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루룩 읽을 얇은 책에 선정되어 빌려왔던 책이었다. 제목도 참 흥미진진하지 않은가. 〔청부 살인자의 성모〕라니. 뭔가 자극적이고 폭력과 선정성이 난무할 것만 같은! 그런 기대를 안고 읽기 시작했는데.
청부 살인자의 성모 / 페르난도 바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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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만 보고 판단하면 안 된다. 와. 이거 진짜 안 읽힌다. 학창시절에 배웠던 '의식의 흐름'? 뭐 그런 식의 서술방법인 것 같은데? 이야기가 막 중구난방이다. 도저히 못 따라가겠다. 양심이 있으면 이걸 읽었다고 하면 안 된다. 그냥 눈으로 훑기만 했다. 페이지가 얼마 안 되니까(약 200p) 끝까지 한 번 버텨보자 하고 마음 먹은게 세 번이었는데 다 포기했다. 모르겠다. 나는 이거 안 읽은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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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엔 멋모르고 정신 바짝 차리고 일기 시작했다. 어쩌다 하나씩 눈에 띄는 문장들을 남겨두면서 파악하려고 노력도 했다.
그 커다란 풍등이 어디로 가버렸는지 아무도 몰라. 중국이나 화성으로 갔을 수도 있고, 아니면 타버렸는지도 몰라. 그 종이는 얇고 주름 잡혀 있어서 쉽게 불붙거든. 조그만 양초의 불꽃만으로도 충분해. 하나의 불꽃이 나중에 콜롬비아를 불태우고 '그들'을 불태우는 데 충분했던 것처럼. 그 불꽃, 이제는 아무도 그것이 어디에서 튄 것인지 몰라. 그런데 콜롬비아는 이제 내 땅이 아니라 남의 땅인데, 왜 내가 콜롬비아를 걱정하는 거지?
이때까지만 해도 아, 콜롬비아 얘기구나. 콜롬비아에 대해 이야기하려는 거구나, 하고 있었다.
알렉시스, 아, 그래, 그게 그의 이름이야. 그 이름은 예쁘지만, 그건 내가 붙인 게 아니라 그의 어머니가 붙여준 이름이야. 가난한 사람들은 습관적으로 자기 아이들에게 부자나 마구 펑펑 돈 쓰는 사람, 혹은 외국 스타일의 이름을 붙여 줘. 가령 타이슨 알렉산더, 혹은 페이버나 에더 또는 윌퍼나 롬멜, 그리고 예이손 등등의 이름을 들 수 있어. 나는 사람들이 어디서 그런 이름을 가져오는지, 혹은 어떻게 그런 이름들을 만들어 내는지 몰라. 이것들, 그러니까 쓸모도 없고 바보 같은 외국 이름이나 억지로 만들어 낸 우스꽝스러운 이름은 가난한 삶 속에서 자기 아이들을 조금이라도 남보다 낫게 만들어줄 수 있는 유일한 것이야. 그건 그렇고, 나는 그런 말을 처음 들어쓸 때 무척이나 어리서근 행동이라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그렇게 여기지 않아. 그것들은 피로 얼룩진 청부 살인자들의 이름이거든. 그건 탄알과 거기에 장전된 증오보다 더 단호하고 분명해.
가난한 사람이 가장 잘 알고 있는 게 아기 갖는 법과 더불어 비는 법이야.
이건 이디오크러시가 생각났고.
그건 내가 여자들이란 영혼 없는 존재들 같다고 여기기 때문이라고 덧붙였어. 그들은 속이 텅 빈 코코넛이었어. 그런 이유로 여자들을 사랑할 수 없었어.
"그건 내가 수프라히오 학교에서 살레시오 수도회 신부들에게 배웠기 때문이야. 그들에게서 나는 여자들과의 육체관계는 수간의 죄라고 배웠어. 수간의 죄란 어느 종(種)의 생식기와 다른 종의 생식기가 서로 교접하는 것을 일컬어. 예를 들면, 당나귀가 소와 교접하는 거야. 알겠지?"
이건 동성애자인 서술자가 말하는 여성에 대한, 이성애에 대한 부분이다. 신부에게 배웠다고 하면서 이런 표현을 써도 되나 싶었는데, 뒤에 작품 해석을 보니 작가가 가톨릭에 대해서도 매우 부정적이고 비판적인 시선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아, 그런 맥락이구나 싶었다.
그러니까 법과 헌법의 나라인 이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형을 선고받기 전까지는 그 누구도 유죄가 아니며, 재판을 받지 않으면 형을 선고받지 않고, 체포되지 않으면 재판을 받지 않으며, 체포는 곧 석방을 의미해... 콜롬비아의 법은 불처벌이 원칙이고, 범죄자이면서도 처벌받지 않은 첫 번째 인간은 바로 대통령이야.
콜롬비아도 되게 문제가 많은 나라인가보다. 내내 이런 식이다.
