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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 처음 읽고 싶었던 건 <사피엔스의 죽음>인데, 어쩌다 보니 <루시의 발자국> ─ <에볼루션 맨> ─ <사피엔스의 죽음> 순으로 읽느라 맨 마지막에 읽게 됐다.
<사피엔스의 죽음>을 공동 집필한 작가들의 전작은 <루시의 발자국>이다. <루시의 발자국> ─ <사피엔스의 죽음> 순으로 읽는 것이 정석이겠지만, 중간에 재미를 위해 <에볼루션 맨>을 끼워 넣은 것도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다. <에볼루션 맨>은 <루시의 발자국>에서 언급이 되어 알게 된 책인데, 진짜 재미있게 읽었다.
사피엔스의 죽음 / 후안 호세 미야스·후안 루이스 아르수아가
표지도 그렇고 제목도 그렇고, 시선을 확 잡아 끈다. 그래서 무작정 궁금해졌던 책이었다.
죽음 탐구 여행이라니. 무겁고 무섭고 진지하면서도 신비로운 이야기가 아닐까! 예상했지만 생각보다 죽음 자체에 대한 이야기보다는, 여전히 진화에 대한 폭넓은 대화를 바탕으로 한, 조금 다른 의미의 죽음에 대해 들려주는 느낌이었다. 자연 상태에서 '늙음'의 개념을 재정립하게 해준달까.
"네 문장으로 이 문제를 정리하기로 하죠. 첫째, 자연에서는 아무도 노인이 될 때까지 살지 못하기 때문에 늙음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거죠. 자연 선택은 차후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는 볼 수 없어요. 둘째, 모든 것이 이런 식인데, 젊었을 때 모든 것을 주려고 노력할 뿐만 아니라 기대 수명에 맞춰 번식하려고 노력한다는 거죠. 만일 140년을 살 수 있는 종에 속한다면 적절히 조절할 거예요. 그렇지만 3년 밖에 살지 못한다면 100미터 달리기를 하는 것처럼 모든 것을 한꺼번에 다주려고 할 거예요." |
"그럼 지금부터는 박쥐가 태어난 지 25세가 되는 해에 병을 유발하는 돌연변이를 가지고 태어났다고 상상해 보세요. 무슨 일이 일어날까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겠죠. 박쥐는 20년 이상 살지 못하니까요." "이것이 자연에서 일어나는 일이에요. 어떤 박쥐도 20년 넘게 살지 못하니까요. 그러나 박쥐를 한 마리 잡아 집으로 데려가 외적이 사망 원인을 다 막아주었다고 상상해 보세요. 기생충을 없애 주고, 먹을 것을 제공하고 시간의 잔혹함으로부터 보호해 주는 등." "이 경우에는 25세에 죽겠지요. 그 나이가 되면 치명적인 효과를 유발하는 돌연변이 유전자가 발현할테니까요." "바로 이것이 우리 현대인들에게, 동물원에서 사는 야생동물과 우리 반려동물들에게 일어나고 있는 일이에요. 자연에서는 죽었을 나이가 지나면, 해롭기는 하지만 늦게 나타나는 효과를 만들어내는 유전자들이 발현하기 시작하는 거죠. 종의 오랜 진화 과정에서 축적된 것 말이에요. 이를 지치지 않고 반복적으로 이야기할 거예요. 자연선택은 유전자를 운반하는 개체가 미리 죽어 발현되지 않기 때문에 이런 해로운 돌연변이를 볼 수 없어요. 그런 것들을 보지 못하니까 제거할 수도 없는 거죠." "바로 이것이 늙었다는 것이군요." "맞아요. 이것이 늙음이에요. 죽음의 외적 요인들이 가차 없이 작용하기 때문에 자연에서는 늙음이 있을 수 없어요." |
"당연히 죽었어야 할 그 나이부터는, 뭐든 상관없지만, 이미 우리가 이야기를 나눴던 관절염이나 백내장 등의 돌연변이성 문제가 출현하기 시작하는 거죠." "그것이 바로 늙음이군요." "맞아요." |
'늙음'에 대한 이야기는 이런 식으로 강조된다. 그래서 그런가. 현대인의 수명을 계속해서 늘리는 것이 과연 좋기만 한 것일까 하는 생각이 자꾸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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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와중에 고생물학자와 소설가, 이 두 사람의 만담은 끝이 없다. 처음에 <루시의 발자국>을 보면서 조금 불편해했던 두 사람의 어긋남이, 너무 달라보이는 두 사람의 성향이 <사피엔스의 죽음>에서는 찰떡같아진다. 두 사람의 태도나 성향에는 변함이 없는데, 둘이 서로에게 조금 더 익숙해지고 편안해진 것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특히 이 소설가 할아버지(75세라고 하시니까...)에게서 보이는 다소 부정적이고 방어적인 태도들이 <사피엔스의 죽음>에 이르러서는 어느 정도 이해가 되고 납득이 되더니, 나중에는 귀여워보이기까지 했다. 이렇게까지 다르게 느껴질 수 있다니 ㅋㅋㅋ
둘의 만담이 정말 끝이 없다. 진지한 얘기를 하다가도 엉뚱하게 툭 튀는 순간들이 있는데, 그게 그렇게 웃길 수가 없다.
