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다 어...? 나 이거 어디서 봤는데...? 나 이 얘기 아는데....? 싶을 때가 있다. 분명 처음 읽는 책이라고 생각하고 읽기 시작했는데도 말이다. 이상하게 상황이 낯익다. 문장이 익숙하다. 커트 보니것의 <제5도살장>이 그랬는데 이번엔 <애크로이드 살인사건>이다.
애크로이드 살인사건 / 애거서 크리스티
갑자기 애거서 크리스티의 추리소설이 읽고 싶었다. 도서관에서 검색해서 당장 빌릴 수 있는 책들을 찾았다. 어디선가 <애크로이드 살인사건>이 유명하다고 들었던 것 같은데, 마침 대출이 가능했다. 그래서 당장 빌려서 읽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런데... 어....? 어어.....? 뭔가 콕 찝어 얘기하긴 어려웠으나 어디선가 본 듯한 상황과 전개, 인물들이 나를 혼란스럽게 했다. 결정적으로 포와로가 옆집에 살아... 호박을 키워...? 나 이거 어디선가 봤는데...?
혼란스러움에 글이 눈에 들어오지 않아다. 내가 설마 읽었던 건가? 당장 확인이 필요했다.
아..... 2022년 1월.... 아.... 아아...
함께 빌린 책을 보니 이 때도 갑자기 추리소설이 땡겨서 엘러리 퀸을 읽기 시작했을 무렵이었다. 유명한 작가의 추리 소설들을 하나씩 보고 나한테 맞는 걸 찾아봐야겠다, 하고 엘러리 퀸과 애거서 크리스티를 빌렸던 것이, 뒤늦게 기억이 났다. 아아. 이제야.
덕분에 나는 <애크로이드 살인사건>을 약 1년만에 다시 읽게 되었다.
전혀,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 상태로.
아니, 기억이 나지 않는 건 아니었다. 읽으면 딱 읽는 그 부분만큼씩 기억이 되살아났다. 맞아, 이런 장면이 있었지. 그래, 이 사람이 이런 말을 했었어. 문제는, 딱 그만큼씩만 기억이 난다는 것이었다. 이 다음은, 결정적으로 사건의 해결은 어떤 방식으로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범인은 누구인지! 그런 건 전혀 기억이 나지 않았다. 하, 이렇게 답답할 수가.
결국 다시 읽을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다 읽어냈다.
와. 나 또 속았네. 그리고 모든 게 밝혀지는 순간 또 충격받았네. 읽는 동안에는 이게 왜 그렇게 유명할까... 아.. 별로 재미 없는데... 하다가 막판에 헐!!!! 하면서 충격받게 되는 게 처음이나 이번이나 똑같은 패턴으로 반복됐다. 하. 진짜 어이없네.
동네 부자(;) 애크로이드 씨의 살인사건을 둘러싸고 가족들과 주변 인물들의 사연과 비밀을 하나씩 밝혀 내면서 범인과 사건의 진상을 밝혀내는 소설인데, 그 자체가 흥미진진하고 재미있다기보다는 마지막에 모든 게 밝혀지고 난 후, 그러니까 범인이 누구인지를 알게되는 순간 한 번 놀라고, 이야기가 서술된 방식을 보고 또 한 번 놀라게 되는 소설이다. 다른 추리소설들도 그렇겠지만, <애크로이드 살인사건>은 정말 꼭 끝까지 읽어야만 진정한 맛을 느낄 수 있다.
처음에 읽었던 걸 새카맣게 잊긴 했지만, 두 번이나 읽은 셈이니 이제 다시는 내용을 까먹지 않겠지...? 이걸 읽었다는 사실도...? 또 까먹고 세 번을 읽으면 내 스스로가 너무 한심할 것 같다 ㅠ_ㅠ 꼭 잊지 말고 기억해야지. 그리고 범인이 누구인지도!
오탈자를 발견하면 어찌나 신이 나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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