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이 되기는 어렵다》를 읽다가 "히틀러의 뒤에는 독점 상인들이 있었다"라는 한 구절 때문에 찾아 보았던 《그날의 비밀》을 다시 읽었다. 왜냐면 기억이 잘 안 나서. 내용을 다시 확인하고 싶었고, 좀 더 구체적인 기억으로 남겨놓고 싶었다.
20260601 | 신이 되기는 어렵다 HARD TO BE A GOD / 아르카디 스트루가츠키·보리스 스트루가츠키
표지와 제목만 보고 맘에 들어 찍어뒀던 책이다. 도서관 갈 때마다 볼까 말까 고민하다 큰 맘 먹고 빌려왔다. 신이 되기는 어렵다 HARD TO BE A GOD/ 아르카디 스트루가츠키·보리스 스트루가츠키 ■
karangkaran.tistory.com
그날의 비밀 / 에리크 뷔야르

■
이런 표지를 기억하고 있었는데 새로 빌린 책이 전혀 다르게 생겨서 좀 놀랐다. 커버를 벗겨내면 이런 색과 디자인의 하드커버였던 모양이다.

그리고 150페이지 정도밖에 안되면 짧다면 짧은 이야기인데, 우와우와하며 표시해 둔 게 이만큼인 게 말이 되나. 이것도 많이 참은건데.

■
이야기에 대한 소개는 옮긴이의 말을 빌림.
작가는 무대의 커튼이 올라가기 이전에 어둠 속에서 꿈틀거리는 배후 인물, 혹은 전쟁의 주역들이 활개치는 이면에서 암약했던 공범자들, 그리고 무대의 커튼이 내려진 후에도 아물지 않은 집단적 상처에 관심을 기울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날의 비밀』을 거두절미하고 한마디로 요약한다면 히틀러의 독일이 오스트리아를 병합한 사건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오스트리아 병합 전후의 과정을 주요 사건으로 삼으면서 동시에 주변국과 세계 곳곳에서 이와 관련한, 히틀러와 나치당의 활동이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었는지를 그리고 있다. 시간이나 공간에 갇히지 않고 서술되며, 관련된 인물에 대해서는 이후 또는 현재까지 어떻게 이어지고 있는지를 알려 준다. 당연히 비난과 조롱의 어조가 깔릴 수 밖에 없다. 아주 고급스럽고 우아하고 세련되게, 그리고 강하고 매섭게 꾸짖는다.
■
부분부분 발췌할 게 아니라 필사를 하는 게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을 정도로 뭘 많이 표시해 놨다. 이제부터 하나하나 씹고 뜯고 맛보고 즐겨야지.
스물 넷의 그림자가 신중하게 계단의 첫 단을 넘어섰고, 차례로 계단을 밟고 올라가다 이따금 늙은 심장에 부담을 주지 않으려고 걸음을 멈췄다. (중략) 나는 그들 무리 중 누가 앞장을 섰는지 모르지만 사실 그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스물넷은 정확히 똑같은 행동을 해야만 했고, 똑같은 길을 따라가서 계단참을 끼고 오른쪽으로 돌아 활짝 열려 있는 왼쪽 문을 통해 살롱으로 들어가야만 했기 때문이다.
흔히 문학은 모든 것을 허용한다고 한다. 따라서 나도 이 인물들을 펜로즈 계단에서 영원히 맴돌게 할 수도 있을 것이며 그러면 그들은 더 위로 올라가거나 더 아래로 내려가지 않고 항상 동시에 오르내리게 될 것이다.
저 유명한 고디 말린베르디 별장에서는 폐허 비슷한 데에서 뛰노는 벌거숭이 신들이 그려진 올림포스의 방, 아기와 그 시종이 물감으로 그려진 가짜 문으로 빠져나가는 비너스의 방을 거치면 중앙 살롱에 다다르게 된다. 그 입구의 꼭대기에 해설처럼 붙어 있는 기도문의 마지막 구절을 만나게 된다. 〈그리고 다만 우리를 악에서 구하소서.〉 그러나 우리의 작은 회동이 이뤄진 국회 의장 궁전에서 이런 문장을 아무리 찾아봐도 헛수고였을 것이다. 그것은 그날의 의제가 아니었다.
