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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다

20220917 해저 2만리 / 쥘 베른

카랑_ 2022. 9. 17. 1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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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을 책을 정해두지 않은 채 도서관을 정처 없이 헤매다 발견했다.

유명한 작가의 유명한 책인데 읽은 기억이 없었다.

어린 시절의 나는 도대체 무슨 책을 읽었던 걸까... 아니, 책을 읽기는 했던 걸까. 왜 이렇게 읽은 책이 없지??

 

소설은 정체불명의 거대 바다괴물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이전까지는 본 적 없던 거대한 바다괴물을 추적하는 탐사대가 꾸려지고, 여기에 이야기의 서술자인 아로낙스 교수가 함께하게 된다. 그리고 아로낙스 교수는 거대 바다괴물의 실체와 마주하게 된다.

사실 나는 여기까지가 제일 재미있었다. 거대 바다괴물이 정말 살아있는, 전설 속의, 신비로운 동물이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다. 

 

거대 바다괴물의 정체는 네모 선장이 이끄는 노틸러스호라는 잠수함이었다. 아로낙스 교수와 일행은 네모 선장의 포로가 되어 바닷속 여행을 시작하게 된다. 

 

그리고 여기서부터는 온갖 박물학과 백과사전식 정보가 넘쳐 흐르게 된다. 그래서 나는 과감히 건너 뛰어가며 읽었다. 아니 이게 생각보다 엄청 본격적이라니까요..? 한 페이지가 넘게 바닷속에서 목격한 생물들의 종류를 나열하고 그 특성이나 생김을 묘사하는데, 그걸 꼼꼼히 챙겨 읽기가 쉽지 않았다. 나는 '이야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다. 어쩔 수 없다. 넘쳐나는 정보들은 적당히 훑기만 하고 노틸러스 호의 안팎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에 집중했다. 

 

포로로 잡혀 있다고는 해도 노틸러스 호 안에서는 얼마든지 자유로운 생활이 가능했고, 눈으로 직접 보고 몸으로 느끼는 바닷 속의 생태는 아로낙스에게 엄청난 지적 흥분과 쾌감을 준다. 곁에서 끊임없이 땅 위의 생활과 탈출을 갈망하는 네드가 없었더라면, 아마 아로낙스는 노틸러스 호에서의 생활에 충분히 만족하며 살았을 것 같다. 하지만 네드는 바닷속이 아닌 바다 위에서 배를 타고 고래를 잡던 사람이다. 노틸러스 호에서의 생활이 만족스러울 리 없다. 덕분에(?) 아로낙스도 탈출을 결심하게 된다. 

 

탈출을 앞두고 노틸러스 호에서의 생활을 되짚어본 아로낙스 덕분에 그간의 모험이 한방에 정리됐다. 아로낙스와 그 일행은 다음과 같은 다양한 경험을 했다. 

 

흥분한 머릿속을 빠르게 스쳐 지나가는 환상 속에서 나는 '노틸러스'호에서 겪은 일들을 다시 한번 체험했다. 내가 '에이브러햄 링컨'호에서 실종된 뒤에 일어난 온갖 행복한 사건과 불행한 사건들, 해저 사냥, 토러스 해협, 파푸아의 야만인들, 좌초, 산호 묘지, 수에즈의 해저 터널, 산토리니 섬, 크레타 섬의 잠수부, 비고 만의 보물, 아틀란티스, 유빙, 남극, 얼음 감옥, 대왕오징어와의 격투, 멕시코 만류를 따라가다가 겪은 폭풍우, '방죄르'호, 그리고 승무원을 태운 채 침몰하던 전함의 그 처참한 광경. 이 모든 사건들이 무대의 배경막에서 일어나는 장면처럼 눈앞을 지나갔다. 

이어서 그 야릇한 배경막에 네모 선장의 모습이 터무니없이 크게 떠올랐다. 그의 배역이 지나치게 강조되어 초인적인 양상을 띠었다. 네모 선장은 나와 같은 인간이 아니라 해양동물이나 바다의 정령이었다.
쥘 베른 - 해저 2만리 中

 

탈출의 순간, 아로낙스와 일행은 거대한 소용돌이(메일스트롬)을 만난다. 그리고 무사히 살아나 눈을 떴지만,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노틸러스 호와 네모 선장은 어떻게 되었는지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한다. 그렇게 이야기는 끝이 난다. 

 

마지막까지도 네모 선장의 정체는 밝혀지지 않는다. 다만, 후반부에 노틸러스호가 공격받자 광분한 네모 선장이 의도적으로 침몰시키는 내용이 나온다. 전함을 침몰시킨 후 아로낙스는 네모 선장이 두 아이와 젊은 여인의 초상화를 바라보다 무릎을 꿇고 흐느끼는 모습을 보게 된다. 아마도 네모 선장의 가족이 아니었을까 싶다. 하지만 그게 전부다. 더 이상 네모 선장의 개인사에 대한 정보는 없다. 

 

그런데!

작품 해설에서 아주 반갑고 놀라운 소식을 발견했다. 