"아르수아가, 이 책을 쓰는 것 때문에 내 인생이 엉망이 된 것 같아요. 이 책을 쓰기 전까지만 해도 내가 늙었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어요." "그랬군요. 내가 말씀드린 것 적어 놨나요?" "뭘요?" "자연 상태에서는 완전하거나 죽거나, 둘 중 하나밖에 없다고요." "그럼요." "자연에서 살았다면 선생님은 이미 죽은 목숨이에요." |
이 야박한 고생물학자 좀 보소 ㅋㅋㅋ 75살 소설가 할아버지가 자신의 처지를 실감하며 약간의 감상과 우울에 젖어 하는 말은 귓등으로도 안 듣고 자기 얘기 잘 적고 있냐고 묻질 않나, 자연에서 살았다면 선생님은 이미 죽은 목숨이라고까지 하질 않나 ㅋㅋㅋㅋㅋ |
"(중략) 자연선택은 스코틀랜드의 경제학자인 애덤 스미스의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이라는 개념을 따르고 있거든요." "그 반대 아닌가요? 애덤 스미스가 자연 선택을 표절한 것 같은데요." "애덤 스미스가 다윈보다 앞선 시대의 사람이기는 하지만, 선생님 좋을 대로 생각하세요." |
잘못된 정보를 정정해주기는 하지만 그 말투가 매우 새침하고 무심한 새파랗게 어린(?) 60대의 고생물학자님 그나저나 애덤 스미스가 다윈보다 앞선 사람이라는 것, 그리고 '보이지 않는 손' 개념이 '진화론'보다 먼저라니. 이건 이거대로 놀랍다. 나도 당연히 애덤 스미스가 더 나중 사람인 줄. |
"의자 이야기는 하지 마세요. 의자는 설탕과 함께 인간이 만든 최악의 발명품이에요." "무슨 이야기예요?" "다른 사람들을 만나 잡담을 하거나 식사를 할 때, 엉덩이를 땅에 대지 않고 쪼그려 앉는 것이 인간에게 정상이에요. 이 자세가 근육의 건강한 긴장을 이끌기 때문에 '적극적인 휴식descanso activo'이라고 이름을 붙였어요. 아이들이 어렸을 적에 똥을 싸라고 변기에 앉힐 때, 힘들지 않았어요?" "맞아요." 기억을 되살렸다. "똥을 싸기 위한 정상적인 자세는 쪼그려 앉는 것이기 때문이에요. 이런 식으로 똥을 싸는 나라에서는 실제로 치질이나 게실이 없어요. 만약 역사를 다시 한 번 되돌릴 수 있다면 정제 설탕과 의자는 없애버릴 거예요. 의자는 악마와 같은 발명품이에요. 선생님도 이 이야기는 반드시 믿어야 해요." |
의자를 극혐하는 고생물학자 ㅋㅋㅋㅋ |
"지금부터는 수학 공식으로 설명할게요." "공식을 쓸 생각은 없는데요." "왜요?" "방정식이 나오는 책은 잘 팔리지 않아요. 스티븐 호킹 박사의 유명한 저서인 <시간의 역사> 잘 아시죠?" "물론이죠. 베스트셀러잖아요." "초고에는 방정식이 정말 많았어요. 편집자가 방정식 하나에 판매 부수가 10만 권씩은 떨어질 거라며 원고를 돌려보냈죠. 편집자들은 사랑을 이야기하고 싶을 때는 뭘 말해야 할지 잘 알고 있죠. 돈이 필요했던 호킹은 결국 방정식을 다 뺐고, 덕분에 책은 전 세계적으로 성공을 거두었죠. 잘 이해가 되지도 않는데 말이에요." "좀 아이러니컬한 이야기네요."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나는 이해가 잘 되는, 그리고 잘 팔리는 책을 쓰고 싶어요. 지금처럼만 설명하면 잘 이해할 수 있어요. 하지만 방정식을 넣으면 엉망이 될 거예요." 