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도서관 가서 책 구경하다가 발견했다. 국내소설에서 제목이나 표지만 보고 꽂히는 일이 별로 없는데 이건 어떻게 눈에 딱 띄었다. 제목이 마음에 들었던 것 같다.
책쾌 / 김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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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의 인물인 줄 알았는데 여러 서적에 이름을 남긴 실존인물인가보다. 책쾌 조생. 근데 그 기록들도 되게 신기하다. 생몰년이 정확하진 않아도 활동한 시대를 헤아려보면 대강 150년이 나온다고 한다. 나이를 가늠할 수 없는 외모라는 기록도 남아 있다고 하니 진짜로 신선이었나 싶은 인물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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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는 조선 영조, 선(사도세자)의 어린 시절부터 시작된다. 그리고 그의 죽음과 그의 아들(정조)의 재위까지 나왔던 것 같다. 그 사이 많은 실존인물들이 이야기에 등장하는데, 이게 참 신기하다. 역사책에서 제각각으로 배우고 들었던 이름들이 책쾌 조생의 시대에서 모두 모인다. 유득공, 박제가, 이덕무, 박지원, 정약용까지. 이 외에도 더 있었던 것 같은데 당장 기억나는 건 이 정도. 이름은 익히 들어봤는데 이들이 살았던 시대는 잘 모르잖아. 근데 이 책 덕분에 대충 이 즈음, 영정조 시기라는 걸 어림잡아 알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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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 인물과 실제 서적들의 제목이 등장한다. 어떻게 보면 그것들을 죽 늘어놓고 그 사이사이에 작가의 상상력을 더한 이야기를 더한 것인가 싶기도 하다. 그 사이사이를 채우는 이야기에 조생이 중심이 되고, 그의 신비로움과 신출귀몰한 모습들이 그려진다. 거기에 사랑도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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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생은 붉은 수염이라 불리는 책장수다. 들고 다니는 짐은 하나도 없는데, 말만 하면 소맷부리에서 수십 권, 수백 권의 책을 끄집어 낸다. 처음 보는 이는 놀라 눈이 휘둥그레지지만, 조생과 인연을 이어오고 있는 이들은 놀라지도 않는다. 필요하다 생각만 하면 어디선가 신출귀몰하게 나타나는 책장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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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생과 지용의 이야기가 애틋하긴 한데, 조생에 대한 안좋은 소문이 떠돌 때 그것을 파헤치러 다니다 몹쓸 짓을 당할뻔 하는 부분은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 조생은 뭐하고 용이 그러고 다니게 만드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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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세자의 이야기로 시작을 한 것도 그렇고, 전체적으로 사도세자를 비극적인 인물로 그리고 있다. 이것도 어느정도 신빙성이 있는 이야기인가? 그건 좀 궁금하다.
화평옹주의 남편인 박명원이 동궁전 궁녀 지씨와 내통하여 지씨가 아이를 갖게 된다. 이 사실을 알고 명원이 사도세자에게 지씨를 부탁하는데, 이 과정에서 사도세자가 지씨를 궁에서 내보내면서 다시한번 부탁하게 되는 이가 바로 조생이다. 궁녀가 사라진 것을 비밀로 하기 위해 사도세자는 자신이 궁녀를 죽였다고 하고, 궁 밖으로 나온 지씨는 딸 용을 낳는다. 지씨는 출산 후 사망하고, 용은 어머니의 성을 따라 이름을 짓고 주막에서 살게 되는데, 이렇게 조생과 용의 인연이 시작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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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여주고 싶은 장면과 이야기를 툭 툭 끊어 놓아둔 느낌의 구성이다. 이야기가 친절하고 매끄럽게 연결되는 느낌은 아니었는데, 그것이 나름의 매력이다. 그래서 더욱 환상적이고 신비로운 느낌을 주는 것 같다.
근데 문장도 이야기도 흐름도 툭, 툭 느낌이라 약간 헷갈리긴 했다. 최소 삼대에 이르는 긴 시간이 흐르는 이야기인지라 인물이나 관계들의 갑작스러운 느낌은 있는데, 읽다보면 대충 아 이렇게 연결되는구나 싶어서 그냥 따지지 않고 죽죽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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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컷 잘 읽다가 마지막에 조생이 어린아이에게 건넸던 무예책값을 장군이 된 그 손자에게서 받는 장면에서 코끝이 조금 찡했다. 감동 포인트가 여럿 있는데 나는 이 부분이 제일 좋았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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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중간에 백탑 얘기가 나왔는데, 그거 나 어디서 본 거 같은데! 김탁환 책 중에 백탑파 얘기가 나오는 게 있었던 것 같은데! 근데 기록 남긴 거에 백탑 얘기 해 놓은 게 없어서 뭔지 모르겠다. 왠지 〔방각본 살인사건〕같은데. 모르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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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탁환 역사소설보다는 훨씬 읽기 쉽다. 문장이나 표현이 그리 어렵지 않다. 낯선 어휘가 있긴 하지만 대충 때려맞추며 읽으면 된다. 다 읽는데 세 시간이 채 안 걸렸다. 이런 옛스런 표현 많은 소설 너무 좋다. 문장 하나하나 다 따오고 싶었다. 책을 아예 살까 싶은 생각도 했는데, 표지 이미지 찾으면서 보니까 절판인것 같다. 아쉽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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