그리고 드디어 국회 의장이 만면에 미소를 띠고 등장했다. 헤르만 괴링이었다. 사실 이런 일은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하기는커녕 꽤나 진부한 사건, 일상적 일에 불과했다. 사업의 세계에서 정파 투쟁은 별것이 아니다. 정치인과 사업가가 서로 손을 잡는 것은 관례이다.
괴링은 한 사람 한 사람에게 호인다운 악수와 더불어 말을 건네며 테이블을 한 바퀴 돌았다. 그런데 의장은 그저 인사차 들른 것이 아니었고 몇 마디 환영 인사를 우물거리더니 곧바로 3월 5일 선거를 거론했다. (중략) 괴링은 나치당이 다수석을 확보한다면 이 선거가 향후 10년간 마지막 선거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가 빙그레 웃으며 어쩌면 백 년이 될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좌중에 공감의 분위기가 흘러 퍼졌다. 그와 동시에 문 열리는 소리가 나더니 드디어 신임 총리가 살롱에 입장했다. 이전에 그를 본 적이 없었던 사람들은 그의 실물을 궁금해했다. 히틀러는 상상했던 것과는 정반대로, 미소를 지으며 여유 있는 모습이었고 심지어 믿었던 것보다도 훨씬 상냥했다. 그렇다. 심지어 친절하기까지 했다.
경영자들의 역사상 유일한 순간이자 나치스와의 미증유의 타협이라 볼 수 있는 1933년 2월 20일 회동은 크루프 일가, 오펠 일가, 지멘스 일가에게느 사업하다 보면 겪게 되는 매우 일상적 일화, 진부한 모금 활동과 다를 게 없었다. 이들 모두 나치 정권 이후에도 살아남았고 나중에도 정당의 능력에 비례해서 여러 정당에 돈을 대줄 것이다.
그러나 2월 20일의 의미, 그 영구불변의 중요성을 이해하려면 이 사람들을 그들의 진정한 이름으로 호칭해야만 한다. 1933년 2월 20일 그날 오후, 국회 의장 궁전에 있었던 그들은 더 이상 오펠, 구스타프 크루프, 아우구스트 폰 핑크가 아니다. 그들은 다른 이름을 지니고 있었다. (중략)
따라서 스물네 명의 인사는 슈니츨러, 비츨레벤, 슈미트, 핑크, 로스테르크, 호이벨이라는 호적상의 이름만으로 불리지 않는다. 그들의 이름은 바스프, 바이엘, 아그파, 오펠, IG 파르벤, 지멘스, 알리안츠, 텔레풍켄이다. 우리는 이런 이름으로 불리는 것들을 알고 있다. 심지어 매우 잘 알고 있다. 그것들은 우리 사이에, 우리 속에 그렇게 존재한다. 그것들은 우리의 자동차, 세탁기, 세제, 라디오 시계, 화재 보험, 그리고 건전지의 이름이다. 그들은 사물의 형태로 도처에 존재한다. 우리의 일상이 그들의 일상이기도 하다. 그들은 우리를 치료하고, 옷을 입혀주고, 빛을 밝히고, 세계 도처로 우리를 수송하고, 우리를 위로한다. 그리고 2월 20일 국회 의장 궁전에 출석했던 스물네 명의 신사들은 대기업의 위임자, 사제들에 불과했다. 그들은 프타 신의 신관들이다. 그리고 그들은 지옥문에 달려 있는 스물네 개의 계산기처럼 거기에 비정하게 버티고 있다.
