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단지 책이 얇길래 금방 읽을 수 있겠군, 하고 가볍게 생각하고 빌렸던 것 뿐인데 이렇게 큰 감동을 담고 있을 줄이야.
자신의 이름을 지킨 개 이야기
/ 루이스 세풀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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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동물을 사랑하는, 특히 개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꼭 봐야 할 책이다. 감동이 너무 커. 너무 슬프고 너무 감동적이고 너무 아름답고 너무 너무 좋은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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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할아버지가 들려주었던 이야기이자, 마푸체족에서 전해 내려오던 이야기이라고 한다. 작가의 뿌리와 맞닿은 이야기라 감동이 더 큰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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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우연히 가족과 떨어지게 된 강아지 한 마리가 마푸체족 가족과 함께 살게 되었는데, 외지인(윙카)이 땅의 소유권을 주장하며 쳐들어와 평화로웠던 무리를 깨뜨리고 개도 빼앗아 간다. 그렇게 전혀 다른 삶을 살게 된 개, 아프마우의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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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술자는 이름을 잃어버린 개, 아프마우이다. 아프마우가 '잃어버린 모든 것들'을 찾는 이야기. 제목에서 보이는 '이름'이 사실 그 모든 것, 전체를 의미하는 것이기도 했다. 자연을, 대지를, 존재하는 모든 생명을 이해하는 존재이자, 인간을 사랑하는 개.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 인간을 사랑하는 개의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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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다 보니 또 눈물이 난다. 아프마우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어느덧 나의 작은 할아버지 이그나시오 칼푸쿠라의 나이가 된 지금, 나는 아이들에게 마푸체족 사람들과 함께 자란 어느 개 이야기를 들려줄까 한다. <충직함>이라는 뜻의 이름을 가진 개에 관한 이야기다. |
루이스 세풀베다 <자신의 이름을 지킨 개 이야기> 中 |
사람들은 무리를 지어 다닐 때, 늘 무언가를 두려워한다. 나는 개라서 그 정도쯤은 쉽게 알 수 있다. 그들이 느끼는 두려움의 냄새가 곧바로 코에 전해지니까 말이다. (중략) 그중에서도 사람에게서 나는 두려움의 냄새가 가장 지독하다. 그래서 울창한 숲으로부터 바람을 타고 날아오는 축축한 땅의 냄새와 나무와 풀의 냄새, 히아신스의 향기, 버섯과 이끼의 냄새조차 맡기 어려울 정도다. |
루이스 세풀베다 <자신의 이름을 지킨 개 이야기> 中 |
들쥐인 툰두쿠 정도는 어렵지 않게 잡을 수 있다. 머리를 물어뜯고 허겁지겁 먹으려는 순간, 대지의 사람들한테 배운 것이 떠오른다. 나는 나직하게 중얼거린다. 「체, 즉 인간들이 나무를 베기 전에 나무 알리웬에게 용서를 구하고, 또 양털을 깎기 전에 양 우피사에게 용서를 구하듯이, 나 또한 너의 몸으로 내 허기를 채워야 하기에 너 툰두쿠에게 용서를 구하고자 한다.」 |
루이스 세풀베다 <자신의 이름을 지킨 개 이야기> 中 |