아르수아가는 잠시 침묵을 지켰다. 수학 공식을 쉽게 포기할 것 같지 않았다. "팔리든 말든 무슨 상관이죠? 혹시 돈이 필요한가요?" "당신 이야기만 하세요." "최소한 페이지 하단에 각주로라도 넣으세요." 그가 타협안을 내놓았다. "과학자들은 각주를 정말 좋아하지만 나는 정말 싫어요. 주석이 정말 중요하다면 페이지 하단에 넣으면 안 되고, 별로 중요하지 않다면 없애도 되는 것 아닐까요?" "이것이 최후통첩인가요?" "네! 이 문제는 타협할 생각이 없어요." |
칼과 방패의 싸움ㅋㅋ 절대 지려고 안 함 ㅋㅋㅋㅋ 근데 결국 소설가가 이겼다. 이 책에는 방정식이 전혀 나오지 않는다. |
"뭔가 불안한 것 같은데, 무슨 일 있어요? 수학 공식 문제 때문인가요?" 그가 이야기했다. "아니요. 그건 이미 잊어버렸어요." "그런데 무슨 일인데요?" 잠시 망설이다가 결국은 털어놓았다. "심리 상담을 받기로 했는데 내가 가지 않았어요." "심리 상담을 받아요?" "네!" "심리 상담사에게 내 이야기를 했어요?" "내 인생에서 당신이 그렇게까지 중요하지는 않아요." "그건 선생님도 마찬가지예요. 그렇지만 내가 심리 상담을 받는다면 선생님 이야기를 끄집어냈을 거예요. 젠장! 책도 같이 썼잖아요. 또 지금도 다른 책을 쓰고 있고요." "그렇긴 해요. 다음 만남에서는 혹시라도 당신 이야기를 할지 모르죠." "고마워요. 그럼 다면발현 이야기를 계속해 볼까요?" |
어머, 둘이 사귀나봐....(?) 이 대화가 너무 웃겨서 딱 이 부분만 일리한테 보여줬는데, 일리가 둘이 여자랑 남자야...? 라고 물었다 ㅋㅋㅋㅋ 중간에 갑자기 '젠장!'하면서 급발진하는 고생물학자님 뭔데요ㅋㅋㅋㅋㅋ |
친애하는 미야스 선생님 선생님과 같이 75세 정도 된 남성이 76개의 초가 꼽힌 케이크의 촛불을 끄지 못할 확률은 1,000명 중에서 27명 정도입니다. 다시 말해서 75세의 스페인 사람 1,000명 중에서 27명은 죽는다는 소리지요. 큰 문제가 아닌 것 같은데, 문제는 이미 죽은 사람의 숫자가 점점 누적되어 많아진다는 것이지요. 내년에도 살아남는다면, 확률은 1,000분의 29가 될 겁니다. 80세가 되면 1,000분의 41이 되고요. 85세가 되면 1,000분의 71로 확률이 솟구치지요. 90세에 이르면 1,000분의 124가 됩니다. 다시 말해 100명 중에서 12명 이상이 되는 셈이지요. 그렇다면 이제 걱정을 시작해야 할 겁니다. 수치가 작은 것처럼 보이지만, 이는 주자들이 나가떨어지는 장애물 경기와 똑같습니다. (중략) 그건 그렇고 혹시 아직도 다이어트를 포기하지 않았다면 조심하세요. 혹시 거울에서 해골을 보게 될지도 모르니까요. 당장 포기하세요. 행운을 빕니다. 후안 루이스 아르수아가 |
편지로 직접 아주 정성스럽게 죽음의 확률을 알려주는 고생물학자 건강 때문에 다이어트 하는 사람한테 너무 무리하지 말라는 말을 참 다정하게도 한다 ㅋㅋ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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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왠지 <사피엔스의 죽음> 후속작도 나올 것 같다. 책의 마지막에 두 사람은 이런 대화를 나눈다.
