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다

20260518 | 홀 / 편혜영

카랑_ 2026. 5. 26. 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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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혜영 작가의 소설을 쭉 읽어 볼까 하고 〔홀〕과 〔선의 법칙〕을 빌렸다. 영화화 얘기도 있다고 하는 〔홀〕부터 읽음.

 

 

홀 / 편혜영

 

 

 

 

사고로 전신마비에 가까운 장애를 얻게 된 남자 오기가 주인공이다. 아내와 여행을 가던 중이었고, 이 사고로 아내는 죽고 오기만 살아 남았다. 약간의 회복 후 아내와 살던 집으로 돌아온 오기와 장모의 이야기이다. 그 사이에 활동보조인이나 재활치료사, 오기의 사회 친구들 등등의 인물들도 있다. 

 

 

아주 개인적인 이유로 장애나 전신마비와 같은 소재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좀 복잡한 감정이다. 불편하기도 하고 약간의 죄책감같은 것도 있는데, 한편으론 늬들이 뭘 안다고, 같은 무시와 비아냥이기도 하다. 아주 지극히 개인적이고 사사로운 감정때문에, 〔홀〕을 제대로 즐기지는 못한 것 같다.

 

 

한순간에 혼자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게 된 오기의 상태와 심리, 그리고 변해가는 장모와의 관계에서 오는 서스펜스 같은 것이 그려진다. 밝고 희망적인 이야기는 당연히 아니다. 장모가 파기 시작한 마당의 커다란 구덩이가 사실은 오기를 묻어버리기 위한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오기는 과연 탈출할 수 있을까. 장모에게서 벗어날 수 있을까. 이런 것에서 오는 긴장감이 이 소설이 주는 재미가 맞다면 잘 본 것 같기도 하고. 

 

 

오기는,

 


오기는 끈질기게 뭔가를 추구하고, 그것 이외의 다른 것은 돌아보지 않고, 결국에는 성취하고, 한길로만 살아온 것을 자부하는 사람에 대한 두려움 같은 게 있었다. 그들은 의지가 빼어난 나머지 박약한 의지를 손쉽게 비웃었다 운에 의지하려는 태도를 비난했다. 사소한 우연의 연쇄를 인정하지 않았다. 고집과 독선이 지나쳤고 자신의 자부가 폭력이 된다는 걸 의식하지 못했으며 남들에게 늘 가르치는 투로 말했다. 자신이 우월하다는 것을 숨기지 않았고 자만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의 박탈감을 비웃었다. 간혹 시혜적인 태도로 관용과 아량을 베풀었는데, 인간에 대한 애정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제 삶의 여유에서 기인한 것이었다. 오기는 그런 사람을 잘 알았다. 바로 오기의 아버지였다. 

 

 

 

장모는,


장모가 한 말이 내내 맴돌았다. 반듯하다는 말, 자격지심이 있을까 걱정했다는 말. 그 말들이 장인이 식사 내내 했던 노골적인 핀잔보다 더 마음을 후벼 팠다. 장모는 간파한 것 같았다. 오기는 가지지 못한 것 때문에 자격지심을 가질 만한 인간이라는 걸, 그다지 반듯하게 자라지 못했다는 걸 말이다. 장인은 그걸 핀잔했고, 장모는 세련된 방식으로 상기시켰다. 

 

 

 

 

내가 어느새 사십대가 되어서인지, 오기가 생각하는 사십대가 좀 와닿았다. 공감의 여부를 떠나 아... 사십대.... (아련) 이런 느낌이랄까. 


 오기가 생각하기에 죄와 잘 어울린다는 것만큼 사십대를 잘 정의 내리는 것은 없었다. 사십대야말로 죄를 지을 조건을 갖추는 시기였다. 그 조건이란 두 가지였다. 너무 많이 가졌거나 가진 게 아예 없거나. 즉 사십대는 권력이나 박탈감, 분노 때문에 쉽게 죄를 지었다. 권력을 가진 자는 오만해서 손쉽게 악행을 저지른다. 분노나 박탈감은 곧잘 자존감을 건드리고 비굴함을 느끼게 하고 참을성을 빼앗고 자신의 행동을 쉽게 정의감으로 포장하게 만든다. 힘을 악용하는 경우라면 속물일 테고 분노 때문이라면 잉여일 것이다. 그러므로 사십대는 이전까지의 삶의 결과를 보여주는 시기였다. 또한 이후의 삶을 가늠할 수 있는 시기이기도 했다. 영영 속물로 살지, 잉여로 남을지.
 굳이 둘뿐이라면 오기는 전자에 가까웠다. 의식하거나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 점점 많은 것을 가지게 되었고, 더 많은 것을 갖고 싶어 노골적으로 술수를 부렸고, 그에 대해 부끄러움을 느끼지 못했다. 종종 이 삶이 너무 안온해서 어느 것도 바꾸고 싶지 않을 때도 있었다. 수중의 것은 하나도 잃고 싶지 않았다. 뭔가를 성취하려고만 드는 아버지를 비난했지만 자신 역시 이미 비슷한 가치로 살아가고 있었다. 


 

 


여전히 무사하고 태평하게 굴러가는 세상에 분노가 치밀었다. 자신은 얼굴이 찢어지고 몸이 부서지고 망가져 누워 있는 동안 모두 보란 듯이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오기의 부상은 세상에 어떤 교란도 일으키지 못했다. 날마다 침대에 누워 오줌을 싸고 땀을 흘리며 실변을 누고 욕창을 염려하고 실제로 욕창을 앓고 약에 취해 계속 졸면서 기껏해야 천장이나 들여다보며 허송하는 건 오기뿐이었다. 그들의 삶에는 느닷없는 교통사고도, 그로 인한 장애도 결코 없을 것이었다. 하필 오기에게만 그런 일이 닥쳤다. 오기의 세상만 무너졌고, 오기의 삶만 갈가리 찢어졌다. 

 

 

 

인물의 설정이 다양하고 치밀한 것 같긴 하다. 한일혼혈인 장모의 사뭇 다른 태도나 성향, 자라온 환경이 다른 데서 오는 이질감 같은 것들. 오기라는 인물을 이루는 근간도 어린 시절부터 쌓여 온 여러 경험과 환경들, 성인이 된 후의 사회적 지위를 획득하는 과정에서 겪은 것들, 관계들, 그런 것들을 잘 쌓아 올린다. 그런데 이게 나한테는 스릴러로 느껴질만한 긴장감이 없었다. 그냥.. 그렇던데. 몸을 움직이지 못하는 오기의 상황이 답답하고 변해가는 장모의 모습을 보는 오기의 공포를 느껴야 하는데 그러질 못했다. 이것도 개인적인 이유인가 싶기도 하고. 아무튼 나는 이건 크게 재미를 못 느꼈다.

 

 

스포

마지막엔 오기가 탈출을 시도한다. 장모가 없는 틈을 타 힘겹게 방을 빠져나와 집 밖으로 나오는 것까지는 성공. 하지만 울타리 너머로 나아갈 방법이 없다. 외출했던 장모가 돌아오고, 집 밖으로 나온 오기를 발견하고, 장모에 의해 결국 마당 구덩이에 빠지던가.... 그랬던가... 며칠 지났다고 벌써 까먹었다. 아마 그러고 끝났을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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