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종의 이유로 표적독(?)을 하게 됐다. 도진기의 법정 소설을 몇 개 읽으면서 이런 정보와 사례들을 좀 더 알고 싶어졌고, 무작정 도서관에 가서 법학 코너를 뒤졌다. 《판사유감》은 예전부터 알던 책이라 계속 눈에 들어오는데 외면하다가 이참에 읽어봐야지 하고 가져왔다. 《왜 나는 그들을 변호하는가》는 사전 정보 없이 제목만 보고 끌려서 잠깐 살펴보다가 이거다, 싶어서 빌려옴.
판사유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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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나는 그들을 변호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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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사유감 / 문유석
예전에 문유석 작가의 책을 뭔가 읽었었고, 유익함과 별개로 서술 방식이 묘하게 맞지 않아 거리를 두고 있었다. 그래서 《판사유감》도, 그 이후의 여러 인기 소설들도 외면하고 있었다... 라고 하고 뭘 봤었던걸까 하고 찾아보니 시기상 《판사유감》이었나보다. 어라. 어쩐지. 다시 읽으면서도 아, 참 안 맞네, 싶더라.
내용이 아니라 방식이다. 사근사근 친절하고 상냥하게 말을 건네는 듯한 말투를 책으로 보는게 좀 간지럽다고 해야 하나. 독자를 아이 대하듯 하는 것이 조금 불편하다고 해야 하나. 이런 식으로 쓰는 분을 아는데, 친절하고 상냥해보이지만 사실은 고집 겁나 쎄고 다소 억지도 좀 섞여있고 한 걸 느껴서 그런가부다. 뭐, 개인적인 느낌이다.
일단 내가 원했던 정보가 거의 없어 대충 흘려 봤다. 하버드 얘기 하는 부분은 그냥 넘기다시피 했고. 나랑은 잘 맞지 않는다는 걸 확실히 알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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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나는 그들을 변호하는가 / 신민영
다양한 사례와 해석들, 그 중에서도 일반 대중의 입장에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을 좀 더 알고 싶었다. 그런 목적에 부합하는 건 아무래도 신민영의 《왜 나는 그들을 변호하는가》였다.
부제는 〈국선변호사 사건 일지〉이고 들어가는 글의 제목이 〈그의 편에 서는 단 한 사람〉이다. 도서관에서 보는데 이걸 보고 이거다! 하고 빌려왔다.

목적이 있다보니 표시해둔 게 이만큼이다.
변호사는 피고인의 보호자다. 피고인에게 최대한 유리한 판결을 얻기 위해 노력해야만 한다.
책 전체를 아우르는 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작가는 누구인가.
내가 담당하는 피고인의 절대 다수는 억울하게 누명을 쓴 사람이 아니라, 누군가(보통은 피고인보다 더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들)를 괴롭힌 사람들이고 유죄판결이 거의 확실한 사람들이다. 경찰이 수사한 사건을 법률 전문가인 검찰이 검토해 무죄가 나올 만한 건은 미리 걸러낸 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고인에게 유리한 판결을 얻어내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하는 사람이 바로 작가다. 다만 구분해야 할 것은 죄를 옹호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죄의 성격과 유형과 정도를 올바르게 심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며, 과한 죗값을 받지 않도록 하는 것에 의의가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죄를 짓긴 했어도 그 죄를 넘어서는 억울함은 없도록 해주는 거라고 해야 하나. 이렇게 말하면서도 이게 맞나.. 싶은데 이런 감정적 고민과 법은 달라야 하니까, 그래서 존재하는 것이 법이니까.
그렇다고 해서 작가가 모든 순간 감정없는 냉혈한처럼 구는 것은 아니다. 가령 지적장애인이 피해자인 사건의 경우에는 작가 또한 상당한 갈등 상황에 놓일 수밖에 없다.