"아직 이타주의에 대해서는 충분히 이야기를 나누지 못한 것 같아요." "협력과 이타주의요? 물론 존경하는 크로폿킨도 남았어요. 그리고 의식이라는 것도 있고요. 과학의 정말 중요한 문제는 양심과 사회의식, 선생님과 '나'라는 존재 등이에요. 사회의식의 출현은 협력과 연결해서 봐야 해요. 그렇지만 우리가 계속 서로를 참고 견딜 수 있다면 다음 책에서 다루기로 하죠." "인공 지능에 관한 책이요?" "사회의식, 지혜, 협력에 관한 책이죠. 거기에 모든 것을 포함할 수 있어요. 인공 지능까지도요." "좋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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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시의 발자국>도 그랬는데 <사피엔스의 죽음> 역시 다양한 전문지식을 담고 있다. 아르수아가는 고생물학자가 아니라 뭐든지 다 아는 척척박사님같다. 재미있는 일부분을 제외하면 사실 전문적이고 어려운 얘기들이 더 많다.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넘어간 부분도 많고. 그런 면에서 <루시의 발자국>이나 <사피엔스의 죽음>은 그냥 재미로 읽어도 좋고, 다양한 지식을 얻기 위한 수단으로 삼기에도 충분히 효과적이다.
재미있는 부분이나 인상적이었던 부분을 표시하다보면 책이 이렇게 된다.
"번식을 위한 투쟁에는 두 가지 모델이 있어요." 아르수아가가 이야기를 이어 갔다. "빨리 이야기해 보세요." 나는 재촉을 했다. "격투기장 모델과 런웨이 모델이 있어요. 포유류의 수컷들은 격투기장에서 싸우는 반면에, 조류들은 런웨이에서 싸우는 셈이지요. 이 두 경우 모두에서 암컷들은 최고의 유전자를 가진 수컷들과 번식을 하는 거예요." |
"인간은 나무에서 내려온 다음 무엇을 했을까요?" 고생물학자는 집게와 씹는 기관을 끊임없이 사용하면서도 말을 계속 이어 나갔다. "무엇을 했죠?" "인간은 곡류를 먹는 동물이 되었어요. 이동 수단으로 사용하던 손을 해방시켜 손가락을 곡물을 집는데 사용할 수 있게 한 거예요. 바로 여기에서 집게와 맷돌의 분리가 이루어졌어요." "집게는 손일 텐데, 그럼 이가 맷돌이 되나요?" "맞아요. 우리 입은 돌출된 부분과 두툼한 부분을 잃었어요. 앞니가 작아진 대신에, 반대로 어금니를 얻은 셈이지요. 덕분에 우리는 영장류가 된 거예요. 침팬지는 잘 익은 과일을 먹을 때 앞니로 잘게 자른 다음 그것을 씹지도 않고 그냥 꿀꺽 삼켜버리지요. 잘 익은 과일은 부드러워 빻거나 으깰 필요가 없는 것이죠. 그래서 침팬지의 어금니는 우리 인간의 조상이자 최초로 두 발을 가지고 걸었던 오스트랄로피테쿠스의 어금니와 비교했을 때 상당히 작은 편이에요. 선생님에게 정리해 드린 이 이야기는, 다시 말해 인간 진화의 출발점이 곡물에 있다는 발베르데의 '곡물섭취가설'이에요. 자기에게 노벨상을 줄 거라는 확신을 가지고 살았어요." |
