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다

20250818 | 닐스 비크의 마지막 하루 / 프로데 그뤼텐

카랑_ 2025. 8. 25. 2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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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아마도.. 더숲에 영화 보러 갔다가 더숲pick(?)으로 진열되어 있던 책들 중 하나였던 것 같다. 가끔 더숲에 가면 이렇게 괜찮은 책을 건지기도 한다. 물론, 아닐 때도 있다. 마찬가지로 더숲픽이었던 퍼트리샤 록우드의 《아무도 이런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같은 건 조금 읽다가 결국 포기하고 말았던 기억. 

 

닐스 비크의 마지막 하루
/ 프로데 그뤼텐

 

 

 

되게 잔잔하다. 제목대로 주인공의 하루를 담은 이야기인데, 물리적 시간은 하루이지만 그 안에 한 인물의 평생을 회상하는 회고록같은 느낌이다. 주인공은 피오르를 오가는 뱃사공(이라기엔 좀 규모가 큰 것 같은, 페리를 몰긴 하지만)이다. 마지막 날 아침 잠에서 깨어 평소와 같이 배를 타고 나가면서 주인공은 먼저 세상을 떠난 사랑하는 아내를 떠올리고, 먼저 세상을 떠난 반려견을 배에 태우고, 추억 속 인물들을 만난다. 공통점이 있다면 모두가 주인공보다 먼저 세상을 떠난 사람들이다. 어린 아이도 있고, 젊은 사람도 있고, 이웃도 있다. 그가 하나씩 추억하는 인물들 중 죽지 않은 사람은 아마도 그의 딸들 뿐이었던 것 같다. 

 

 

먼저 떠난 이들과의 추억이나 사건을 이야기하고, 배에 태우고 함께 한다는 식의 표현들이 약간 환상소설같은 느낌을 주기도 하는데, 그렇게 비현실적이고 몽환적인 느낌은 아니다. 그리운 사람들을 추억하는 느낌에 가까운 것 같다. 

 

 

한 번에 후루룩 읽기 좋았고, 감상에 젖기도 좋았다. 나쁘지 않았어. 

 

 

■ 발췌


 

그는 피오르의 사나이였고 뱃사람이었다. 그는 '페리'가 고대 북유럽에서 유래된 말이며 원래 위험을 의미하기에 바다에서 익사한다고 해도 그리 이상할 건 없다고 참을성 있게 설명하기도 했다. 멍청한 사람 같으니. 마르타가 이렇게 말하면 그는 상관없다고 대답하곤 했다. 예로부터 뱃사람들은 헤엄치는 법을 제대로 배우지 않았다. 배가 가라앉으면 어찌 되었든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가장 좋은 방법은 익사하는 것이었다. 수영을 하면 고통이 길어질 뿐이니까. 

어느 겨울날 아침, 유난히 거친 바다에서 돌아온 닐스는 부두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마르타를 발견했다. 닐스의 코트를 두른 채 서 있는 그녀의 머리카락이 세찬 바람에 휘날리고 있었다. 그는 뭍에 오른 후에야 그녀의 얼굴이 퉁퉁 부어 있는 것을 보았다. 닐스는 그녀를 끌어당겨 두 팔로 감싸안아주려 했지만, 그녀는 그의 점퍼를 붙잡고 이제껏 그런 힘이 있었는지도 몰랐을 만큼 세차게 흔들었다. 그러고는 꽉 쥔 오른손 주먹을 그를 향해 휘둘렀다. 깜짝 놀란 그는 처음에는 웃음을 터뜨렸지만, 곧 통증이 머리를 스쳤고 입술과 코에서는 피가 흘러내렸다. 

마르타는 다시 주먹을 휘둘렀다. 그리고 한 번 더, 그의 몸과 얼굴을 주먹으로 연달아 쳤다. 닐스는 균형을 잃고 넘어질 뻔했다. 그는 복싱 선수처럼 두 팔을 올려 얼굴을 가렸다. 그녀는 포기하지 않았다. 그가 팔을 꽉 붙잡아 모았지만, 그녀는 손을 뿌리치고 주먹을 휘둘렀다. 결국 그는 무릎을 꿇고 그녀의 코트 자락을 부여잡은 채 이제 제발 그만하라고 간청했다.

당신에게는 두 딸이 있고, 내가 있어요. 당신에겐 가족이 있다고요. 당신은 헤엄치는 법을 배워야 해요. 마르타가 말했다.

(......)

그는 천천히 헤엄치는 일을 즐기기 시작했다. 물에 뛰어들고, 차가운 물이 몸에 닿을 때의 충격을 느끼고, 팔을 몇 번 움직이고, 그 느린 움직임이 손끝에서 발끝까지 번져나가는 것을 받아들였던 것이다. 그에게는 육지와 바다에 무더움이 내려앉은 일요일날 마르타와 두 딸과 함께 산되위섬에 가서 티셔츠와 샌들을 벗어 던진 후 숨을 크게 들이쉬고 물속으로 뛰어들 때, 반짝거리는 아이들의 다리를 간지럽히고는 그 자지러지는 비명을 듣기 위해 활짝 웃으며 물 위로 고개를 내밀 때, 바다에서 나와서 마치 루나가 하듯 몸에 묻은 물기를 털어낼 때, 저녁이 되어 배가 고플 때까지 헤엄을 치고 피오르 건녀편의 가게에 가서 아이스크림을 사 먹을 때보다 더 행복한 순간은 없었다. 

 


 

개는 잠시 조용히 누워 있다가, 자신이 죽은 후에 닐스가 또 다른 반려견과 함께 산 적이 있었는지 물었다.

아냐, 그런 적은 없어.

정말인가요?

그건 확실하게 장담할 수 있단다.

루나는 한 바퀴 몸을 굴렸다.

다른 개와 함께 살아도 되었을 텐데 말이죠. 설사 그랬다 하더라도 나는 기분 나빠 하지 않았을 거예요. 정말이에요. 크게 신경 쓸 일은 아니라고 생각하거든요. 

 


 

닐스는 일지를 지니고 다니면서, 용기가 생겨난다면 마르타에게 해주고 싶은 말들을 하나하나 적었다. 당신은 이 세상에서 없어서는 안 될 사람이에요. 당신은 아침의 빵과 저녁의 잠처럼 내게 꼭 필요한 사람이에요. 

 


 

그는 세상에 태어나 한 걸음씩 한 걸음씩 여기까지 왔다. 세상에 태어난다는 것은 바람과 바다와 땅, 미움과 사랑이 무엇인지 알 수 있을 정도로 오래 살았던 데 감사하고 작별을 고하는 것이다. 삶은 끝없는 초안과 스케치이며, 적응하고 받아들이는 것에 대한 이야기이자 과거와 변화에 대한 이야기이다. 우리는 일단 시작된 이야기를 마음대로 바꿀 수 없으며, 좋든 싫든 이야기의 마지막까지 따라가야 한다. 

 


 

 

클레어 키건의 분위기와 비슷하다고 느꼈는데, 맞나. 약간 결이 다를 수도 있긴 한데, 전체적으로 조용하고 잔잔하면서도 묵직하게 오는 감동같은 게 있다. 근데 나 클레어 키건은 《이처럼 사소한 것들》 밖에 안 봐서 잘 모르겠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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