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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공연을 봤다. 

 

국립창극단, <리어>

 

 

 

 

 

 

국립극장에 갈 땐 늘 동대입구역에서부터 걸어 올라간다. 굳이 셔틀을 타지 않아도 걸어서 약 10분 정도면 국립극장에 도착할 수 있다. 마침 봄이 한창이고, 장충단공원 옆길에 흐드러지게 핀 벚꽃도 실컷 즐길 수 있었다. 

 

오프닝에서부터 오싹오싹 소름이 끼친다. 코러스의 합창은 늘 이렇게 감동을 준다. 무리를 지어 노래를 부르고 분위기를 만들어주는 코러스의 활용이 참 좋았다. 

 

리어는 사실, 작품 자체의 매력은 잘 모르겠다. 예전에 고선웅 연출의 <리어외전>을 보았을 때도 비슷한 느낌이었던 것 같다. 워낙 유명한 고전이긴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작품의 매력 <<<< 배우의 연기차력쇼" 이런 느낌이다. 리어뿐만 아니라 주요 배역을 맡은 배우들의 연기에 감탄하고 빠져들어 보는 게 더 크다.

 

이번에도 역시 그랬고, 그래서 또 한번 연기하는 김준수가 너무 좋아졌지. 

 

두 말 하면 입 아프다. 진짜. 왜 이렇게 잘 하지? 왜 맨날 잘 하지? 잘 할 거라고 생각은 했는데 그 이상으로 잘 해서 매번 놀랍다. 리어라는 캐릭터가 사실 그렇게 호감가는 인물은 아닌데,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모습을 어색하거나 우습지 않게 잘 보여주고, 그걸 보는 관객들에게 안타까움과 연민을 얼만큼 잘 이끌어 내느냐가 진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그걸 또 기가 막히게 잘 하드라. 콩깍지라고 해도 할 말은 없음

 

그리고 이번에 배역 캐스팅이 정말 너무 찰떡같았다. 리어와 세 딸들은 물론이고, 에드거랑 에드먼드 캐스팅이 너무너무 마음에 들었다. 멋진 모습과 광인의 모습을 모두 보여줘야 하는 에드거에 광복님이 너무 딱이었고, 치기어린 에드먼드에는 아직 어린 티가 나는 수인님이 또 아주 잘 어울렸다. 이것도 약간  내 콩깍지인데, 광복님이 멋지고 비중있는 역할 하면 좋음 ㅋㅋㅋㅋ 

 

극과는 별개로 거너릴이 에드먼드를 따라 죽는 장면을 가장 가까운 곳에서 목격하는 사람이 에드거라는 사실이 너무 재미있었다. 왜냐면 거너릴 소연님과 에드거 광복님이 찐부부라 ㅋㅋㅋ 극 중에선 에드거와 거너릴 사이에 그런 기류가 전혀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 장면에서 에드거가 함께 죽음을 맞은 둘을 한참이나 바라보고 있는 것이 왠지 막 괜히 아련하고 막 막 ㅋㅋ 괜히 혼자 흥미진진했더랬다. 

 

코딜리어/광대 1인 2역을 맡은 민경아님은 뭐 더 할 말이 없다. 명창이여 명창. 그렇게 자그마한 몸에서 어떻게 그런 소리가 나지. 그리고 어떻게 준수를 업을 수가 있지!

 

아쉬운 건 그 외에도 너무나 잘 하는 창극단 배우님들이 많은데, 대부분의 역할이 좀 밋밋했다는 거다. 

 

리어의 갈등 구조가 신-구 세대로 나뉘기도 하던가? 아니면 이번 극에서 추가된 설정인지 모르겠다. 거너릴의 하인과 리어의 기사의 대립에서부터 계속해서 언급되는 것이 젊은이-늙은이로 나뉘는 세대의 구분이었는데. 원작을 잘 모르니 알 수가 없군. 

 

사실 극중에서 보여지는 갈등 구조나 사건의 발생이 다소 황당하고 갑작스런 느낌이 없지 않다. 근데 원래 그렇게 쓰여진 것이니 뭐라 할 말이 없다. 코딜리어와 리어의 사이가 갈라지는 이유도 너무 급작스럽고, 거너릴과 리건이 에드먼드와 사랑에 빠지는 것도 뜬금없고, 글로스터나 에드거가 에드먼드에게 속는 것도 너무 허술하다. 개인적으로 리어라는 작품에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이유다. 그런데도 종종 리어를 챙겨보게 되는 이유는, 배우들이 얼마나 또 엄청나게 연기를 할까 하는 기대를 품게되기 때문이다. 

 

서양의 대표적인 고전인데, 대사와 표현들을 동양적으로 바꾸었는데도 상통한다는 것이 재미있었다. 어쩌면 원작의 표현들보다 각색된 표현들이 우리나라 관객들에게는 더 와닿을지도 모르겠다. 

 

무대 위 배우가 침땀눈물을 흩뿌려대는 것을 좋아한다. 리어도 그랬다. 

 

몇몇 장면에서 피아노 선율이 굉장히 드라마틱하게 깔리는데, 이게 현대적 가사와 어우러지니 까딱 잘못하면 창극이 아니라 그냥 뮤지컬처럼 느껴지기도 하더라. 약간 정재일의 자아표출같은 느낌이기도 했다. 내가! 작곡했다! 이 작품의 음악은! 나! 정재일이다! ㅋㅋㅋㅋ

 

세 시간이 넘는 줄 몰랐다. 인터미션때도 자리를 지키는 편이라, 오랜만에 너무 오래 앉아있어서 엉덩이가 아프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런 관객들을 위한 배려인지 2막은 암전시간이 유난히 긴 것 같았다. 암전 때마다 자세를 좀 고쳐앉아야 될 것 같은 극이었다. 7:30에 시작해서 커튼콜까지 다 마치고 핸드폰을 켠 시각이 10:45경이었다. 와. 길다. 진짜 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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