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엄마가 시골에 가신 일주일 간 조카님들 저녁 식사를 책임지게 되었다. 뭐, 대단한 건 아니고, 내가 퇴근이 조금 빠르니까 먼저 준비를 시작해서 너무 늦지 않은 시간에 다 같이 저녁을 먹을 수 있게 하는 정도의 책임.
이 날은 언니의 퇴근이 조금 늦어져서 준비한 저녁을 조카님들이랑 먼저 먹기 시작했다. 올해로 초6과 중2인 조카님들은 저녁 식사 시간에 엄---------------청 조잘거린다. 주로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는 것인데, 시험이나 테스트가 있었던 날이면 점수 자랑이나 점수 맞추기를 이끌기도 하고, 급식 메뉴로 경쟁이 붙기도 한다.
일리가 며칠 전 학교에서 시 짓기를 했던 모양이었다. 가족들 중 한 명을 주제로 쓰는 것이었다는데, 누구를 주제로 했을까요?가 첫 번째 퀴즈였다. 엄마, 할머니, 아빠를 물었는데 다 아니래. 그래서 설마 언니????? 이랬더니 애가 배시시 웃는다. 일령이도 나??? 하며 놀란다.
두 번째 퀴즈는 제목이 무엇이었을까요? 였다. 처음엔 세 글자 단어라고 힌트를 줘서 이런저런 단어며 표현들을 이야기했는데 다 아니라고 한다. 나중에는 해마다 반복되는 것이라는 힌트를 추가해 줘서 계절! 사계절! 이라고 외치고 내가 맞췄다. 이런 거 은근 좋아함
그럼 이제 시를 어떻게 썼느냐가 너무 궁금해지는 거다. 일령이는 자기에 대한 안좋은 얘기만 쓴 거 아니냐고 하면서 장난을 치다가, 혹시 봄처럼 따뜻하고~ 뭐 이런 식으로 쓴거냐 하고 놀리듯 물었다. 그런데 일리가 웬일로 아니라고 부정을 하지 않는거다! 세상에? 일령이도 난리가 났다 ㅋㅋㅋ 진짜로 그렇게 썼냐고 ㅋㅋㅋㅋ
얘기를 해줄 듯 안해줄 듯 애를 태우는 일리를 조르고 졸라 드디어 시의 내용을 들었다. 정확하게는 기억이 안 나는데, 아무튼 봄, 여름, 가을까지는 제법 계절을 닮은 좋은 의미로 썼고, 겨울처럼 차갑다는 얘기로 마무리를 했는데, 그것도 나쁘진 않았다. 왜냐면 일령이가 일리한테 되게 쌀쌀맞게 굴 때도 있거든. 그거는 일령이도 인정하는거라 오?? 맞는데??? 하며 동의했다.
근데 이때 갑자기 일령이가 말이 없어졌다. 보니까 금방이라도 울 것처럼 얼굴이 빨개져 있다. 일리가 언니를 놀린답시고 어? 언니 운다? 울어? 우는거야? 하는데 일령이가 반박도 않고 눈물이 그렁그렁 고이더니 히잉 하고 울기 시작했다. 엄청 감동을 받았나보다. 그런 일령이를 놀리던 일리도 갑자기 울먹울먹하더니 같이 우엥하고 운다. 아니 너는 또 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둘이 같이 우는 게 너무 당황스럽긴 한데 우는 이유가 너무 귀여워서 달랠 생각도 않고 엄청 웃었다. 뭐야뭐야 일리때문에 일령이가 감동받아 울고, 그런 언니를 보며 일리도 울컥해서 울고 모야모야 너네 모야 ㅋㅋㅋㅋㅋ 이러면서 놀렸다. 으른이란...
진작 카메라를 켰어야 했는데!!!! 우는 건 다 놓쳤다. 늦게나마 카메라를 들었더니 안 찍히겠다고 뒤로 돌고 아래로 숨고 난리가 났다. 그래도 휴지 들고 있는 건 찍었다 ㅋㅋㅋ
'하루'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240410 | 장항역-장항스카이워크/송림/서천갯벌-국립생태원 (뚜벅이 당일치기 혼여) (0) | 2024.04.11 |
---|---|
20240406 | 종로-종묘-창경궁 나들이 with 일리 (0) | 2024.04.08 |
김용익 <꽃신>을 읽고 with 일령 (0) | 2024.03.19 |
20240301 | 국립중앙박물관 거울못식당 (0) | 2024.03.02 |
20240128 | 인사동 도마 갈비솥밥정식 (25,000원) (0) | 2024.02.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