그(핼리팩스)의 됨됨이를 보여 주는 결정적인 일화가 있다. 베르히스테스가덴에 도착해 차에서 내리던 그는 자동차 옆에 서 있던 한 남자를 시종장쯤으로 생각했다. 계단 올라가는 것을 돕기 위해 그에게 다가왔다고 상상한 것이다. 차 문을 열어 주자 그는 시종장에게 외투를 건넸다. 그러자 폰 노이라트, 혹은 다른 누구, 어쩌면 진짜 시종장이 그의 귀에 대고 거친 목소리로 속삭였다. 「총통 각하이십니다!」 핼리팩스는 눈을 들어 보았다. 과연 히틀러였다. 히틀러를 하인으로 취급했다니! 훗날 그의 회고록 『충만한 나날들』에 기록한 것에 따르면 그는 감히 고개를 들지조차 못했다고 한다. 그의 눈에 보이는 것이라고는 바지와 구두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핼리팩스 경은 빈정거리는 어투로 우리를 웃기려고 했던 것 같다. 그러나 나는 그것이 우스운 일로 보이지 않는다. 귀머거리 벽창호에다가 멍청한 당나귀, 앞뒤가 꽉 막힌 고집불통, 조상의 음덕을 자랑스럽게 등에 업고 사는 영국 귀족이자 외교관인 핼리팩스, 그런 점에 모골이 송연해진다. 재무부 장관으로서 재임 기간 내내 아일랜드에 대한 모든 추가 지원에 단호하게 반대했던 사람이 바로 그 영광스러운 1대 자작 핼리팩스가 아니었던가? 아일랜드 대기근으로 백만 명이 넘게 굶어 죽었다. 그리고 근왕 침소 하인이자 핼리팩스의 아버지인 영광스러운 2대 자작, 그는 유령 이야기를 수집했고 그의 아들 중 하나가 그 이야기를 출간했는데 과연 핼리팩스는 진정으로 이런 사실 뒤에 몸을 숨길 수 있을까? 그리고 핼리팩스의 이런 서투른 행동은 전혀 예외적인 것이 아니며 늙은 멍청이의 착오가 아니다. 그것은 사회성의 맹점이고 거만이다.
독일 제국의 야심이 소용돌이쳤던 오스트리아에서 1미터 50센티미터의 단신이지만 온갖 권력을 쥐고 있었던 돌푸스 총리가 1934년 벽두에 오스트리아 나치당에 의해 암살되었다. 후임자 슈슈니크는 그의 권위주의 정치 스타일을 이어 갔다. (중략) 오스트리아의 작은 독재자 슈슈니크는 바이에른으로 호출되었다. 은밀한 압박의 시대는 끝난 것이다.
1938년 2월 12일 슈슈니크는 아돌프 히틀러를 만나기 위해 베르히테스가덴으로 갔다. 그는 스키 관광객으로 위장하고 역에서 내렸다. 여행의 목적이가 겨울 스포츠를 위한 휴가라고 둘러댄 것이다. 그가 열차에 스키 장비를 싣고 있던 때 빈에서는 축제가 절정에 이르렀다. 사육제 기간이었기 때문이다. 가장 즐거운 날들이 역사상 가장 음산한 회동의 날과 겹친 셈이다.
히틀러는 다짜고짜 그를 매몰차게 꾸짖었다. 「경치와 날씨 얘기나 하려고 여기 있는 게 아니오!」 슈슈니크는 겁에 질렸다. 그는 어눌한 장광설을 늘어놓으며 1936년에 맺은 한심한 독일-오스트리아 협약을 환기시켰고, 이 자리는 그저 사소하고 일시적인 몇몇 난점을 해소하기 위한 것이라고 둘러대며 분위기를 반전시키려고 애썼다. 그리고 절박한 심정으로 마치 구명정이라도 되는 양 자신의 선의에 매달린 오스트리아 총리는 지난 수년간 자신이 단호하게 독일 정책을 견지했다고 선언했다. 바로 그 대목을 아돌프 히틀러는 노리고 있었다.
