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서련 작가의 작품을 몇 개 더 보고 싶어 골라온 것 중에 하나였다. 앞서 본 〔마르타의 일〕이 썩 맘에 들지 않아 이것도 별로면 이제 박서련 작가는 그만 봐야지 했는데, 곤란하게 됐다. 이건 또 괜찮네. 나, 참.
경성 제일 끽다점 카카듀 / 박서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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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제목은 〔경성 제일 끽다저 카카듀〕라고 읽어야 하는 거겠지? 아무튼 끽다점이 뭔가 했더니 차를 즐기는 상점, 다시 말해 그 시대의 카페였다. 그러니까 경성에 있었던 카페 카카듀인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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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이야기는 엉뚱하게도 영화감독 이경손에서부터 시작한다. 자신보다 한 살 많은 조카 가족의 이동을 도와주는 이야기에서 시작된 이야기는 이경손이 예술에 빠져 연극을 시작했다 말아먹고, 영화 감독이 되기까지의 여정을 상세히 설명하더니, 나중에서야 그때 그 한 살 많은 조카와 다시 만나 경성에 카페를 내는 이야기를 겨우 내어 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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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과정에서 익숙한 이름들이 많이 등장한다. 내가 알아본 것은 사실 몇 개 안되는데(이애리수, 나운규 정도?) 아마 그 시절 우리나라 영화계나 예술계에 익숙한 사람들이라면 반가워할 인물들이 많이 등장하는 것 같다. 박서련 작가가 이런 걸 참 잘 하는 것 같다. 실제에 기반한 창작. 실존 인물들을 엮어 놓는 것. 역사의 빈틈을 이야기로 메꾸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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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카듀를 열고, 여전히 나(이경손)은 어리바리 우유부단하기만 한 것 같은데, 난데없이 일본 경찰로부터 두들겨 맞는 사건이 벌어진다. 이야기를 통틀어 가장 크고 갑작스럽고 예측불가한 사건이다. 이 사건을 기점으로 이야기의 분위기가 또 완전히 뒤바뀐다. 처음에 슬쩍 들려주었던 매형의 이야기가 여기서 다시 이어붙고, 한 살 많은 조카 현앨리스의 정체가 서서히 드러나는 것이다. 이때 내내 삼촌대우를 하던 앨리스가 본색(?)을 드러내며 나를 애취급하는데, 묘한 희열이 느껴진다. 나 왜 이런 거 좋지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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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를 잊으면 안 된다. 결국 독립운동이다. 그저 커피를 파는 곳을 드나드는 예술가들 얘기를 하고자 함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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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작스런 전환을 맞은 이야기는 다소 급작스럽게 마무리되는 느낌이기도 하다. 앨리스의 계략을 두고두고 곱씹는 나의 현재는 이전과는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태국에서 결혼해 살고 있는 사업가라니. 이 과정도 간단히 얘기는 되지만, 그래도 중요한 건 나의 삶을 완전히 뒤바꾸어 놓은 앨리스의 존재이며, 앨리스에 대한 뭔지 모를 감정이다.
그 여자는 밖에 있다. 지금 있다. 어디에나 있을 수 있다. 그 여자는 내 의도에 갇힌 적이 한순간도 없다. 언제나 내가 예상하지 못한 자리에서 나를 똑바로 쳐다보고 있었다. 나는 발견된다. 내가 쓴 앨리스가 나를 발견한다. 내 특기는 여주인공을 놓치는 것. 나는 언제나 내 인생의 서사를 스스로 장악하고 있다고 착각해왔다.
그리고 현앨리스가 나타난다.
이것이 나에게 일어날 모든 일의 가장 불가해한 요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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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게 잘 읽었다. 〔체공녀 박주룡〕을 좋게 본 사람이라면 이것도 분명 좋아할거다.
20260419 | 체공녀 강주룡 / 박서련
진짜 아무 생각 없이 스쳐 지나다 눈에 띈 책이었다. 얼핏 들어본 것도 같고...? 하는 생각을 하며 가볍게 빌려 왔는데. 체공녀 강주룡 / 박서련 ■아니 이거 너무 좋잖아 몇 번이나 나를 울컥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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