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다

20251103 | 희망 / 양귀자

카랑_ 2025. 11. 4. 1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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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간의 책태기가 온 상태였다. 근데 예전에 예약해 놓은 책이 도착했다고 연락이 왔다. 지금이 아니면 또 한참을 기다려야 할 책이라 일단 빌려놓긴 했는데, 이게 내가 기억하고 있던 것보다 훨씬 더 두툼해서 약간 겁을 먹었다. 못 읽을 수도 있겠구나 싶었는데 다행히! 읽었다! 책태기도 (아마도) 극복! 

 

 

희망 / 양귀자

 

 

 

나성여관 사람들의 이야기다. 나성여관 주인집 부부와 그들의 3남매, 진도연-진수련-진우연, 나성여관의 일을 돕는 뽕짝 아줌마, 장기투숙객인 노인과 건설 노동자의 이야기를 여관집 막내 우연의 시점에서 풀어낸다. 도연은 운동권 대학생이고, 수련은 백화점 점원으로 일하다 일탈하게 되며, 우연은 삼수생에서 나성여관 사람들의 일에 본의아니게 깊게 관여하게 되는 인물들이다. 말로는 그러려고 한 게 아닌데~ 그러지 않으려고 했는데~ 그러고 싶지 않은데~ 하면서도 붙잡으면 붙잡혀주고 같이 가자 하면 같이 가주고 그런다. 그렇게 장기투숙객 노인의 삶을 들여다보게 되고, 많은 영향을 받기도 한다. 

 

 

진도연은 적극적으로 투쟁에 가담하는 운동권 대학생이다. 고문으로 폐인이 된 선배를 나성여관에 몰래 숨겨두는 바람에 우연을 놀래키기도 한다. 도연의 삶을 통해 당시의 정치적 상황을 엿보게 만든다. 그리고 정의, 소신, 이런 올바름의 절대적 위치에 놓고 경외감마저 들게 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잠깐의 등장 이후 소설 내내 간간이 우연과 연락을 주고 받기만 하는데, 그 와중에도 무언가 긴장감을 놓지 못하게 만드는 인물이기도 하다. 마지막엔 나성여관에 경찰이 들이닥치고, 독사같은 아들이라는 소리에 그 억척스럽고 강인한 어머니를 쓰러지게 만들기도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누구도 도연을 원망하지 않는다. 결단 이후 체포된 상황에서도 그는 의연하고, 그를 믿고 지지하는 이들 또한 희망을 잃지 않는다. 소설의 제목인 《희망》을 느낄 수 있는 부분이다. 

 

 

대학에 '못' 가는 것이 아니라 '안' 가는 것임을 분명히 하는 막내 진우연. 삼수를 준비중이었으니 스물 하나? 하이고, 애다, 애. 연애는 서툴고 세상은 재미가 없다. 스스로에 대한 뚜렷한 확신이나 의지도 아직은 없어보인다. 예쁘고 감각이 뛰어난 누나를 사랑하고, 세상에 정면으로 맞서는 형을 좋아한다. 상대적으로 자신이 초라해보일 만도 하다. 공부를 그만두고 어정거리다 노인의 딸네 집 방문을 돕게 되면서부터 이상한 냄새를 풍기던 노인의 삶에 끼어들게 되고, 어쩌다 보니 노인의 손자인 민구를 아주 소중하게 여기게 된다. 민구... 아이고.. 민구때문에 좀 울었다. 우연이 훌쩍 자라게 되는 가장 큰 계기가 민구가 아닐까 싶다. 

 

 

찌르레기 아저씨. 건설 노동자로 여관에 장기 투숙하게 된 40세 정도의 노동자인데, 이 아저씨가 처음부터 너무 근사하게 나온다. 우연이가 이 아저씨한테 반한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결국 이 아저씨한테 반하는 사람(뽕짝 아줌마)이 나오기도 하고. 그런데 이 아저씨의 사연도 참 엄청나다. 처음엔 어린 아들 떼 놓고 열심히 돈 버는 아버지인줄 알았는데, 우연이 우연히 보게 된 아저씨의 노트에서 엄청난 사연이 쏟아져 나온다. 부인과의 만남, 중동으로 돈을 벌러 떠난 얘기, 아이들, 그러다 닥쳐오는 불행들. 결국 모든 게 돈 때문이었던 셈이다. 부인을 잃고 아이는 고아원에 맡긴 채 돈을 벌러 다니면서 복수를 다짐하며 산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부터 우연과 함께 독자들 모두는 이 아저씨의 복수에 굉장히 신경이 쓰이게 된다. 

 

이 '복수'가 이 소설에서 엄청난 서스펜스를 만들어낸다. 그리고 막판에 놀라움을 선사하기도 한다.

 

 

진수련. 나는 이 소설 속에서 유일하게 희망을 바라지 못하게 된 인물이 바로 수련이 아닐까 싶다. 잘못된 길로 빠져 수습이 안되는 상황에까지 이른 것 같다. 이 부분이 참 안타깝기도 하고 아쉽기도 하고. 모두가 다 희망을 품는 마무리는 안 되었던 걸까요 ㅠ0ㅠ 수련이를 너무 일찍부터 망쳐버린 것 같아서 내내 신경이 쓰였다. 

 

 

《원미동 사람들》을 참 좋게 보았는데, 사람 사는 이야기라는 면에서 《희망》이 비슷한 결로 읽히는 것 같다. 다만 사건이나 상황에 대한 거리감이 훨씬 가깝고 직접적으로 느껴진다. 《희망》이 진우연의 1인칭인데다 식구(가족+나성여관 투숙객)들로 범위가 한정되어 있기 때문인 것 같다. 그래서 사실 읽는 내내 더 갑갑하고 감정 소모도 크고 그렇다. 《원미동 사람들》도 충분히 공감하고 안타까워하며 읽긴 했으나 그나마 나와는 좀 건너건너 있는 먼 이야기라는 느낌으로 읽어서 그런 것 같다. 

 

 

《희망》의 진도연을 보며 《천년의 사랑》의 성하상을 떠올렸다면 이상하려나. 각각의 인물이 어떤 절대적인 가치의 인격화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던 것 같다. 진도연은 정의(콕 찝어 뭐라고 해야 할지 잘 모르겠는데 아무튼 이런 비슷한 것), 성하상은 사랑이라는. 

 

 

분량이 이렇게 어마어마한데도 버릴 문장이 하나도 없다. 이거 기록해둬야지 하고 표시하기 시작하면 끝도 없다. 그래서 문장은 못 건져냈고... 답은 소장이다. 나중에 꼭 다 사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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