「아! 당신은 그런 걸 독일 정채이라고 부르나, 슈슈니크 씨? 오히려 당신이 했던 모든 일은 오로지 독일 정책을 회피하기 위한 게 아니었나?」 히틀러는 악을 썼다. 슈슈니크가 서툰 변명을 늘어놓자 그는 분통을 터뜨리며 공격 수위를 한층 높였다. 「게다가 오스트리아는 독일 제국에 기여하는 일을 한 적이 없소. 오스트리아의 역사는 끊임없는 배신의 역사였소.」
(중략)
이제 히틀러는 그를 〈씨〉라고 불렀고 슈슈니크는 흔들리지 않고 상대방을 총통이라 불렀다. 히틀러는 그를 혹독하게 무시했고 변명거리를 찾는 슈슈니크는 친독일 정책을 부풀려서 자화자찬했다. 독일의 총리는 오스트리아가 독일 역사에 기여한 것이 제로에 가까ㅃ다고 고함까지 쳐가며 오스트리아를 모욕하고 있었고, 참을성 많고 통이 큰 슈슈니크는 대화를 끊고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기는커녕 착한 모범생처럼 기억을 더듬어 오스트리아가 역사에 기여한 사례를 찾아내려고 안간힘을 다하고 있었다.
길고 긴 두 시간이 흘렀다. 오후 4시경 옆방에서 리벤트로프와 폰 파펜이 슈슈니크와 그의 자문관을 불렀다. 양국 간의 새로운 조약 중 몇몇 항목을 보여 주었다. 총통이 허락할 수 있는 최종 양보안이라는 설명을 곁들였다. 이 조약은 무엇을 요구했던 것일까? 첫머리에서는 공허하고 실효성 없는 표현이지만, 오스트리아와 독일 제국은 양국의 이해관계가 걸린 국제적 문제를 협의해야 한다는 점을 밝혔다. 그다음 문안부터 본색이 드러나는데 국가 사회주의 이념은 오스트리아에서도 허용되어야 하먀 나치당원인 자이스잉크바르트가 전권을 지닌 내무부 장관으로 임명되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기막힌 내정 간섭이었다. 또한 악명 높은 나치인 피슈뵈크 박사도 정부에서 채용할 것을 요구했다. 오스트리아에 수감된 나치당원은 형법 위반자를 포함해서 모두 사면할 것을 요구했다. 국가 사회주의자 공무원과 장교는 복권 및 복직시켜야 한다고 요구했다. 양국 군대 간에 백여 명의 장교를 즉각 교류시키고 나치인 글라이제호르스테나우를 전쟁부 장관으로 임명하라는 것도 요구했다. 끝으로 오스트리아 선전 지도부를 즉각 파면하라는 극단적으로 모욕적인 조치도 요구했다. (중략) 위에서 언급된 내용을 마지막으로 덧붙인 표현은 기상천외하다. 〈독일은 오스트리아에 대한 모든 내정 간섭을 포기한다.〉 뻔뻔한 표현이다.
그(슈슈니크)는 훗날 회고록에서 히틀러가 사람들에 대한 마술적 장악력을 가지고 있다고 썼다. 그리고 〈총통은 사람들을 자력으로 끌어당긴 후 난폭하게 밀쳐서 그 순간 그 무엇으로도 메꿀 수 없는 깊은 심연이 생긴다〉라고 덧붙였다. 보다시피 슈슈니크는 신비주의적 설명에도 인색하지 않았다. 이렇게 그의 나약함을 정당화한 것이다.
그러나 슈슈니크는 누구의 몸 안으로도 들어간 적이 없고 몇 년 동안 돌푸스에게 아첨한 후 그의 옷을 대신 입었을 뿐이다. 남의 입장이 되어 본다고? 그는 그런 일이 무엇인지 짐작조차 못 한다! 그는 폭행당한 노동자, 체포된 노동조합원, 고문당한 민주 인사, 그 누구의 입장에도 서본 적이 없었다. (중략) 그는 사회 민주주의자들이 요구하는 자유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거절했다. 언론의 자유를 요구하는 목소리에는 용기 있게 거부했다. 민선 국회의 유지에 대한 것도 거절했다. 집회 결사의 권리, 자기 정당 외 다른 정당의 존립 권리도 거부했다. 전쟁이 끝난 후 미국의 미주리 소재 세인트루이스 대학교에서 정치학 교수로 초빙할 사람이 바로 이런 자이다.
