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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422 | 킬링로맨스 in CGV청담씨네시티

카랑_ 2023. 4. 24. 1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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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궁금한데 선뜻 결정은 못 내리겠고, 꼭 봐야 하는 건 아닐 것 같아 마음을 접었다가도 후기나 평들을 보면 기왕에 보는 거 영화관에서 제대로 보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에 몇 번이나 망설이고 고민했는지 모른다. 그러다 마침내 결심을 했고, 보았다. 

 

킬링로맨스

 

 

보고 나니 왜 호불호가 갈린다는 건지 알겠고, 나에게도 호라고 하기는 좀 어려울 것 같은데, 그렇다고 해서 대충 만든 영화라거나 터무니 없는 영화는 절대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흔하지 않은 방식으로 표현하고 연출을 해서 그렇지, 곱씹어보면 생각할 거리도 많고 놀라운 구석도 있다. 

 

코믹하고 동화적으로 포장되긴 했지만 본질적으로 여래가 겪고 있는 고통은 가정폭력이며, 가스라이팅이다. 그 주체는 존 나. 단순히 황당무계한 코미디일 줄 알았던 이야기의 이면이 매우 어둡고 묵직했다. 여래를 처음 만나는 순간부터 존 나가 불러제끼는 "행복"은 영화 후반부로 갈수록 점점 더 공포스러운 노래가 된다. 우리가 익히 알아왔던 노래의 분위기와 그 제목이 완전히 반전되는 것이다. 존 나의 "행복"은 여래의 자아를 꽁꽁 묶어두고 세뇌시키는 수단이 된다. 

 

이 노래가 이렇게 느껴질 수도 있다는 사실이 너무 충격적이었다. 어떻게 이 노래를 이렇게 해석할 수 있지? 감독은, 천재인가?????  영화를 본 후 다시 찾아 본 "행복"의 가사가 완전히 다르게 느껴졌다. 

 

그런 너는 뭐야 날 잊었던 거야 지금 내 눈에서 눈물이 흘러 배신감 느껴 < 배신감을 느끼고 복수를 다짐하는 건가????

할 말이 없어 갈 수도 없어 눈물도 없어 느낌도 없어  < 눈물(감정)도 없고 느낌도 없대;;;; 싸이코패슨가;;;;

약속된 시간이 왔어요 < 무슨 약속인데; 상호 합의된 약속은 맞는건지;

두려움에 울고 있지만 눈물을 닦아 주었어요 < 기쁨과 행복이 아니라 '두려움'에 울고 있다잖아;;;

 

하나하나 뜯어보면 진짜 뭔가 묘하다. 영화를 생각하면서 들어보면 정말 소름끼치게 무섭다. 밝고 행복한 미래를 보여주는 듯 했던 노래인 줄 알았는데 사실은 존 나의 집착과 통제를 고스란히 드러내는 노래였다는 게 너무 무섭다. 다시 생각할수록 정말 이 노래를 고른 감독님은 천재가 아닐까 싶고.

 

존 나에게서 벗어나려는 여래를 도와주는 조력자로 등장하는 범우는, 사실 굉장히 유약하고 우유부단한 인물이다. 심성이 착하고 여린데, 그래서 여래에게 희망을 품게 하기도 하지만, 오히려 여래의 계획을 방해하는 인물이 되기도 한다. 범우의 이름 한자가 혹시 무릇(보통) 범에 어리석을 우 이런건 아닐까 하는 건, 좀 너무 갔나. 범우때문에 속이 좀 터지긴 하는데, 그렇다고 미워할 수도 없다. 그리고 타조와의 교감을 통해 결국엔 존 나를 물리치는 데 기여한 것은 높이 살만하다. 범우의 이런 동물과의 교감 능력도 되게 엉뚱하고 어이없는데 영화 속에서는 다 납득이 된다. 그럴 수도 있지. 영화를 보다 보면 이런 마음으로 묘하게 설득이 되는 것이다.

 

 

그럴 수도 있지. 

 

 

동화 구연으로 시작해 동화 구연으로 끝난다는 점에서, 이 영화는 모든 게 다 납득되고 허용 가능해진다. 그냥 동화가 아니라 잔혹동화에 가까워서 그렇지. 웨스 앤더슨을 떠올리게 하는 동화적인 색감과 배경을 거쳐 '한국'을 배경으로 삼는 순간부터 이야기는 여래의 비극을 담은 잔혹동화가 된다. 존 나는 단순히 우스꽝스러운 미치광이가 아니다. 노래(행복)로 통한 세뇌와 지속적인 가스라이팅(억지 미소를 강요하고 2kg만 더 빼자고 하는 등), 간접적인 폭력(귤), 그리고 직접적인 폭력(다리를 잡고 질질 끌고 가는 등)이 펼쳐진다. 여래의 입으로 존 나가 살인도 서슴치 않는 얼마나 무섭고 끔찍한 사람인지를 들려주기도 한다. 

 

엔딩에서도 의견이 많이 갈리는 것 같은데 나는 엔딩도 마음에 들었다. 끝까지 여래를 지지하고 응원했던 여래바래와, 여래의 주제가였던 여래이즘이 만나 존 나의 행복을 이겨버리는 것. 그리고 존 나를 벌하는 존재는, 이 이야기는 어디까지나 동화이므로, 매우 비현실적이었지만 그래서 여래의 행복한 미래가 가능했던 셈이었다. 만약 여래나 범우가 직접 손에 피를 묻히게 되었더라면, 존 나의 몰락에 직접적인 역할이나 행위를 했었다면, 여래가 뮤지컬 영화로 컴백하는 스토리가 오히려 더 말이 안 됐을 것이다. 다소 황당할 수는 있으나 여래가 존 나로 인해 단 요만큼의 악영향도 받지 않을 수 있는, 그야말로 동화적이었던 해결 방식이 나는 꽤 마음에 들었다. 

 

거기에 더해지는 존 나의 이츠끗-이 ㅋㅋㅋㅋㅋㅋ 아 진짜 골때리고 너무 어이없는데 웃겨서 ㅋㅋㅋㅋㅋㅋ 

 

장면장면을 곱씹으면 꽤 재미있는 연출도 많다. 내가 금방 다 까먹는 바람에 지금 생각이 잘 안 나서 문제지; 

 

보고 나면 일단 배우들이 진짜 대단하다, 정말 연기 잘 했다는 생각이 먼저 들고, 그 다음엔 감독이 천잰가...? 싶어진다. 아니 진짜 장면장면을 잘 꾸미고 연출을 잘 했다니깐요. 익숙하지 않은 방식으로 해서 그렇지. 코미디 스릴러 판타지 뮤지컬 등등이 고루 섞인 복합장르인데 장르적 특성도 다 잘 살아있다. 정말 이 영화 뭐지... 감독 뭐지...

 

뭐랄까. 되게 분석하고 싶게 만드는 영화였다. 이건 무슨 의도로 이렇게 한걸까. 이건 왜 이렇게 했지? 

 

 

 

그리고 요런 감성의 영화, 이런 스타일의 감독 하나 쯤은 있는 게 우리나라 영화계에도 좋은 거 아닌가 싶다. 본인 스타일도 쭉 계속 지켜나가셨으면 좋겠고. 나 사실 보기 전까진 되게 저질 쌈마이 감성일까봐 고민고민 했었는데 보고 나니 전혀 그런게 아니어서 오해한게 미안하기까지 했다구... 그러고 보니 딱히 불쾌하거나 불편한 개그도 없었던 것 같고. 생각할수록 영화를 높이 평가하게 되네...?

 

이 영화 도대체 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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