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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111 | 크리스마스 캐럴 / 찰스 디킨스

카랑_ 2025. 1. 17. 1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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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도 알고, 대강의 내용도 익숙하게 알고는 있지만, 막상 '읽었는가?'라고 물으면 답하기 어려운 책들이 많다. <크리스마스 캐럴>도 그런 책 중 하나였다. 그래서 매번 도서관에 갈 때마다 빌리까 말까, 눈에 띄는 거 없으면 빌려와야지 하는 책이었는데 이번이 그 기회였다. 특별히 눈에 띄는 책이 없었다. 

 

크리스마스 캐럴 / 찰스 디킨스 

 

 

 

 

스크루지는 이런 사람이다.

 


아무리 사나운 날씨도 스크루지를 당해 낼 수는 없었다. 억수같이 쏟아지는 비건 눈이건 우박이건 진눈깨비건 오직 한 가지 점에서만 스크루지를 이길 수 있었다. 그것들은 그나마 종종 '후하게 내려준다'는 점이었다. 스크루지는 절대 그런 법이 없었다. 

찰스 디킨스 <크리스마스 캐럴> 中

 

 

 

그렇다고 스크루지가 남의 돈을 빼앗거나, 써야 할 곳에도 쓰지 않는 사람은 아니다. 

 


" 감옥은 없소? "
" 그럼 구빈원은? 거기도 여전히 돌아가고 있지 않소? "
" 날 좀 가만히 내버려 두시오. 신사 양반, 나한테 뭘 원하느냐고 물어서 하는 말인데, 내가 원하는 건 바로 이거요. 나 자신이 크리스마스에 별로 즐겁지가 않기 때문에 게으른 사람들까지 즐겁게 해줄 여력이 안 되오. 난 아까 말한 그런 시설들을 지원하고 있소. 그것만으로도 충분하오. 그러니 그 사람들에게 그리로 가라고 하시오. "

찰스 디킨스 <크리스마스 캐럴> 中

 

 

사회 안전망과 복지를 유지하는 데에는 최소한의 기여를 하고 있긴 한 것이다. 다만 스크루지가 워낙 구두쇠인데다 기준이 엄격한 사람이라 남들 보기엔 좀 지독해 보이고 좋게 보이는 사람이 아닌 것은 맞다. 요즘 말로 하면 뭐랄까. 악덕 기업주 같은 느낌이라, 직접적인 피해를 입는 사람은 스크루지의 사무실에서 일하는 직원뿐인 것 같기도 하다. 하긴, 쥐꼬리만한 월급은 죄악이긴 하다. 그래. 그러네. 

 

 

하지만 <크리스마스 캐럴>이 주고자 하는 교훈은, 단지 돈과 관련된 것만은 아닌 듯 했다. 스크루지의 죽은 친구인 말리의 영혼이 하는 말을 들어보자. 

 


" 누구든 자기 안의 영혼이 주변 사람들 사이를 돌아다니며, 멀리 여행도 다니게 해줘야 하는 법이네. 그러나 생전에 그러지 못한 영혼은 죽은 후에라도 그래야 하지. 비통하도다! 세상을 떠돌아다니면서 산 사람들이 누리는 모습을 지켜보기만 해야 하다니! 이승에 있다면 나 역시 행복해질 수 있을 텐데! "

찰스 디킨스 <크리스마스 캐럴> 中

 

 

자신에게 너무 혹독하게 굴지 말고  살아있는 동안 즐거움과 행복을 맘껏 누릴 수 있어야 한다는 소리같다. 스크루지는 그러지 못한 사람이었으니까. 

 

 

그렇게 말리의 영혼을 만나고, 그 이후로 과거의 자신과 미래의 자신을 만나면서 스크루지는 많은 것을 깨닫고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다. 그 과정에서 유령의 입을 통해 상당히 심오한 이야기가 나오기도 한다. 

