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하도 할 게 없어서 동네 도서관에 새로 들어온 책 목록을 구경하다가 이걸 봤다.
오 재밌겠는데 하고 책 구경하러 들어갔다가 공동저자의 이전 작업물이 이미 있고, 그것이 화제가 되어 나온 일종의 후속작이라는 설명을 보고 그럼 그 화제가 된되었다는 첫 책부터 볼까! 하고 빌린 게 바로 이거다.
『 루시의 발자국 』
■ 후안 호세 미야스 : 소설가
■ 후안 루이스 아르수아가 : 고생물학자
이 둘이 나눈 대화를 담은 책이다. 소설가가 먼저 이런 프로젝트 어때요?하고 제안했고, 고생물학자가 적극 주도하게 된 경우다. 둘은 비정기적으로 만남을 갖고 어떤 장소를 방문하거나, 다양한 소재를 가지고 대화를 나눈다.
■
우리는 공원 연못가를 지나고 있었다. 연못 위엔 수의처럼 보이는 엷은 안개가 끼기 시작했다. 오리가 나는 것을 보고 그에게 이야기했다.
"저기 오리 좀 보세요."
"아뇨. 선생님 저건 가마우지예요."
그가 바로잡아 주었다.
"가마우지는 정말 성실한 새예요. 이 공원은 정말 환상적인데요!"
"그래서 새로운 개념의 공원이라고들 해요. 스마트 공원이라고요. 그동안 바보 공원이었던 것도 아닌데."
"가마우지에 대해 말씀드릴게요. 정말 멋진 어부예요. 어떤 나라에선 가마우지가 물고기를 삼키지 못하게 목에 뭔가를 넣어요. 그런 다음 물고기를 빼앗아요."
"알았어요. 그런데 가마우지 이야기로 새지 맙시다. "
"또 조금만 옆으로 벗어나면 패닉 현상을 보이시는군요. 어디에서 이런 트라우마가 생겼을까 모르겠네요."
"나도 잘 모르겠어요. 하지만 나는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는 것을 좋아해요."
근데 읽다 보면 둘이 아주 잘 맞는 것 같지는 않다는 생각이 자꾸 든다. 성향이 완전히 달라보이기도 하고. 고생물학자는 주변의 사물과 풍경들을 모두 아주 아름답고 풍요롭고 신비롭게 바라보면서 신 나게 이야기를 하는 반면, 소설가는 조금 다르다. 일단 이 사람의 성향 자체가 좀 음울하고 불안하고 예민하고... 그런 부정적인 감정이 도드라지는 사람인 것 같다.
■
누군가에겐 우리가 무서운 존재로 보일 것만 같았다. 정신병원에서 도망쳐 나온 듯한 어른 둘이 1월의 어느 수요일에 얼어붙을 것만 같은 차가운 날씨 속에서 시소를 타며 흔들대고 있었다.
■
나는 계속 그림자에 신경을 썼다. 내가 아는 동네 사람이 이 늦은 시간에 개를 데리고 산책을 나왔다가 괴기 소설에나 나올 법한 상황을 보고 깜짝 놀라지는 않을까 싶었다.
이런 식이다. 성인 둘이 시소를 타는 것 뿐인데 표현이 상당히 부정적이다. 근데 이게 책 전반적으로 그렇다.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는 듯한 모습도 많이 보이고, 타인의 존재에 지나치게 예민하게 구는 모습도 보인다. 개인적으론 이 작가가 나와 맞지 않는 성향일 것 같다는 생각이 강하게 든다. 그래서 그런가. 그래서 그런가, 좋게 만났으면 분명 이 소설가의 작품도 궁금해지고 보고싶단 생각이 들었을텐데, 전혀 궁금하지가 않다.
그리고 되게 의욕없고 매사에 별로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타입같다 개인적으로 이런 사람 쫌 별론데....
■
"되돌아가는 게 낫지 않을까요? 흥미로운 게 별로 없을 것 같은데요."
"흥미로운 게 없다니요?"
아르수아가는 조금 언짢은 표정을 지었다.
"이 화강암이 만들어내는 풍경이 선생님에겐 아무 말도 하지 앟던가요? 수 세기 동안 우리의 방문을 기다려 온 이 화강암 바위산이 말이에요."
나는 상황을 악화시키지 않으려고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
그는 내가 무슨 말을 하길 기다리는 듯 나를 쳐다보았다. 그러나 나는 탈라베라 델 라 레이나 방문에 별로 감흥이 없었다. 그의 말이 뭔가 미심쩍은 듯 살짝 눈썹을 치켜떴을 뿐이었다.