 

베른의 [신비의 섬]을 읽은 독자라면 네모 선장의 정체를 알고 있다고 대답할지도 모른다. 그렇다. [신비의 섬]에서는 그후의 네모 선장의 삶이 다루어지고, 특히 그 자신이 과거를 고백하고 있기 때문이다. 
쥘 베른 - 해저 2만리 작품해설 中

 

다음에 읽을 책이 정해졌다. 

쥘 베른의 [신비의 섬]을 봐야겠다. 네모 선장의 정체를 기필코 알아내고야 말테다. 

 

작품 해설에는 또, 네모 선장의 정체를 놓고 작가인 쥘 베른과 출판업자 간의 팽팽한 신경전을 벌인 이야기도 나온다. 

 

이 작품이 단순한 SF의 테두리를 벗어나 큰 스케일을 갖춘 작품이 된 것은 라틴어로 '네모'(아무도 아니다)라는 이름을 가진 '노틸러스'호 선장의 신비성에서 유래하는 게 아닐까. 네모 선장은 지상의 인간 사회를 뛰쳐나가 세계의 바다를 돌아다니는 수수께끼의 항해자, 수수께끼의 유랑자로 등장한다. 그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독자들은 끝까지 알 수 없다.
이런 주인공이 태어날 때까지 작가인 베른과 출판업자인 에첼 사이에 격렬한 논쟁이 벌어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두 사람의 주요 대립점은 주인공인 네모 선장을 어떤 인물로 설정할 것인가, 그리고 막판의 군함 격침 장면이 너무 잔혹하지 않느냐 하는 것이었다.

처음에 베른은 이 주인공을 폴란드 귀족으로 설정할 생각이었다. 제정 러시아의 탄압과 폭정으로 가족을 모두 잃어버린 폴란드 백작이 네모 선장의 정체라는 것이다. 그런 사정이라면 보복 수단으로 러시아 선박을 침몰시켜도 부자연스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에첼은 이 구상에 반대했다. 출판사를 경영하는 그에게 당시 러시아는 아주 중요한 거래처였다. 그 때문에 네모 선장을 폴란드인으로 설정하는 안은 포기되었다. 에첼은 그 대신 네모 선장을 노예제에 반대하는 인물로 설정하는 게 어떠냐고 제안했지만, 이번에는 베른이 거부했다. [해저 2만리]라는 작품의 전체 흐름 속에서 노예제 폐지론자의 모습을 떠올리기는 어렵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네모 선장을 낳은 베른은 완고하게 수정을 거부했고, 이 주인공을 모호한 존재로 남겨둘 것을 주장했다. 선장을 바다 속 생활로 몰아넣은 원인도 그의 국적도 애매하게 해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에첼은 네모 선장을 수수께끼에 싸인 채 놓아두고, '노틸러스'호가 군함을 침몰시키는 장면을 남겨둔다는 데 동의했다.

네모 선장은 탁월한 능력을 가진 기술자이자 몇 가지 분야의 전문가이고, 오르간 주자에다 회화에 깊은 식견을 가진 예술 애호가이기도 한 초인적 풍모를 보여준다. 하지만 그의 참모습은 끝내 밝혀지지 않은 채, 북극해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모습을 감추고 만다. 
쥘 베른 - 해저 2만리 작품해설 中

 

나는 작가의 편이다. 작품 외적인 문제로 작품이 간섭을 받는게 얼마나 화가 났을까. 

 

매번 무슨 책을 빌릴지 정하지 않고 가는 바람에 도서관에서 한참을 방황했는데, 다음에 읽을 책이 정해져서 기분이 좋다. 얼른 [신비의 섬] 빌리러 가야지!

 

 

 

 

 

 
해저 2만리 2- 쥘베른컬렉션(2)
H.G 웰즈 등과 더불어 초기 SF의 위대한 선구자로 꼽히는 쥘 베른 컬렉션 제2권. 세계 도처의 바다에서 잇다라 기괴한 해난사고가 일어나고 이를 조사하기 위해 파리 자연사 박물관의 아로낙스 박사 일행이 미국 순양함에 파견된다. 마침내 일본 근해에서 맞닥뜨린 괴물의 정체는 자유와 바다를 사랑하는 네모 선장의 잠수함 '노틸러스'호였음을 알게된다. 해저라는 미지의 영역 속을 방랑하는 수수께끼의 인물 네모 선장이 엮어내는 장엄하고 신비스런 드라마를 그린 쥘베른의 대표작.
저자
쥘 베른
출판
열림원
출판일
2005.04.20
 
해저 2만리 1- 쥘베른컬렉션(2)
H.G 웰즈 등과 더불어 초기 SF의 위대한 선구자로 꼽히는 쥘 베른 컬렉션 제2권. 세계 도처의 바다에서 잇다라 기괴한 해난사고가 일어나고 이를 조사하기 위해 파리 자연사 박물관의 아로낙스 박사 일행이 미국 순양함에 파견된다. 마침내 일본 근해에서 맞닥뜨린 괴물의 정체는 자유와 바다를 사랑하는 네모 선장의 잠수함 '노틸러스'호였음을 알게된다. 해저라는 미지의 영역 속을 방랑하는 수수께끼의 인물 네모 선장이 엮어내는 장엄하고 신비스런 드라마를 그린 쥘베른의 대표작.
저자
쥘 베른
출판
열림원
출판일
2002.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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