만히 좀 놔두든지... 가뜩이나 작은 영화관에서 봤는데 자리를 잘못 잡았는지 바로 옆에서 그렇게 자꾸 움직여대고 팔을 들었다 놨다 머리를 쓸어 넘겼다 하는 바람에 워치가 번쩍번쩍 난리가 났고요. 한 자리 건너 뛴 왼쪽 사람은 시작부터 핸드폰을 보더라고요. 양 옆에서 번쩍번쩍 아주 즐거운 영화 관람이었다. 

 

 

 

반응형
댓글
«   2025/01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Total
Today
Yesterd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