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운 식인
/서구의 야만 신화에 대한 라틴아메리카의 유쾌한 응수
임호준
세계 여러 지역에서 보고된 식인 풍습과 달리, 우연하게도 유럽은 역사 이래로 식인 풍습이 그다지 발달하지 않았다. 인류학자 마빈 해리스의 설명에 따르면 유럽 지역의 식량 사정이 다른 곳보다 나았던 것이 이유일 수 있다. 즉 5대 가축인 소, 돼지, 양, 말, 염소 등 동물이 풍부했고 인구 또한 중국처럼 밀집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유럽인들이 사람의 희생을 꺼리거나 사체를 존중했던 것은 아니다. 유럽에는 사람을 불태워 죽이는 풍습이 널리 퍼져 있었고 오랫동안 지속되었다. 해리스에 따르면, 켈트의 전사들은 갓 잘라 낸 적군의 머리들을 이륜 전차에 싣고 다녔으며, 집으로 가져가 서까래에다 주렁주렁 매달아 놓았다고 한다. 또한, 악명 높은 종교 재판, 마녀사냥 등으로 공개 화형도 자주 집행되었다. 고대 기독교 문화에서 사람을 번제물로 바치는 풍습은 일찍부터 양이나 염소로 대체되었는데 이것 역시 고대 근동에서 이런 가축들을 쉽게 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렇듯 유럽에서 인체에 대한 여러 잔혹 행위가 횡행했음에도 유독 식인 풍습만 발달하지 못한 탓에 유럽인들은 식인을 가장 야만적인 행위로 여기게 된 것이다.
번제물
│ (기독교) 구약 시대에, 제사를 지낼 때 통째로 태워 바치던 동물. 또는 그런 제물.
│ 어떤 일을 위하여 희생되는 사람이나 물건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책을 후루룩 읽어 넘기다가 다시 돌아왔다.
번제물.
맥락상 이게 불에 태워 바치는 제물이라는 건 알겠는데, 묘하게 이상하다.
번제물...
burn...제물...?
그럴리가 없다는 걸 알면서도 자꾸 이렇게 연상이 된다.
결국 사전을 찾아보았고, 뒤늦게 불에 태운다는 뜻의 한자 '번'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너무 잘 알고 있는 한자였다.
구하구하 龜何龜何
수기현야 首其現也
약불현야 若不現也
번작이끽야 燔灼而喫也
구지가에서 너 구워먹는다! 하고 협박할 때 쓰는 번이다.
이 번을 알면서도 영어단어 burn을 먼저 떠올리다니.. 영어도 못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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