 


유령은 옷자락 안에서 아이 둘을 끄집어냈다. 비참하고 남루하고 놀랍고 소름 끼칠 정도로 처참한 몰골이었다. 아이들은 유령의 발치에서 무릎을 꿇고 옷자락에 매달렸다.

(...) 사내아이 하나와 여자 아이 하나였다. 얼굴은 누렇게 뜨고 비쩍 마른 데다 누더기를 걸치고 노려보는 눈길이 늑대처럼 섬뜩했다. 하지만 적개심 속에는 비굴함도 엿보였다. 저 아이들의 얼굴에 흘러넘쳐야 할 어린아이다운 순진함과 생기는 어디로 갔을까? 싱싱한 기운이 어루만져야 할 그곳을 세월의 풍상을 겪은 더럽고 쭈글쭈글한 손이 꼬집고 비틀고 갈기갈기 찢어 놓은 것만 같았다. 천사들이 차지해야 할 그곳을 악마들이 숨어들어서 으름장을 놓으며 노려보고 있었다. 신비하고 위대한 창조의 과정 중에 아무리 인간성을 변화시키고 타락시키고 왜곡하는 일이 있다 해도 이토록 끔찍하고 흉악하며 괴물이나 다름없는 인간을 만들어낼 수는 없으리라. (...)

" 인간의 아이들이지. 나에게 매달려 제 아버지로부터 구해달라고 애원하고 있다. 사내아이 이름은 '무지'이고 여자 아이의 이름은 '궁핍'이다. 이 두 아이를 경계하라. 그리고 이 두 아이와 비슷한 것들을 경계해라. 그러나 무엇보다 이 사내아이를 경계해야 한다. 내 눈에는 이 아이의 이마에 적힌 '파멸'이란 글자가 보인다. 그 글자가 지워지지 않는 한 이 아이를 경계해야 한다. 물리쳐야 한다! "

찰스 디킨스 <크리스마스 캐럴> 中

 

 

 

 

멋져보이는 문장이 있어서 그것도 남김

 

아, 차디차고 엄격하고 두려운 죽음이여,
여기에 너의 제단을 차려 네가 수하처럼 부리는 공포로 장식하라. 

 

 

 

그리고 스크루지 각성 최종본

 


스크루지는 자신이 한 약속보다 더 많이 베풀었다. 자기가 한 말을 모두 실천에 옮겼을 뿐만 아니라 그 이상으로 더 베풀었던 것이다. 꼬맹이 팀에게는 양부가 되어주기까지 했다. 스크루지는 그가 사는 훌륭하고 오래된 도시뿐만 아니라 이 세상의 다른 훌륭하고 오래된 도시와 읍, 자치도시에서까지 좋은 친구이자 너그러운 주인, 선량한 시민으로 알려졌다. 어떤 사람들은 스크루지의 달라진 모습을 보고 웃기도 했지만, 스크루지는 그들이 웃든 말든 내버려 두었고 별로 개의치 않았다. 처음에 사람들의 비웃음을 당할 각오를 하지 않으면, 이 세상엔 영원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 만큼 현명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런 비웃음은 눈을 감아버리면 그만이며, 사람들이 병을 앓아 별로 아름답지 않은 흉터가 남는 것보다는 차라리 비웃어서 눈가에 주름삼이 생기는 편이 낫다고 생각했다. 어째든 자신의 마음이 웃고 있으면 그걸로 충분했다.

찰스 디킨스 <크리스마스 캐럴> 中

 

 

 

나는 사실 스크루지가 그렇게 나쁜 사람이고 욕을 먹을만한 사람인 것 같지는 않다. 크리스마스에는 모두가 행복해야 한다는 것도 별로 공감이 안 된다. 그 시대, 그 문화권이 아니라 '크리스마스'의 의미가 그렇게 크게 다가오지 않아서인가보다. 

 

아무튼 잘 읽었다. 스크루지가, <크리스마스 캐럴>이 이런 내용이었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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