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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영화를 보자고 꼬시면 조카2는 꽤 높은 확률로 넘어와 준다. 그게 나의 꼬심에 넘어온건지, 아니면 심심해서인지, 혹은 나랑 영화 보는 걸 핑계로 해야 할 일들(씻고 이 닦고 일찍 자기 등)을 미루고 싶어서인지는 모르지만, 아무튼 내가 슬쩍 영화 볼래? 하면 대부분 받아주는 고마운 조카님이다.
그런 조카2님이 갑자기 슬픈 영화 없어요? 하고 물었다. 그 순간 나는 이 영화가 떠올랐다.
헬로우 고스트 (2010)
죽는 게 소원인 외로운 남자 상만(차태현). 어느 날 그에게 귀신이 보이기 시작한다. 거머리처럼 딱 달라붙은 변태귀신, 꼴초귀신, 울보귀신, 초딩귀신. 소원을 들어달라는 귀신과 그들 때문에 죽지도 못하게 된 상만. 결국 그들의 소원을 들어주는 사이, 예상치 못했던 생애 최고의 순간과 마주하게 되는데… |
커뮤니티에 이 영화 얘기가 나오기만 하면 다들 눈물을 줄줄 흘리면서 격한 반응들을 보여서, 나는 이 영화에 대한 약간의 환상과 로망이 있었다. 오래된 영화이다보니 어쩔 수 없이 스포를 모두 알아버리긴 했지만, 그래도 내가 직접 확인하고 그 놀라운 반전과 감동을 느껴보고 싶었다.
지금이다 싶었다. 조카2가 나에게 '슬픈영화'를 물어본 바로 지금.
너무 유명한 영화라 설명할 게 없다. 다만 첫 장면부터 자살을 시도하는 주인공 때문에 조카2님의 눈치를 봐야 했다. 초딩에게 이런 내용은 너무 해로운 거 아닐까.. 아무리 가볍게 지나가는 거라고 해도... 어린이와 같이 볼 땐 영화의 모든 장면에서 과민해진다. 아무튼 어쩌구 저쩌구 해서 보고 있었는데 아무래도 옛날 영화는 옛날 영화였다. 그 소박하고 예스러운 설정과 장면과 연기들이 아무래도 지금 보기엔 조금 어색해보일 수 밖에 없었다. 조카님도 어쩐지 별로 재미 없어하는 것 같고... 근데 또 재미 없으면 그만 볼까? 하고 물어도 아니란다. 잘 보고 있단다.
모두가 입을 모아 말하는 그 부분, 영화의 백미, 엔딩까지 가기가 조금 힘겨웠다. 버티고 넘어야 할 난관이 좀 많다. 이건 그냥 환상으로 남겨둘 걸 그랬나 싶기도 했다. 그래도 어떻게 꾸역꾸역, 힘겹게 끝까지 왔다.
그리고 나는 이미 줄줄 울고 있었다.
다 아는데도 눈물이 났다. 어쩔 수 없다. 나는 영화가 울어! 하면 우는 사람이다. 스포를 알고 있어서 오히려 더 일찍부터 눈물이 터졌다. 그리고 조카2도 조금 울었다. 근데 내가 더 많이 울었다. 다 알고도 이렇게까지 울 줄은 몰랐다. 영화의 90% 이상이 너무 보기 힘들어서 그만 보고 싶었을 정도였는데, 울라고 시키니까(?) 넵 ㅠㅠ 하고 울었다. 하...
차라리 이 영화를 그 당시에 보았다면 이렇게까지 보기 힘들진 않았을텐데. 이제 보니 너무 어설퍼보이는 설정과 장면들을 보니 혹시라도 아직 이 영화를 보지 않은 분들이 있다면 그냥 보지 말고 환상으로만 남겨두는 것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그럴 걸 그랬나 싶기도 하고..... 기분이 어째 쫌 찜찜하다. 울긴 울었는데 개운하지가 않어...
조카2를 좀 울리고 싶었는데 오히려 내가 더 많이 울어버려서 아쉽다. 조카2가 뿌앵하고 우는 걸 보면 너무 귀엽고 즐겁다. 지난번에 기예르모 델 토로의 <피노키오>를 보면서 조카2는 정말 말 그대로 뿌애앵하고 울었다. 아. 그 모습을 다시 보려면 어떤 영화를 봐야 하려나. 슬픈 영화를 좀 찾아봐야겠다. 조카2가 더 크기 전에, 뿌앵하고 울 수 있을 때 그 모습을 많이 봐둬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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