레드 카펫을 깔아 놓고 탱크를 몰고 오는 중이었지만 그들(나치)은 절대적으로 미클라스(오스트리아 대통령)의 동의를 얻고자 했다. (중략) 미클라스는 그들의 바짓가랑이를 잡아끌며 쭉정이 같은 슈슈니크의 사임에는 동의했지만 자이스잉크바르트의 취임은 단호하게 거부한다고 말했던 것이다.
(중략)
장시간의 토론 끝에 자정 무렵, 나치당원들이 권력 핵심 자리를 이미 차지했고, 자이스잉크바르트는 여전히 고집스레 전보문의 결재를 거부하는 와중에, 빈 도심에서는 살인, 폭동, 방화와 비명소리로 어지러운 거리에서 유대인들이 머리채가 잡힌 채 끌려다니는 등 광기 어러니 장면이 이어졌던 반면, 위대한 민주주의 국가들은 마치 아무것도 보지 못한 양 영국은 드러누워 평화롭게 코를 골고 프랑스는 단꿈에 빠져서 세상 모두가 나 몰라라 하는 그 순간, 늙은 미클라스는 마침내 무거운 거깨를 한번 으쓱하더니 지치고, 아마도 역겨운 심정으로 마지못해 나치당원 자이스잉크바르트를 오스트리아의 총리로 임명했다. 종종 커다란 재앙은 살금살금 다가온다.
(1938년) 3월 12일 오전 동안 오스트리아인들은 꼴사납게 들떠서 나치스가 오기를 간절하게 기다렸다. (중략) 그런데 독일군은 그들을 하염없이 기다리게 만들었다. 아침나절이 지나고... 그리고 오후도 그냥 흘러갔으니 이상한 노릇이었다. (중략)
12일 저녁, 빈의 나치당원들은 아돌프 히틀러를 맞이하기 위해 야간 횃불 행렬을 준비했었다. 의식은 감동적이고 장엄해야만 했다. 늦은 시간까지 기다렸지만 아무도 오지 않았다.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아무도 몰랐다. (중략)
사실상 독일군은 국경을 넘는 데에 엄청난 고역을 겪었다. 경악할 만큼 느리게 그리고 형언할 수 없을 만큼 무질서 속에서 월경했기 때문이다. (중략)
그러나 린츠로 가는 길은 험했고 자동차는 헛기침을 했으며 오토바이는 경운기처럼 콜록거렸다. 아! 독일인들은 정원이나 가꾸고 이 모든 기계를 트랙터로 개조하고 티어가르텐 공원에 배추나 심는 것이 좋았을 것이다. (중략)
고장은 그저 몇 대의 탱크에 그친 것이 아니었다. 몇 군에데서 몇 대가 고장 난 정도가 아니라, 위대한 독일군의 절대다수가 고장 난 것이다. 그리고 길은 이제 완전히 막혀 버렸다. 아! 코미디 영화의 한 장면 같았다. 분노에 찬 총통, 도로에서 뛰어다니는 정비병들, 제3제국의 거칠고 성마른 언어로 성급하게 토해 내는 명령들. 군대가 한꺼번에 몰려들고 대낮에 시속 35키로미터로 행진하면 어느 구석에선가 막히게 마련이다.