자기가 먼저 제안한 작업이었고, 거기에 응해준 사람에게, 보여줄 것이 있다며 함께 간 곳에서, 굳이 이렇게 느껴야 할 이유가 있나? 도대체 이 사람 뭐지? 왜 자꾸 의심하고 불신하고 재미없어하지?
■
우리는 계곡에 있는 작은 마을 솔로산초에서 식사를 했다. 당연히 파타타스 레볼코나스를 주문했다. 분위기를 깨고 싶지 않아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요리는 정말 끔찍했다. 파프리카와 마늘이 들어간 퓌레 요리였다. ... 내 생각에 베토니아 사람들은 이가 득시글득시글한 불쌍한 악마였을 것 같았다.
그냥 맛 없었다도 아니고 끔찍했다고까지 하는거나, 방금 전까지 과거여행을 하고 돌아왔으면서 그 시대 사람들을 저렇게까지 악의적으로 표현할 이유가 있었을까? 뭐지? 이게 유머코드인가? 위트인건가? 그런건가? 나는 정말 모르겠다
■
애완동물이 없거나 주인이 없는 동물은 우리 두 사람뿐이었다. 우리가 이상하게 보이지 않을까 불안했다.
"누군가가 여기에서 뭘 하고 있느냐고 묻는다면, 내가 당신의 반려견이라고 이야기합시다."나는 아르수아가에게 엉뚱한 제안을 했다.
또 또 주변 의식한다
■
진열대에 놓여 있던 장난감 집은 다락방이 딸린 이층집이었는데, 가운데를 잘라 활짝 열어 놓은 탓에 안이 환하게 들여다보였다. (중략) 지나치게 평화로운 풍경이었다. 나라면 아마 아래층 계단 아래 텅 빈 공간에 사람을 대롱대롱 목매달아 놓았을 것이다.
... 아 이런 사람이구나 이런 걸 좋아하는 사람이구나 이제야 깨달음
■
나는 에너지도 싫고, 행복한 것도 싫고, 몰려다니는 사람들도 싫었다.
... 아 이런 사람이구나!
■
"우리가 다른 사람들에게 불편을 초래할까봐 걱정되네요."
"다른 사람의 불편 따위는 잊어버리세요. 그렇지 않으면 다른 사람들이 무슨 말을 할지 생각하며 평생을 보내게 될 테니까요."
아르수아가는 나를 꾸짖었다.
드디어 혼났다ㅋㅋㅋㅋㅋ 아르수아가가 그 동안 많이 참았다 ㅠㅠ
■
눈을 부릅뜬 시체를 다른 곳으로 옮기고 있을 것만 같은 자동차들과 눈이 마주쳤다.
곳곳에 이런 표현이 도사리고 있다. 아니 도대체 어떻게 이런 상상을 할 수 있는거야;
끝까지 이 둘이 잘 어울린단 생각은 전혀 들지 않는다. 그런데 이 후속작이 대놓고 '죽음'을 이야기하는 책이다. 어라, 그렇다면 이 우울하고 예민한 소설가가 꽤나 흥미롭게 반응할 것 같다. 어이없게도, <루시의 발자국>에서 받은 불편함이 오히려 다음 작품에 대한 기대를 갖게 만들었다.
책의 내용이나 매력은 하나도 얘기 안 하고 소설가가 너무 우울하다, 나랑 안 맞는다는 감상으로만 가득 채운 후기다.
기록자는 소설가인 후안 호세 미야스이지만 알맹이를 담당하는 건 고생물학자인 후안 루이스 아르수아가다. 고생물학자가 가진 폭넓은 분야의 다양한 지식과 정보가 담겨 있다. 그래서 기록해두고 싶은 부분은 저렇게 표시도 하면서 읽었다. 대화에서 툭툭 튀어나오는 유식함.. 정말 너무 멋져.
'읽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240426 | 사피엔스의 죽음 / 후안 호세 미야스·후안 루이스 아르수아가 (0) | 2024.04.26 |
---|---|
20240413 | 에볼루션 맨 / 로이 루이스 (0) | 2024.04.17 |
20240100 | 살아생전 떠나는 지옥 관광 / 김태권 (0) | 2024.01.29 |
20240112 | 삼체 / 류츠신 (0) | 2024.01.17 |
20231230 | 삼체 1부 삼체문제 ~ 삼체 2부 암흑의 숲 (0) | 2023.12.3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