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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208 | 감상적 킬러의 고백 - 악어 / 루이스 세풀베다

카랑_ 2025. 2. 9. 1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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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번째로 읽은 세풀베다의 작품이다. 그런데 앞서 읽었던 것들과는 뭔가 많이 달랐다. 같은 작가가 맞나 싶을 정도였다. 다행히 그 의문은 옮긴이의 말을 통해 해결할 수 있었다. 

 


그는 소설의 문체나 구조보다는 변덕스럽다고 느껴질 정도로 장르의 변화에 역점을 두는데, 실제로 그가 모색한 소설 장르의 실엄은 짧은 기간에 여러 작품에서 다양하게 드러난다. 리얼리즘에 마술주의적 요소를 가미한 『연애 소설 읽는 노인』, 최초의 환경소설로 평가받는 『세상 끝의 세상』, (중략) 본격적인 흑색 소설에 추리기법을 담고 있는 『귀향』, 『감상적 킬러의 고백』, 『악어』가 좋은 예라고 할 것이다.

루이스 세풀베다 <감상적 킬러의 고백> 옮긴이의 말 中

 

 

 

감상적 킬러의 고백 - 악어 
/ 루이스 세풀베다 

 

 

 

 

제목이 굉장히 흥미로웠는데, 내용은 그다지 새로울 것이 없었다. 의뢰를 받은 킬러가 왠지 모를 불길한 예감이나 찝찝함에 휩싸여 일을 그르치는데, 알고 보니 그 의뢰 대상이 자신의 연인이 새로운 상대였고 어쩌고 그런 내용. 막판에 그 의뢰 대상이 어떤 인물이었는가가 밝혀지는데 그것만 보면 세풀베다가 가진 '양키' 또는 '미국'이라는 거대 권력에 대한 비판적 시각이 느껴지는 것 같기도 하고...? 근데 굳이 그렇게까지 파고들만한 얘긴 아닌 것 같고, 그냥 짤막한 킬러물 정도다. 그 과정에서 다소 거북하고 불편한 표현들(창녀에 대한 언급이나, 계속되는 여성 비하 호칭들)이 반복되는 것도 감상을 방해하는 요소였다. 아니 <연애 소설 읽는 노인>에서 이렇게 급격한 장르의 변환이라니요. 미리 마음의 준비라도 했으면 좋았을걸, 아무것도 모른 채 보는 바람에 조금 놀랬다구요.

 


나는 잠시 흐트러진 마음을 추스르며 사진을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인간의 얼굴은 설사 그것이 사진 속에 나와 있더라도 본래의 속성을 절대 속이지 않는다. 내가 아는 한 얼굴은 그 인간이 거주했던 모든 영역을 담고 있는 세밀한 지형도가 아니었던가. 

루이스 세풀베다 <감상적 킬러의 고백> 中

 

 

 

두 개의 단편이 묶여 있는데, 나는 제목으로 내세운 <감상적 킬러의 고백>보다는 차라리 <악어>가 더 재미있었다. 미스터리 추리의 느낌이었고, 인디오라는 신비한 존재가 등장한다는 점에서 좀 더 흥미진진했다. 돈벌이를 위해 환경을, 생태계를 무참히 파괴한 사람들에 대한 인디오의 복수같은 거, 너무 흥미롭잖아요.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하는 것, 그것이 그들이 노를 저어서 새끼 야카레들을 실어 나르는 유일한 이유였다. 그들은 아나레 족이었기에 세상의 역사만큼이나 오래된 자신들의 관습을 따르고 있었다. 세상이 태초에 만들어지고, 인간과 동물은 위대한 야카레의 후광을 등에 업고 살았다. 파충류가 과일을 꿈꾸면 과일이 있었고, 물고기를 꿈꾸면 물고기가 있었으며, 거북이를 꿈꾸면 거북이가 있었던 세상이었다. 이른바 야카레의 세상이었던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물을 증오하는 첫번째 헤아슈마레가 나타났다. 물을 증오하는 인간은 위대한 파충류의 심장에 뜨거운 금속의 불을 박았다. 치명적인 상처를 입은 야카레는 밤낮으로 물속에서 꼬리를 쳐대다 죽었다. 다행히 위대한 파충류는 이미 1천 마리의 자식을 둔 뒤였다. 어떤 것들은 구더기만한 크기였고, 또 어떤 것들은 아나레 족의 몸집만한 크기였다. 그런데 아나레 족은 위대한 파충류가 그 뒤를 이을 후계자를 점지하지 못한 채 죽었기 때문에 위대한 파충류의 후손을 보살피고 섬겨야 했다. 그들은 위대한 야카레의 시대가, 꿈을 꾸면 모든 것이 이루어지는 달콤한 시대가 도래하길 기대하고 있었다.
 
루이스 세풀베다 <악어> 中

 

 

 

옮긴이가 말한 루이스 세풀베다의 '변덕스러울 정도의 장르 전환'을 실감할 수 있는 책이었다. 정말 다른 사람이 쓴 거 아닌가 싶을 정도로 너무 다른 소설이라 조금 당황스러울 정도였다. 나는 <연애 소설 읽는 노인>을 기대했던 거라 이제 그만 볼까 싶기도 한데.. 최초의 환경소설로 일컬어진다는 <세상 끝의 세상>에 희망을 좀 걸어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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