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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818 | 기형도 전집

카랑_ 2025. 8. 26. 1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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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 한번 봐야지, 봐야지 하던 걸 드디어 펼쳤다. 전집이라 시와 소설, 수필까지 다 담겨 있는 것인데, 일단은 시를 한번 쭉 보고 싶었던 거라 시 위주로 살핌. 

 

기형도 전집 

 

 

 

질투는 나의 힘-이 기형도의 시 제목이었구나.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라는 구절이 왜 이렇게 익숙한가 했더니, 기형도 시집의 제목이기도 해서 그랬나보다. 

나는 찬밥처럼 방에 담겨-라는 표현이 이상하게 와 닿았다. 

 

그 외 인상깊었던 구절들 모음.

 

 

■     기형도《늙은 사람》中

 

내가 아직 한번도 가본 적 없다는 이유 하나로 
나는 그의 세계에 침을 뱉고 
그가 이미 추방되어버린 곳이라는 이유 하나로
나는 나의 세계를 보호하며
단 한걸음도
그의 틈입을 용서할 수 없다

 

 

 

■     기형도 《진눈깨비》中

 

구두 밑창으로 여러 번 불러낸 추억들이 밟히고

 

 

 

■     기형도《흔해빠진 독서》中

 

그러면 종종 묻고싶어진다, 이 거추장스러운 마음을 망치기 위해 
가엾게도 얼마나 많은 사람들과 흙탕물 주위를 나는 기웃거렸던가!
그러면 그대들은 말한다, 당신 같은 사람은 너무 많이 읽었다고 
대부분 쓸모 없는 죽은 자들을 당신이 좀 덜어가달라고

 

 

 

■     기형도《길 위에서 중얼거리다》中

 

어둠 속에서 중얼거린다
나를 찾지 말라... 무책임한 탄식들이여
길 위에서 인생을 그르치고 있는 희망이여

 

 

 

■     기형도《물 속의 사막》中

 

나는 헛것을 살았다, 살아서 헛것이었다

 

 

 

■     기형도《질투는 나의 힘》中

 

나의 생은 미친 듯이 사랑을 찾아 헤매었으나
단 한번도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노라

 

 

 

■     기형도《이 겨울의 어두운 창문》中

 

푸른 간유리 같은 대기 속에서 지친 별들 서둘러 제 빛을 끌어모으고 고단한 달도 야윈 낫의 형상으로 공중 빈 밭에 힘없이 걸려 있다.

 

 

 

■     기형도《포도밭 묘지1》中

 

어둠은 언제든지 살아 있는 것들의 그림자만 골라 디디며 포도밭 목책으로 걸어 왔고 나는 내 정신의 모두를 폐허로 만들면서 주인을 기다렸다 

 

 

 

■     기형도《빈 집》中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

 

 

 

■     기형도《비가2 - 붉은 달》中

 

우리는 모두가 위대한 혼자였다. 살아 있으라, 누구든 살아 있으라. 

 

 

 

■     기형도《엄마 걱정》中

 

열무 삼심 단을 이고 
시장에 간 우리 엄마
안 오시네, 해는 시든 지 오래
나는 찬밥처럼 방에 담겨
아무리 천천히 숙제를 해도 
엄마 안 오시네, 배춧잎 같은 발소리 타박타박
안 들리네, 어둡고 무서워
금간 창 틈으로 고요히 빗소리
빈방에 혼자 엎드려 훌쩍거리던

 

 

 

■     기형도《노을》中

 

하루종일 지친 몸으로만 떠돌다가
땅에 떨어져 죽지 못한
햇빛들은 줄지어 어디로 가는 걸까

 

/

 

밤이면 그림자를 빼앗겨 누구나 아득한 혼자였다.

 

 

 

■     기형도《가을 무덤-제망매가》中

 

누이야 
네 파리한 얼굴에 
철철 술을 부어주랴 

시리도록 허연
이 영하의 가을에 
망초꽃 이불 곱게 덮고 
웬 잠이 그리도 길더냐.

풀씨마저 피해 날으는
푸석이는 이 자리에 
빛바랜 단발버리로 누워 있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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