독일의 오스트리아 병합 다음 날인 3월 13일, 영국 정보국은 영국과 독일 간의 묘한 희극적 전화 통화를 엿들었다. 히틀러가 그의 모국으로 날아가는 동안 독일을 책임지고 있었던 괴링이 말했다. 「리벤트로프 씨, 우리가 오스트리아를 협박하며 최후통첩을 보냈다는 건 구역질 나는 거짓말이오. 대중의 동의로 권좌에 오른 자이스잉크바르트가 우리에게 도움을 요청한 것이오. 슈슈니크 정부가 얼마나 폭력적이었는지 알기나 하는지!」 그러자 리벤트로프가 대답했다. 「기막힌 일이지요! 전 세계가 이 사실을 알아야만 합니다.」
(중략)
그러나 1938년 3월 13일 괴링이 몰랐던 것은, 이보다 더 진실에 부합하는 대화 내용이 발각될 것이란 사실이었다. 그는 자신의 중요한 대화를 기록하라고 부하들에게 명령했었다. (중략) 거기에서 사람들은 그보다 이틀 전인 3월 11일 밤, 자이스잉크바르트, 그리고 그 중간 관리이자 대사관 참사였던 돔브로프스키 외에는 아무도 엿듣는 사람이 없으리라 믿었던 그때에 베를린과 빈 사이에서 벌어진 대화였다. (중략)
괴링은 그에게 미클라스와 다시 접촉해서 19시 30분까지 총리를 임명하지 않는다면 오스트리아를 덮칠 것을 주지시키라고 명령했다. 영국의 도청 스파이에게 들으라고 늘어놓았던 괴링과 리벤트로프 간의 상냥한 대화, 혹은 〈오스트리아의 해방군〉과는 아주 동떨어진 내용이었다. 그런데 여기에서 주목해야 할 대목이 있다. 괴링이 구사한 표현, 〈오스트리아를 덮칠 것〉이라는 협박이다. 이 표현이 머지않아 딱 들어맞기 때문이다.
이 시대의 영상은 경악할 만한 마술을 통해 우리의 추억이 되었다. 세계 대전과 그 서막은 우리가 더 이상 진위를 구별할 수 없는 이 영원한 영상 속에 담겨 있다. 그리고 독일 제국은 이 비극의 다른 주역들보다 많은 숫자의 영화감독, 편집인, 촬영 기사, 음향 기사, 기술자를 고용했기 때문에 러시아와 미국이 참전하기 전까지 우리가 전쟁에 대해 볼 수 있는 영상은 영원히 요제프 괴벨스의 영상으로 우리 눈앞에서 전개된다. 그것은 기상천외한 일이다. 독일 뉴스는 픽션의 모범이 되었다. 그래서 오스트리아 병합은 기적적인 성공처럼 보인다. 그러나 박수 소리는 나중에 영상에 첨가된 것이고 소위 후시 녹음의 결과이다. 총통의 등장에 맞춰 미친 듯 울려 퍼진 박수 소리 중 어느 하나도 우리가 실제로 들었던 것이 아닐 수도 있다.
(중략)
대부분의 독일 공군 장성들이 여전히 전투기의 비행술을 모르며, 히틀러가 아무런 경험도 없으면서 독일군 최고 지휘관의 자리에 버티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시대의 뉴스 영상은 독일군이 불굴의 전쟁 기계라는 느낌을 준다. 잘 계산된 각도에서 찍은 영상을 통해 우리는 환희에 찬 군중 사이로 전진하는 장갑차를 볼 수 있다. 이 장갑차들이 방금 대규모 고장을 일으켰었다는 것을 누가 상상할 수 있을까?
가끔 우리에게 벌어지는 일들이 몇 달 지난 신문에 난 기사처럼 보일 때가 있다. 즉, 우리가 이미 꾸었던 악몽인 것이다. 병합 이후 6개월 남짓 지난 1938년 9월 29일, 그 유명한 회의를 위해 뮌헨에 사람들이 보였다. 거기에서 사람들은 히틀러의 야욕이 멈출 것이라 생각했는지 체코슬로바키아를 헐값에 팔아넘겼다. 프랑스와 영국 대표단이 독일에 갔다. 그들은 환대를 받았다.