"(중략) 생물학에서 번식을 마치자마자 죽는 종을 뭐라고 부르는지 알아요?" "뭐라고 하죠?" "세멜파러스semelparous라고 해요. 그 이유를 설명해 드릴게요. 제우스는 세멜레라는 인간을 애인으로 뒀어요. 그런데 제우스의 아내인 헤라는 정말 질투가 많았죠. 헤라는 남편의 애인인 세멜레에게 제우스와는 그만 헤어지라고 수차례 설득했어요. 그런데 신을 잉태하고 있던 세멜레는 헤라의 말을 듣지 않았죠. (중략-헤라의 말을 들은 세멜레는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던 제우스에게 당신의 본 모습을 보여달라고 간청했고, 제우스가 마지못해 현신하는 순간 빛과 불이 몸 밖으로 새어 나갔고, 세멜레는 그 순간 재가 되었다. 제우스는 그녀의 배 속에 있던 태아를 살려내 자신의 허벅지에 넣어 임신기간을 채웠고, 그렇게 태어난 것이 포도와 포도주의 신인 디오니소스다-라는 내용) 여기에서 번식의 순간에 죽음을 맞는 종이 세멜파러스, 즉 단회번식 동물이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지요." |
"(중략) 열이 있으면 맥박도 빨라지거든요. 그리고 반대도 마찬가지예요. 맥박이 빨라져서 열이 있는거예요. 직접적인 관계가 있죠. 오늘 유산소 운동을 했을 때, 선생님의 심장과 맥박이 빨라졌을 거예요. 그러면 몸은 땀이라는 수단을 이용해 체온을 낮추는 반응을 보여요. 정말 경이로운 메커니즘이죠. 진화의 놀라운 발명품이에요." "그런 것 같네요." "진화라는 주제에서는 언제나 그렇지만 이 냉각 시스템 역시 수백 가지 이상의 문제와 연결되어 있어요. 예를 들어, 일어서는 것은 체온을 낮추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어요. 피부 전체가 공기와 접하게 되거든요. 4족 보행에서 2족 보행으로 넘어가면서 우리는 땅과 떨어져 살 수 있게 되었어요. 덕분에 몸은 조금 온도가 내려갔지요. 땅이 매우 뜨거웠거든요. 어떤 사람은 우리가 체온을 조절하기 위해 똑바로 일어서기 시작했다고 주장해요. 나는 시너지 효과라고는 생각하지만, 체온을 조절하기 위해 두 발로 섰다고는 믿지 않아요. 하지만 두 발로 선 자세가 체온 조절에 유리했다는 것은 사실이에요. 그런 자세를 취하면 바람을 이용할 수 있거든요. 4족 보행인 경우, 해가 정점에 있을 때는 등 전체가 자외선에 노출될 수밖에 없어요. 그런데 우리는 머리카락이 보호하고 있는 머리만 노출되잖아요. 2족 보행과 체온 조절 메커니즘 덕분에 한낮에는 우리 인간이 다른 동물에 비해 훨씬 우월한 위치를 점할 수 있는 셈이에요.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개발할 수 있었던 생태적인 적소의 하나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어요." |
"오래 사는 모든 동물은 성장이 느리군요." 내가 결론을 내렸다. "맞아요! 18세기 자연주의자인 뷔퐁이 그렇게 이야기했어요. 그리고 그것을 자연 과학 박물관에서 봤고요. 대략적인 수명을 계산하려면 최종 크기에 도달하는 데 걸리는 시간에 3을 곱하면 돼요. 우리 인간의 경우에는 21세에 3배를 하면 선사시대 조상들의 수명에 접근할 수 있을 거예요. 뷔퐁은 계산을 더 정확하게 했어요. 그는 키가 다 큰 다음 체격이 좀 더 커지려면, 여기에 몇 년이 더 걸리기 때문에 서른 살은 돼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
"자코브는 동물에게는 세 가지 종류의 기억이 있다고 말했죠. 신경계의 기억(뉴런에 저장되는 경험), 면역계의 기억(병원체에 감염되었다가 살아남으면 백신 형태로 남아 있는 기억인데 병원체에 대한 방어력을 개발했다는 거죠) 그리고 계통 발생적인 기억으로 진화의 기억이지요. (중략) 신경계와 면역계에 저장되는 기억은 실수에서 배워요. 소는 전기 목동에게 충격을 받으면 다시는 접근하지 않아요. 만일 감기에 걸리면 면역계는 바이러스를 방어하는 법을 배우지요. 그러나 진화의 기억은 성공에서만 배워요. 실수에서는 배우지 않지요." "실수는 죽음이니까요." "멸종이지요. 종의 유전 부호는 조상들의 결과물이에요. 성공을 통해, 오로지 성공을 통해서만 배운 것들이지요. 두 번째 기회는 없어요." |
