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의 비밀》 옆에 세트처럼 같이 있던 걸 빌려 왔다. 제목이 의미하는 날짜가 뭔지도 몰랐다가, 찾아보고나서야 알았다. 7월 14일이 프랑스 혁명일이구나.
7월 14일 / 에리크 뷔야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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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혁명이 일어났던 하루, 7월 14일의 풍경을 담은 아주 커다란 그림이 하나 있다고 치자. 파리 시내에서 일어난 민중의 봉기가 한 장의 그림에 담겨 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모습이 아주 세밀하고 역동적으로 그려져 있다. 동시다발적이면서도 별개의 시간대에 일어난 모든 사건과 행위들이 한 장에 담긴 그림이다. 그리고 에리크 뷔야르는 이 그림에 담긴 모든 이들을 하나하나 그들의 이름을 불러 가며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 그림 속 어느 한 사람만을 집중적으로 조명하는 것이 아니다. 모두가 역사의 한 장면을 이룬다. 그림의 구석에 있든, 한가운데에 있든, 몰려 있든 흩어져 있든, 부를 수 있는 이름은 모두 불러준다.
그런 느낌이었다.
투르네에게 곡괭이가 건네졌다. 그는 땀에 흠뻑 젖었다. 찢어진 셔츠 차림으로 두 발을 돌 틈에 단단히 박고 도개교의 사슬을 끊으려 했다. 성채 꼭대기에서 소총이 불을 토했다. 투르네는 작은 다리의 문을 긁어 대는 도끼 소리 외에는 들리지도 보이지도 않았다. 아! 그에게 더 빨리 해치우라고 소리치고, 격려하고, 저주하는 무수한 악다구니와 혼자만의 분노에 휩싸여 투르네는 문득 혼자가 되었고, 갑자기 어린애처럼 울었다. 계속 곡괭이질을, 그것도 더욱 세게 곡괭이질을 하면서 분노와 슬픔에 사로잡혔다. 눈물로 시야가 뿌예졌다. 먼지로 뒤덮인 얼굴에 긴 눈물 자국이 생겼다. 그는 신음하며 짐승 같은 몸짓으로 계속 곡괭이질을 해서 사슬을 비틀어 끊으려 했고, 악을 쓰며 두들기면서 쉼 없이 동작을 이어 갔다. 방금 오뱅이 쇠망치로 문의 잠금장치를 날려 버렸다. 이제 나만 해매면 끝날 일이다! 그런 생각에 좌절감은 더욱 부풀어 올랐다. 더욱 곡괭이질에 매달렸다. 손을 다쳤다. 그래도 계속 곡괭이로 사슬을 찍었다. (중략) 손바닥이 피로 흥건해진 투르네는 신음했다.
마침내 기둥이 흔들거리더니 바닥에 쓰러졌다. 도개교가 내려져 해자를 가로질렀다. 뿌연 먼지 속에서 군중이 뒷걸음질 쳤다. 바닥 상판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튀어 오르는 바람에 아주 가까이 있던 사람 하나가 깔려 죽었다. 투르네는 귀가 먹먹해진 채 벽에 기대어 행복의 눈물을 흘렸다. 이렇게 되자 군중은 투르네를 거들떠보지도 않고 모두 안마당으로 몰려갔다. 모두가 그를 잊었다. 투르네는 증발한 것이다. 그의 서사시는 몇 분만 지속되었다.
이 장면 되게.. 아, 뭔가 되게 벅차오르고 슬퍼졌다.
군중 모두가 사실은 이런 상황, 이런 심정이지 않았을까.
아주 대단한 용기나 결연함이 아니라 순간 내게 주어진 것에 몰입하고,
거기에 격려는 물론 저주가 쏟아지기도 한다는 말이 너무 와닿았다.
그 과정에서 누군가는 이름도 남기지 못한 채 허무한 죽음을 맞기도 하고,
이루어낸 결과는 남아도 그것을 만들어낸 인물은 잊혀진다.