(중략)
그 순간, 흥이 난 아나운서는 달라디에, 체임벌린, 무솔리니, 히틀러, 이렇게 국가의 수장 넷이 똑같은 평화에 대한 의지로 가득 차서 후세를 위해 포즈를 취한다고 콧소리로 속삭였다. (중략) 뮌헨에서 거대한 희망이 배태된 것처럼 보였다.
병합 직전 단 일주일 동안 1천 7백 건이 넘는 자살 사건이 발생했다. 그리고 곧바로 신문에 자살을 보도하는 것이 저항 행위가 될 것이었다. (중략) 탄압이 그들을 침묵하게 했다. 사람들은 아무런 반향도 일으키지 않을 안전한 표현을 찾아내려 했다. 그래서 스스로 생을 마감한 사람들의 정확한 숫자는 미지의 영여에 남겨졌고 그들의 이름도 알려지지 않았다.
병합 다음 날, 『노이에 프라이에 프레세』에 네 건의 부고 기사가 실렸다. 〈3월 12일 아침, 공무원 알마 비로(40세)가 면도칼로 혈관을 끊은 후 가스 밸브를 열었다. 같은 시간대에 작가 카를 슐레징거(49세)가 자리 머리에 총을 쏘았다. 가정주부 헬레네 쿠거(69세)도 자살했다. 그날 오후, 공무원 레오폴드 빈(36세)이 창문에서 몸을 던졌다. 그들 행위의 동기는 알려지지 않았다.〉 이런 평범한 기사는 수치스러운 진실로 채워져 있다. 왜냐하면, 3월 13일, 모두가 자살 동기를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무도 말할 수 없지만 유일하고 동일한 원인이 도사리고 있었다.
알마, 카를, 레오폴드, 그리고 헬레네는 아마도 창문을 통해 거리에서 끌려가는 유대인들을 보았을 것이다. 삭발당한 사람들을 창문 틈으로 보는 것만으로도 그들은 사태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을 것이다.
(중략)
그날 아침 함성을 지르는 군중 사이에서 행인들의 빈정거리는 눈총을 받으며 바닥에 쭈그리고 기어가며 인도를 닦는 유대인들을 헬레네가 직접 눈으로 보았는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들에게 풀을 뜯어 먹게 했던 비열한 장면을 그녀가 목격했는지 아닌지도 중요하지 않다. 그녀의 죽음은 그녀가 느꼈던 것, 그 거대한 불행, 흉측한 현실, 파괴적 노골성을 띠고 그녀 눈앞에서 전개되는 이 세계에 대한 혐오감을 표현한 것이다. 왜냐하면 범죄는 벌써부터 그 변태적 봄날의 작은 깃발과 젊은 여자들의 미소 속에 존재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웃음과 고삐 풀린 열광 속에서 헬레네 쿠거는 증오와 희열을 감지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발작적 공포에 사로잡힌 그녀는 수천 명의 몸짓과 얼굴의 이면에서 수백만 명의 죄수를 엿보았을 것이다. 그리고 가공할 만한 열광 이면에서 마우트하우젠 강제 수용소의 화강암 채석장을 예감했을 것이다. 그래서 그녀는 죽음을 택했다.
오스트리아 가스 회사가 이제 유대인들에게 가스 공급을 거부한 이유는 그들이 선호하는 자살 방식이 가스였고, 죽은 후에 가스 요금을 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 시대가 비상식적 실용주의에 입각해서 너무도 많은 끔찍한 이야기를 꾸며냈던 터라 나는 그것이 과연 사실인지, 혹은 단지 농담, 음산한 촛불 아래에서 꾸며낸 끔찍한 농담에 불과한지 자문해 보았다. 그러나 그것이 신랄한 농담이었건 사실이었건 간에 중요하지 않다. 유머가 그토록 어둠 쪽으로 기울어진다면 그것은 진실을 말하기 때문이다.