바로 그날 일요일 오후에 불멸에 대한 보르헤스의 단편을 다시 읽다가 다음과 같은 구절을 찾아냈다. "불멸의 존재가 된다는 것 자체는 별 의미가 없다. 죽음을 모른다는 의미에서 인간을 제외한 모든 존재는 불멸이다. 불멸이라고 알려진 것은 성스러운 것, 끔찍한 것, 이해할 수 없는 것인 셈이다." |
"언젠가 우리는 에피쿠로스주의와 쾌락주의의 차이에 대해서 짚어 봐야 해요. 왜냐면 사람들 대부분이 혼동하고 있는데, 실상 전혀 상관이 없거든요. 우리는 과체중과 병적인 비만이 팬데믹처럼 번지는 것을 목격하고 있는데, 이런 현상은 에피쿠로스주의보다는 쾌락주의와 더 깊은 관계가 있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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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정말 별 것 아닌데 좋았던 표현 하나
바로 그 순간, 굴에 다른 쥐들보다 조금 더 큰, 혹 비슷한 것이 달린 녀석이 나타났다. "저 녀석은 척추옆굽음증을 앓고 있는 건가요?" |
척추옆굽음증 = 척추측만증
척추옆굽음증이라는 용어를 처음 봤다. 검색해 보니 최근 많이 사용되는 용어인가보다. 그동안은 흔히 '척추측만증'이라고 했던 것 같은데. 오. 좋은 용어를 하나 배웠다. 척추옆굽음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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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정말 우연히 눈에 들어온 문장인데, 왠지 원문은 이런 뉘앙스가 아니었을 것 같아서 고쳐보고 싶었던 문장이다.
매립지에서 나온 비닐봉지의 잔해들이 철조망에 걸린 채 어느 나라인지 모르겠지만 국기처럼 바람에 나부끼고 있었다.
책을 읽으면서 외국식 문장 표현을 그대로 해놔서 좀 어색하다 싶은 부분들이 조금 있었다. 덧붙이는 말 같은 걸 쉼표와 쉼표 사이에 끼워넣는 것 같은 거. 아마 이 문장도 원래는 그런 식이 아니었을까 싶긴 하다.
매립지에서 나온 비닐봉지의 잔해들이 철조망에 걸린 채, 어느 나라인지 모르겠지만, 국기처럼 바람에 나부끼고 있었다.
아마도 요런 식? 근데 쉼표가 없이 그냥 문장 안으로 들어와 버리니 너무 멋이 없어진다. 나름 <루시의 발자국>과 <사피엔스의 죽음>을 읽으면서 소설가 할아버지의 스타일을 좀 파악한 바로는 이렇게 멋없는 문장을 쓸 사람이 아니다. 내가 장담한다.
그래서 내가 파악한, 소설가 할아버지의 스타일로 바꿔 본 문장이다.
매립지에서 나온 비닐봉지의 잔해들이 철조망에 걸린 채 어느 모르는 나라의 국기처럼 바람에 나부끼고 있었다.
좀 더 자연스럽고 문학적이지 않나....?
...... 아님 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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