그의 서사시는 몇 분만 지속되었다는 말의 울림이 진짜 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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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많은 사람들이 나오는데 사실 나는 하나도 모르겠구; 에리크 뷔야르가《7월 14일》을 통해 동등하게 담아낸 것과는 달리 아마도 역사적으로 좀 더 의미있게 이름을 남긴 이들이 있긴 할거다. 그런 사람들의 이름은 좀 알아두면 좋지 않을까 싶은 생각을 하긴 했다. 이럴 때마다 내가 교육과정에서 정식으로 세계사를 배운 적이 없어서 아는 게 없다는 핑계를 대긴 하는데, 민망하긴 하다. 아는 게 너무 없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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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리크 뷔야르라는 작가의 작품 세계를 어렴풋하게는 알 것 같다. 소재에 따라 서술 방식이나 뉘앙스가 달라지는 느낌이긴 하다. 《그날의 비밀》은 굉장히 신랄하고 냉소적인 느낌이었는데 《7월 14일》은 대서사시 같은 느낌을 받았다. 직설보단 비유가 많고 표현들이 되게 어 음 뭐라 해야 하지 표현을 못하겠네 허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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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췌
저녁이 되자 그들은 마침내 폴리 티통의 정문을 부수고 들어갔다. 포도 덩굴 늘어진 정자에서 휴식을 즐기는 자에 대한 땀 흘리는 자의 화풀이, 볼살이 두툼한 아기 천사에 대한 말단 병졸의 분풀이었다. 저 부자들의 광기를 보라, 여기가 바로 그들의 별장이다. 여기서는 노동이 황금으로 변하고, 신산한 삶이 달콤해지는가 하면, 매일 반복되는 고통스러운 노동, 모든 더러움, 질병, 곤궁, 유아 사망, 썩은 이, 퇴색한 머리카락, 손발에 박인 굳은살, 불안감, 겁에 질린 침묵, 모든 단조로움, 죽을 만큼 괴로운 일상의 반복, 벼룩, 옴, 솥에 덴 손, 어둠 속에서 번득이는 눈, 고역, 찰과상, 불면의 고통, 비천한 자의 호전성, 이 모든 고통이 꿀과 노래와 작은 일화로 변한다.
오로지 왕 하나를 위한 거처를 돌보는 사람만 마흔 명이 넘어서 왕의 침대 곁에는 수많은 하인이 거울을 들고, 요강을 들고 떼를 지어 맴돌았다.
이거 《왕자와 거지》 생각나서 웃겼지만 웃지 못했다.
왕한테 양말 신기는 귀족이 있고 그 양말을 가져다주는 귀족이 있고 어쩌고 저쩌고 하던.
고만고만한 시기의 영국이나 프랑스나...
7월 13일과 14일 사이의 밤, 내 생각에는 밤 중의 밤, 성탄덜절, 가장 끔찍한 성탄의 밤, 대사건의 날에 흔히 말하는 천민들, 한마디로 가장 가난한 사람들, 그러니까 그때까지 역사상 시궁창에 버려졌던 사람들이 총과 갈고리와 창으로 무장하고 남의 문을 부수고 들어가 먹고 마셨다.
그러니까 7월 14일의 바스티유는 기즈 공작과 몇몇 도적 떼에 포위된 것이 아니었고, 프랑스 왕의 군대 혹은 콩데 왕자의 군대에 괴롭힘을 당한 것도 아니었다. 이는 역사상 유례가 없는 사태였다. 1789년 7월 14일 바스티유는 파리에게 포위당했다.
모르는 것을 글로 옮겨야만 한다. 사실 7월 14일 그날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모른다. 우리가 아는 이야기들은 허술하거나 구멍이 숭숭 뚫려 있다. 사태를 직면하려면 이름 없는 군중의 시각으로 봐야 한다. 그리고 글로 옮겨지지 않은 것을 이야기해야만 한다. 선술집, 떠돌이, 세상 밑바닥, 물건을 지칭하는 사투리, 구겨진 돈, 빵 부스러기까지 낱낱이 따져 봐야 한다. 바닥이 문득 입을 연다. 입이 없고 말을 잃은 숫자로 치환된 무수한 군중이 보인다. 그들은 바스티유, 바로 그곳에 있고 주면의 모든 거리에서 점차 늘어나고 있다.
결국 파리의 모든 매춘부가 바스티유로 몰려들었다. 그날 그들은 고객을 불러 모으지 않았고 마치 역사의 위대한 날에 언제나 그러했다는 듯이 팔을 걷어붙이고 부상자들을 돌봤다.
7월 14일 그날 하루가 지날 무렵 비가 왔다는 말이 있다. 나는 그 말이 사실인지 확신할 수 없다. 의견이 분분하다. 확실한 점은 종이 비가 내렸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바깥에 던져 버린 수형자 명부, 회신되지 않은 청원문, 회계 장부와 같은 법령 자료들이 허공을 떠다니며 빙글빙글 돌다가 지붕이나 나무 위, 시궁창, 그리고 성채의 더러운 해자에 떨어지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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