내가 담당한 피고인이 무죄를 받을 가능성이 높아진 건 다행이었지만 나는 기뻐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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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나는 그들을 변호하는가 / 신민영
발췌
무죄추정의 원칙을 관철함으로써 치러야 하는 사회적 비용은 0에 수렴하지만, 이를 어김으로써 무고한 사람이 받는 고통은 심대하다. 무죄추정의 원칙을 관철함으로써 발생하는 불이익은 딱 하나다. 판결이 확정될 때까지 짧으면 몇 개월 길면 1~2년 동안 피고인에게 죄를 묻지 않는 것. 그것뿐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언제 위헌법률심판이 가능할까? 법에 문제가 있다고 바로 위헌법률심판이 열리는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 법은 '재판의 전제성'을 그 요건으로 하고 있다. 쉽게 풀어 말하자면 문제의 법을 적용받아 재판을 받는 당사자와 그 담당 법원만이 헌법재판소에 위헌법률심판을 시청할 수 있다는 뜻이다. 법률이 헌법에 어긋난다면 헌법재판소가 언제라도 이를 무효화해야 하는 것 아닌가? 하지만 그렇게 되면 자칫 헌법재판소가 국회 위에 상왕처럼 군림하게 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국회가 법을 만들자마자 헌법재판소가 끼어들어 그 법을 무효화시키는 일이 발생할 수도 있는 것이다.
상식과 달리 피고인들은 고문이나 폭행의 행사가 없는 상태에서도 허위 자백을 하곤 한다. 왜 피고인들은 강요가 없을 때도 스스로를 해치는 선택을 하는 것일까. 그 원인을 규명하기 위해 여러 연구가 진행 중이다. 우리나라에서 이루어진 한 연구에 따르면 고립감, 무력감, 공포감에 사로잡힌 피고인이 수사관을 협력 대상으로 생각하고 이에 적극적으로 협조하는 과정에서 허위 자백이 발생한다고 한다.
여전히 그리고 꽤나 자주 피고인들에게 자백을 권유해보곤 하지만 항상 조마조마하다. 내가 담당했돈 피고인들 중에도 혹시 나 때문에 허위 자백을 한 사람이 있지 않을까.
이 사건을 하다 알게 된 사실인데, 청각장애에는 1급이 존재하지 않는다. 두 귀의 청력을 완전 상실한 경우가 청각장애 2급이고 피고인과 같은 3급은 귀에 입을 대고 말해도 잘 듣지 못하는 경우에 해당한다. 청각장애에 1급이 없는 이유는 청력을 전부 상실해도 사회생활이 불가능하지 않다는 판단에서다. 청각장애 뿐만 아니라 안면장애, 신장장애 등에도 1급이 없다고 한다.
피해자는 형사소송의 주인공도 조연도 아니다. 굳이 따지자면 단역 '이하'라 할 수 있다. '이하'라고 한 것은 아예 등장조차 하지 않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형사소송에서 피해자가 가장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경우는 증인으로 나설 때뿐이다. 검사나 변호사가 필요하다고 판단할 때 불려가서 묻는 말에만 대답하는 정도가 전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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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나는 그들을 변호하는가 / 신민영
작가가 인용한 대목이 인상적이라 나도 남겨 둠
얀 필립 림츠마Jan Philipp Reemtsma는 독일의 문학 연구가이자 철학자이다. 그는 1990년대 후반 독일 전역을 떠들썩하게 만든 납치 사건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유명 담배 회사의 설립자인 조부로부터 막대한 유산을 상속받은 그를 두고 납치범들은 오랫동안 범행을 계획했다. 림츠마는 32일 동안 지하실에 감금되어 있었다. 그의 발에는 족쇄가 채워져 있었고 간이 변기에서 용변을 해결해야만 했다. 살해 위협을 받던 그는 결국 3억 마르크라는 거액의 석방금을 지불한 뒤에야 풀려날 수 있었다. 그는 이후 당시의 경험을 기록한 〈지하실에서 Im Keller〉라는 수기를 집필했는데 그중 인상적인 대목이 있다.
내일 내게 그자의 목을 가져다준다 해도 거기서 내가 얻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내가 원하는 것은 그가 재판정에 서는 것이다. 나에게 위안이 되는 응보는 증오에 있지 않다. (중략) 피해자에게 처벌은 매우 중요한 것이다. 처벌이 그의 복수욕을 충족시켜주어서가 아니다. 처벌이 의미가 있는 것은 이를 통해 사회가 피해자와 연대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형벌은 범죄자를 밀쳐내는 것임과 동시에 피해자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범죄자에 대한 처벌은 피해자에게 '귀환을 환영한다'는 편지와 다를 것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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