야, 이 봐 친구, 도둑놈들에게 이곳은 세상에서 가장 좋은 왕국이야. 이곳보다 더 좋은 나라는 없어. 그다음이 먼지와 구더기들이 좋아하는 곳이야. 그러니 도둑질이 최고야. 특히 정부 안에서 도둑질하는 게 가장 좋은데, 그게 가장 안전하기 때문이야. 그리고 천국은 멍청이들이나 가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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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과 주인공의 애인 알렉시스까지는 알겠다. 둘이 같이 다니면서 알렉시스가 막 멋대로 사람을 죽인다. 아마 그 이유와 과정들이 자세하게 이야기되어 있었던 것 같은데, 모르겠다. 뭔 소릴 했는지. 그러다 알렉시스가 죽는다. 그리고 주인공은 또 다른 애인인 윌마르를 만나고, 윌마르는 사실 알렉시스를 죽인 애였고, 그러다 시체안치소에서 윌마르를 발견하게 된다.
이게 내가 파악한 인물들과 이야기의 전부다. 200p 가까운 소설에 설마 이것만 담겨 있을리가. 엄청 뭐가 많은데 하나도 안 읽혀서 모르겠다.
이 소설은 문법 학자 페르난도의 이야기이다. 그는 삼십 년 넘게 조국을 떠나 있다가 자기가 태어난 도시로 돌아온다. 그곳에서 알렉시스라는 청부 살인자를 소개받아 사랑하게 되고, 그와 함께 메데인의 여러 장소를 돌아다닌다. '죽음의 천사'라는 별명의 알렉시스는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에게 총을 쏴서 사살한다. 나중에, 그러니까 알렉시스가 살해된 다음, 페르난도는 윌마르가 알렉시스를 죽인 장본인이라는 사실을 모른 채, 그와 관계를 시작한다. 그리고 윌마르 역시 일종의 '해묵은 원한' 청산의 희생자가 된다. 소설이 진행되면서 주인공이자 화자는 일종의 안내자 역할을 맡으면서, 청부 살인자들의 습관과 믿음, 그리고 그들의 말인 '파를라체'를 설명한다. 그러면서 애인들과 메데인의 폭력과 마약 밀매 조직의 중심지를 돌아다닌다.
작품 설명에서 얻어 옴. 근데 뭐 이렇게만 보면 내가 파악한 줄거리랑 별반 차이 없어 보이네? ㅋㅋㅋㅋㅋㅋ 근데 이게 진짜 이렇게 단순하지가 않아요. 서술 방식이 되게.... 뭐랄까... 정신 사납고 뭔 소린지 모르겠다.
이 소설의 시간적, 공간적 배경은 1990년대 초 콜롬비아의 메데인이다. 당시는 악명 높은 파블로 에스코바르 가비리아가 '메데인 카르텔'이라는 세계저인 마약 조직을 이끌면서 콜롬비아 정보에 테러 전쟁을 선포했던 시기였다. 바예호는 이 작품에서 마약 문제로 생긴 '청부 살인자'라는 새로운 사회 집단을 부여 준다. 그들은 마약 조직의 권력에 도전하거나 마약 밀매 사업을 위험에 빠뜨리려는 사람들을 제거하는 어리거나 젊은 소년들이었다. 그리고 역설적으로 이들은 '도움의 성모 마리아'를 굳게 믿으며, 성모님에게 도움과 보호를 요청하면서 기도한다.
1993년 12월 2일 파블로 에스코바르가 군에게 살해된 후, 메데인 카르텔은 위기를 겪으며 빠르게 와해되었다. 그러자 청부 살인자들은 코무나의 '동네'('코무나'는 여러 동네로 이루어져 있다.)에서 범죄 조직을 결성하고, 그 조직들은 영역 싸움을 벌이기 시작한다. 그리고 시골에서 활동하던 콜롬비아 게릴라들이 도시로 침투하면서 상황은 더욱 악화된다. 페르난도, 알렉시스, 윌마르의 이야기는 파블로 에스코바르가 죽은 후 일어난다. 두 시카리오는 마약 조직의 두목에게 고용되지 않은 '청부 살인자'들이다. 일거리가 없는 이들은 도시를 배회하며 자기의 안전을 위협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무차별적으로 죽인다. 그리고 매춘도 서슴지 않는다.
'청부 살인자'가 '시카리오'라는 걸 해설을 읽고 나서야 알았다. 원래 알고 있었는데 매치가 잘 안되었던 것 같다. 시카리오라고 생각하고 알렉시스와 윌마르를 생각하니까 오히려 조금 캐릭터가 더 또렷해지는 느낌이었다. 시카리오라는 말이 더 익숙하게 느껴지는 건 아마도 영화(시카리오: 암살자의 도시)의 영향인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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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튼 나는 이거 읽은 거라고는 모다겠다~ 아이고~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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