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다

20251122 | 스페인 여자의 딸 / 카리나 사인스 보르고

카랑_ 2025. 11. 24. 1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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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에 갔다가 그냥 눈에 띄어서 골라온 책이었다.

 

 

스페인 여자의 딸 / 카리나 사인스 보르고

 

 

 

 

책 설명만 보면 스릴러일 것 같았다. 우연히 옆집 여자의 죽음을 알게 된 주인공이 옆집 여자의 신분으로 살아가기를 결심하는 내용 정도로 설명이 되어 있어서. 재미있게 후루룩 읽을만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빌려왔다. 

 

 

아니 그런데 이거 너무 현실 르포였다. 구체적인 인물이나 사건은 언급하지 않았다고 하는데, 그럼에도 베네수엘라의 현실을 너무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어서 깜짝 놀랐다. 소설이 아니었더라면 나는 전혀 몰랐을 그곳의 실상. 

 


 

베네수엘라는 혼란스러워 아름다웠다. 아름다움과 폭력, 그 둘이야말로 나라에서 가장 풍부한 자원이었다. 그 결과가 바로, 자신들 고유의 모순이 만들어낸 균열과 당장이라도 국민의 머리 위로 무너져 내릴 태세를 갖춘 풍경의 구조적 결함 위에 형성된 국가였다.

 


 


세월이 흐르며 나는 그곳이 훨씬 더 큰 악의 온상, 그러니까 미용 공화국의 거류지였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경솔함은 악 중에서도 그나마 덜 지독한 악이었다. 아무도 늙거나 가난해 보이고 싶어 하지 않았다. 숨기기, 치장하기. 꾸며내기. 그것이야말로 국가의 신조였다. 돈이 있든 없든, 나라가 무너지고 있든 말든 상관없었다. 중요한 것은 예뻐지기, 미인 대회 왕관을 꿈꾸기, 카니발이든, 마을이든, 나라든..., 무엇이든 여왕이 되기. 가장 늘씬하고, 가장 예쁘고, 가장 멍청한 여자가 되기. 우리의 왕정은 언제나 그런 식이었다. 왕국은 가장 눈부시게 아름다운 이들에게, 말쑥한 남자나 예쁜 여자에게 속한 것이었다. 그런 신조가 저속함의 범람으로 이어졌다. 당시에는 현상 유지에 아무런 문제도 없었다. 석유가 품위 유지비를 대주었으니까. 적어도 우리 생각에는 그랬다.

 

 


 

 

지옥같은 현실을 보여주는 문장들이 되게 아름다운 것이 인상적이었다. 비유와 묘사가 많은 편인데 그리 어렵진 않았고, 굉장히 문학적인 문장들로 가득한 책이었다. 

 

 

일단 스릴러는 전혀 아니고요. 신분을 바꿔 새로운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도 소설 마지막에서야 겨우 이루어진다. 거기까지 가는 과정을 그린 소설인데, 일단 그 과정이 녹록치 않다. 신분을 바꾸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주인공이 살고 있는 그 세계가, 그 환경이 너무 험난해서. 

 

 

남미는 도대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곳일까... 이런 소설에서 그려지는 것이 전부는 아니겠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는 현실반영이 된 것일텐데.... 

 

 

초반에 가장 강렬했던 부분은 주인공 친구의 남동생이 겪은 고문 부분이었고, 이 부분에서 얼마 전에 본 영화 〈그저 사고였을 뿐〉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모든 것이 다르지만 '고문'이라는 공통 주제로 묶이면 이렇게나 끔찍해진다. 결말에서 결국 그 인물이 비참한 결말을 맞이하게 되는 것도 너무 현실... 너무 괴로운 현실이었다. 

 

 

지옥같은 곳에서 벗어나 새로운 나라, 새로운 신분으로 살아갈 주인공을 응원한다. 근데 잘 모르겠어. 막 그렇게 희망차지 않아. 왜일까. 주인공이 겪은 지옥이 너무 끔찍해서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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