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창시절 많이 들어 본 고전문학 작품이다. 요즘도 그런가? 아무튼, 제목은 익숙한데 내용은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래서 이것도 한번 봐야지, 봐야지 하다 일단 빌려왔다.
사씨남정기 謝氏南征記 / 김만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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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씨남정기를 보고 찔찔 운 사람이 있다?
그게 나야 (두비두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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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제목의 뜻이 궁금했다.
사씨 : <사씨남정기>의 주인공인 여인 사씨
남 : 남쪽
정 : 가다, 먼 길을 가다
기 : 기록
<사씨남정기>는 사씨가 남쪽으로 먼 길을 떠난 이야기-인 거구나. 풀어놓고 보니 단순하면서도 궁금증을 자아낸다. 사씨는 왜 남쪽으로 떠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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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씨가 모함을 받기 시작하는 부분부터 갑자기 막 눈물이 났다. 슬퍼서 나는 눈물이 아니라 너무 억울하고 분통터지고 짜증나고 답답해서 나는 눈물. 근데 진짜 화나는 게 뭔지 앎? 교활하게 구는 교씨보다 거기에 휘둘리는 유한림이 더 짜증난다는 거다. 이 자식이 교씨의 말에 그런가...? 그럴지도...? 하며 휘둘릴 때마다 이 그지같은놈!!!! 하면서 짜증이 솟구쳤다. 귀도 얇고 줏대도 없다. 정말 너무너무 짜증났다.
유한림은 단아한 군자이지만, 어린 나이에 현달하여 천하의 많은 일들을 두루 경험하지는 못했지요. 따라서 하늘이 짐짓 일시적인 재앙을 내려 크게 깨우치고, 허물을 고치기를 기다렸다가 다시 그대가 아내가 되게 하여 그의 부족한 부분을 돕도록 하려는 것이랍니다. 이는 모두 상제께서 유씨 집안을 도우려는 뜻이지요. 그런데 부인은 어찌 이처럼 조급하세요? 부인은 스스로 '일신에 악명뿐이다'라고 말하지만 이는 비유컨대 뜬구름이 잠시 햇빛을 가린 정도일 뿐이니 어찌 개의하겠어요? |
김만중 <사씨남정기> 中 |
사씨가 물에 빠져 죽을 결심을 하고 혼절한 순간 홀연히 나타난 전설 속의 열녀들? 유명한 부인?을 만나 들은 소리다. 개소리다. 유씨 집안을 돕는데 온갖 시련과 고통은 사씨가 다 당하고 있는데 이게 무슨 헛소리야? 그걸 왜 참아?
물론, 그때는, 그게 미덕이고, 그것이 옳은 것이고, 그랬다는 건 알겠는데, 그래도, 너무 짜증난다. 왜 사씨한테만 그래! 차라리 유한림을 괴롭히라고!!
부인께서는 지난 일을 괘념해 나를 영영 버리시렵니까? 만약 그렇지 않다면 바라건대 함께 가도록 합시다. |
김만중 <사씨남정기> 中 |
사씨와 다시 만난 유한림이 하는 소리다. 잘못했다고 엎드려 빌어도 모자랄 판에 나 버릴꺼야..? 하며 불쌍한 척을 하고 있다. 물론 당연히 어질고 현명하고 선한 사씨는 지난 일을 괘념치 않고 예를 갖춰 유한림을 따를 것을 약속한다. 그치만 나는 너무너무 괘념되고, 괘씸하다. 유한림 이 어리석은 인간.
" 누구인들 허물이 없겠습니까마는 고치는 것이 어렵다고 했습니다. 매형이 비록 한때 소인에게 속았지만 끝내 크게 깨달았으니 군자라 이를 만합니다. " 공무로 가는 길이라 기한이 있어 두 사람은 기쁜 마음을 다 나누지 못하고 헤어졌다. |
김만중 <사씨남정기> 中 |
사씨의 남동생이란 놈이 유한림에게 하는 소리다. 군자래 ㅎ 깨닫고 반성했으니 군자래 ㅎ 자기들끼리 북치고 장구치고 아주 신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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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은 그 시대에 시선을 맞추고 봐야 한다 주의이지만 그래도 억울하고 화나는 건 어쩔 수 없다. 찔찔 울기까지 했는데 이렇게라도 화를 풀어야지 안되겠다. 근데 홀딱 빠져서 한번에 다 읽었을 만큼 의외로 너무 재미있고 몰입감도 대단하다. 막연히 어렵고 재미도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역시 시기 질투 계략이 범벅된 치정극은 재미가 없을 수가 없나보다.
다시 생각해도 너무 어이없다. 내가 이걸 울면서 보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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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말을 찬찬히 살피다 몰랐던 정보를 얻었다.
처음에 김만중은 한글로 <사씨남정기>를 창작했다. 부녀자를 주요한 독자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김만중이 돌아간 지 17년 뒤에 그의 종손자 김춘택은 <사씨남정기>가 한글로만 전하는 것이 안타까워 한문으로 번역했다. <사씨남정기>가 제대로 평가받고, 사대부들에게도 읽히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그런데 김춘택의 한역 이후 <사씨남정기>는 대부분 김춘택의 한역본으로 전승되었다. 지금 전하는 대부분의 한글본도 김춘택이 한문으로 번역한 <사씨남정기>를 다시 한글로 옮긴 것이다. 물론 김만중 원본의 내용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비록 김만중의 원본, 혹은 이와 동일한 계열의 국문본 작품은 전하지 않지만, 누군가 국문본의 내용을 거의 직역 투의 한문으로 번역하기도 했고, 김춘택 한역본을 다시 한문으로 개작하면서 김만중의 원본 내용을 일부분 반영하기도 했다. |
<사씨남정기> 옮긴이 류준경 |
한글로 창작되었지만 한글 원본은 소실되고 한역본만 남아 있다니. 아무리 원본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라고 하지만 좀 아쉽다. 한글본이 있었으면 정말 굉장했겠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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