알바 미로는 자살하지 않았다. 카를 슐레징거는 자살하지 않았다. 레오폴트 빈은 자살하지 않았다. 그리고 헬레네 쿠거도. 그들 누구도. 그들의 죽음은 그들이 겪은 불행에 대한 신비스러운 이야기와 동일시될 수 없다. 심지어 그들이 존엄하게 죽기를 택했다고 말할 수조차 없다. 아니다. 그들은 사적인 절망에 파괴당한 것이 아니다. 그들의 고통은 집단적인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자살은 타살이다.
그러나 크루프 하나만이 수용소의 노동력을 빌린 것은 아니었다. 2월 20일 회동했던 그의 동료들 역시 죄수들을 착취했다. 범죄적 열정과 정치적 가식 뒤편에서 그들은 잇속을 챙겼다. 전쟁은 수지맞는 사업이었다. 바이엘은 미우트하우젠 수용소에서 노동력을 임대했다. BMW는 다하우, 파펜부르크, 작센하우젠, 나츠바일러, 부헨발트에서 인부를 고용했다. 다임러 자동차 회사는 시크메르, IG 파르벤은 도라-미텔바우, 그로스로젠, 작센하우젠, 부헨발트, 라벤스브뤼크, 다하우, 마우트하우젠에서 인려을 조달했고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거대한 공장을 운영했다. IG아우슈비츠라고, 파렴치하게도 회사 조직도에 아우슈비츠라는 명칭까지 기입했다. 아그파는 다하우에서 인력을 충원했다. 셸은 노이엔감메, 슈나이더는 부헨발트, 텔레풍켄은 그로스로젠, 지멘스는 부헨발트, 블로센뷔르크, 노이엔감메, 라벤스브뤼크, 작센하우젠, 그로스로젠 그리고 아우슈비츠에서 그런 짓을 했다. 모든 사람이 이토록 저렴한 인건비에 몰려들었다.
■
읽을 땐 몰랐는데 옮겨 적으면서 보니까 번역이 조금 어색한 부분들이 보인다. 재미있군.
■
전에 구스타프 플로베르의 책을 읽다가 '신사연하다'라는 말이 낯설어서 엄청 찾아봤던 적이 있었다.
단어장 | 신사연하다 (in 순박한 마음 / 구스타프 플로베르)
구스타프 플로베르 『순박한 마음』 中 부인의 삼촌 중 한 명인 그르망빌 공작은 정해진 때 없이 오뱅 부인을 방문하곤 했다. 그는 방탕한 생활을 하다 파산한 인물로 팔레즈에서 마지막으로 남
karangkaran.tistory.com
근데 이때 막 원형을 찾아서 엄청 파고들었던 게 무색하게, 알고 나니까 이제는 뜻이 금방 보인다. 그리고 그후로 간혹 책에서 '신사연하다'라는 표현을 봐서 이게 의외로 잘 쓰이는 표현이라는 걸 깨달았는데, 이번에는 '학자연하다'라는 표현을 만났다. 근데 묘하게 이거는 또 좀 친숙한 느낌이다. 신사연하다로 미리 접해서 그런가... 일단 '~연하다'는 게 대충 '~인 척하다'라는 뉘앙스라는 걸 아니까 '학자연하다'도 대충 감이 잡힌다. 학자인 척하다, 지식인인 척하다, 이런 느낌?
'읽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 20260623 | 7월 14일 / 에리크 뷔야르 (0) | 2026.06.26 |
|---|---|
| 20260620 | 판사유감 / 문유석 & 왜 나는 그들을 변호하는가 / 신민영 (0) | 2026.06.25 |
| 20260605 | 유빅 UBIK / 필립 K. 딕 (0) | 2026.06.07 |
| 20260601 | 신이 되기는 어렵다 HARD TO BE A GOD / 아르카디 스트루가츠키·보리스 스트루가츠키 (1) | 2026.06.03 |
| 20260601 | 밤의 속삭임 A whisper in the Dark / 루이자 메이 올컷 (0) | 2026.06.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