여름 동안엔 아우카만과 나는 할아버지와 함께 밖으로 나가서, 개울과 폭포를 기쁘게 하고 숲과 오솔길, 물고기와 새를 즐겁게 하기 위해, 그리고 이 땅에 살아 있는 모든 것을 기쁘게 하기 위해 감사한 마음으로 그들의 이름을 부르곤 했다. 왜냐하면 대지의 사람들인 마푸체인들은 자기들이 나타날 때 자연이 기뻐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와 더불어 자연은 자신의 경이로움을 아름다운 말과 사랑의 마음으로 소리 내어 말해 주기를 바라고 있다는 것 또한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
루이스 세풀베다 <자신의 이름을 지킨 개 이야기> 中 |
인간들에게서 절망의 냄새가 난다. 두려움과 허기, 그리고 손 안에서 짓이겨진 젖은 빵 조각을 삼킬 때 목구멍으로 올라오는 구역질 냄새가 진동을 한다. 나는 땅에 엎드린 채 비를 맞는다. 그러자 조금 전까지도 욱신거리던 몸이 한결 가벼워진 느낌이다. 숲속이라서 그런지 사방이 금세 어둠에 잠긴다. 「나도 고통을 느끼지만, 그렇게 슬프지는 않아.」 비가 오는데도 작은 초록색 불빛으로 주변을 비추는 반딧불이 쿠데마유가 내게 그렇게 말한다. |
루이스 세풀베다 <자신의 이름을 지킨 개 이야기> 中 |
「내가 모든 걸 잃어버린 것은 바로 그날이야.」 나는 눈으로 반딧불이 쿠데마유에게 말한다. 그러자 반딧불이가 초록 불빛으로 내게 답한다. 「그날 너만 모든 걸 잃어버린 것은 아니야.」 |
루이스 세풀베다 <자신의 이름을 지킨 개 이야기> 中 |
그들은 내게 <카피탄>이나 <보비> 같은 이상한 이름을 붙이려고 했다. 하지만 그런 이름으로 부르면 나는 대꾸조차 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들은 나를 그냥 <개>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내 이름은 오직 아프마우 뿐이다. 대지의 사람들이 나를 그렇게 불렀으니까. (중략) 나는 개였다. 대지의 사람들이 아니라 윙카들의 우두머리를 따라다니는 개. 사람의 흔적을 찾고 사냥에서 잡은 동물들을 물어 올 수 있는 개. 저들이 먹고 남은 음식으로 배를 채우고, 겨울마다 추위가 어떻게 뼛속까지 파고드는지, 그리고 응구네마푸가 정한 수명대로 사는 동안 어떻게 몸이 지쳐가는지를 경험한 개. |
루이스 세풀베다 <자신의 이름을 지킨 개 이야기> 中 |
못 본 사이 아우카만은 체, 즉 씩씩한 청년이 되어 있었다. 반면에 나는 트레와, 몸속에 많은 시간을 쌓아 둔 개로 변해 있었다. |
루이스 세풀베다 <자신의 이름을 지킨 개 이야기> 中 |
나는 자리에 앉은 채 있는 힘을 다해 울부짖는다. 내가 근처에 있고, 만나러 갈 거라는 사실을 아우카만에게 알리기 위해 울부짖는다. 다른 건 몰라도 고통에 찬 목소리는 결코 잊혀지지 않는 법이기에, 미친 듯이 울부짖는다. |
루이스 세풀베다 <자신의 이름을 지킨 개 이야기> 中 |
그는 나의 페니, 나의 형제다. 나는 그의 페니, 그의 형제다. 아우카만은 내 배를 만져 보더니, 내가 얼마나 굶주렸는지 알아차린다. 그는 위엄과 용기를 상징하는 색의 양털로 짠 자루에서 볶은 곡물 가루를 한 움큼 꺼낸다. 그리고 빗물에 섞어 죽을 만든 다음, 손바닥을 오목하게 오므려 내 입 앞에 갖다 댄다. 허기를 채우기 전에 나는 이 양식 ─ 처음엔 낟알이었지만 인간들이 손으로 볶은 다음 빻아서 가루로 만든 곡식 ─ 을 주신 응구네마푸에게 감사의 인사를 올린다. |
루이스 세풀베다 <자신의 이름을 지킨 개 이야기> 中 |
나는 어느 개의 기억인 아프마우다. 그리고 나의 이야기는 지금도 세상의 남쪽으로부터 피어오른 안개가 마푸체족, 대지의 사람들의 나라를 가려 줄 때면, 왈마푸의 루카들에게서 전해지고 있다. |
루이스 세풀베다 <자신의 이름을 지킨 개 이야기> 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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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스 세풀베다의 다른 책들을 읽어야겠다. 읽어야지 안되겠다.
20250129 | 연애 소설 읽는 노인 / 루이스 세풀베다
정말 우연히 좋은 책을 만나게 되면 기분이 정말 좋다. 루이스 세풀베다의 은 그런 기분 좋은 만남이었다. 연애 소설 읽는 노인 / 루이스 세풀베다 ■도서관에서 빌린 책은 커버가 벗겨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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