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005 | 토스카나의 저주받은 둘째 딸들 / 로리 넬슨 스필먼
도서관 구경하다가 진짜 말도 안되게 표지와 제목이 마음에 들어서 빌려온 책.
이렇게 충동적으로 빌려온 책이 재미있고 마음에 들기가 쉽지 않은데, 과연.
토스카나의 저주받은 둘째 딸들 / 로리 넬슨 스필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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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요즘 날씨가 너무 기가 막혀서 맨날 밖에 나가서 책 읽고 혼자 행복해하고 있다. 요 며칠, 평소보다 훨씬 많은 책을 읽는데 아마도 이 기가막힌 날씨가 한 몫 했을 것. 무엇보다도 <토스카나의 저주받은 둘째 딸들>의 배경이 이탈리아다보니 요런 화창하고 눈부신 날씨 속에서 책을 읽으면 나도 마치 이탈리아의 한복판에 들어와 있는 것 같은 착각과 환상을 느낄 수 있다─는 건 그냥 내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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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볍고 발랄하고 경쾌한 이야기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완벽히 맞았고, 거기에 감동도 더해졌다. 여자들만 나오는 여자들 얘기이고, 그들이 나 자신을 찾아가는 이야기이다. '나'에 대해 인식하고, 깨닫고, 나아가는 이야기. 이것만으로도 너무 벅차고 너무 감동적이지.
거기에 인류 보편의 감정인 '사랑'이 첨가된다. 진짜 간단하게 요약하면, 재회를 약속한 옛 연인을 만나기 위해 이탈리아로 떠나는 한 여인과, 그 여인의 제안으로 함께 여행길에 오르게 되는 두 여인의 이야기- 정도 될 것 같은데 사실 이 안에 참 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다. 크게는 이 세 여인이 공통적으로 빠져 허우적대고 있는것처럼 보이는 '저주'라는 구렁텅이를 벗어나는 이야기이고, 각자 진정한 사랑을 찾는 이야기이기도 하며, 그들을 옭아맸던 여러 속박들로부터 벗어나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이탈리아 혈통을 지닌 미국 이민자 가족에 속해 있는 에밀리를 소개하며 시작되는 이 이야기는, 그 배경 소개만으로도 얼마나 폐쇄적이고 제한적인 환경인지를 충분히 소개한다. 거기에, '둘째 딸은 결혼하지 못한다'였나.. 아무튼 그런 웃기지도 않은 저주에 연연하며 너무 당연하게 이루어지던 둘째딸에 대한 세뇌와 부당한 대우같은 것들이 가슴을 답답하게 할 때 쯤, 구세주와 같은 인물이 나타난다. 바로 이 집안에 현존하는 가장 윗 세대의 둘째 딸, 포피이다. 그녀가 집안의 핍박받던 둘째딸들을 데리고 이탈리아로 떠나는데, 이탈리아로 떠난 이후로 진짜 이야기가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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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정도는 좀 진부할 수도 있다. '나'를 찾는 과정에서 필수 요소처럼 여겨지는 것이 '사랑'이고, '여성스러움'에 대해서도 찬양하기 때문이다. 다만 그것이 전부라고 말하지는 않는다. 지금도 "이것도 해 보고, 저것도 해 보고, 그러다 보면 네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찾을 수 있지 않겠니?" 라고 말하는 포피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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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피가 누구냐?
이런 사람이다.
"뭐라고요? 가브리엘이 개자식인 거 아셨어요?" 나는 소피아를 슬쩍 본다. 다행히 소피아와 루시는 이야기를 나누느라 바쁘다. "왜 저한테 경고하지 않으셨어요?" 내가 소곤거린다. "어제 그 사람이랑 나가게 두셨잖아요! 혹시 아세요, 우리가…?" 내 목소리가 점점 작아지다가 멈춘다. "물론 알지. 네가 열정을 경험하기 딱 좋은 때였단다. 그리고 가브리엘 같은 더러운 개자식은 요령이 아주 좋지." 포피가 나에게 윙크를 한다. 나는 이마를 문지른다. 어쩌면 언젠가 이 대화를 되돌아보면서 우습다고 느낄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
토스카나의 저주받은 둘째 딸들 中 |
포피가 리몬첼로를 한 모금 마신다. "그 영화를 보게 돼서 아주 신이 나. 아, 만들면서 얼마나 즐거웠다고." 이모가 영화 제작자였나? "무슨 영화요?" 내가 묻는다. "우리가 죽기 전에 주마등처럼 눈앞을 스쳐 지나간다는 거 말이다. 정말이지, 그 생각을 하면 흥분돼서 소름이 끼칠 정도란다. 있잖니, 내 영화는 부분적으로는 드라마이고 부분적으로는 미스터리이고 약간은 스릴러일 게다. 추가로 로맨틱 코미디 장면들이 섞여 있겠지." 포피의 갈색 눈동자가 춤을 추듯 움직인다. "얘들아, 너희들은 여전히 각자의 영화를 만들고 있는 단계에 있단다. 눈을 뗄 수 없이 매혹적으로 만들려무나! 모든 장면을 흥미진진하게 만들려무나! 너희들의 인생 영화를 볼 때가 오면, 눈물이 흘러내릴 수도 있고 자지러지게 웃을 수도 있고 창피해서 움찔할 수도 있겠지. 하지만, 제발, 너희들의 인생 이야기가 너무 지루해서 보다가 꾸벅꾸벅 졸게 하지는 말거라." |
토스카나의 저주받은 둘째 딸들 中 |
있잖니, 에밀리아, 모든 사랑에 열정이 필요하지는 않단다. 또한 모든 열정에 사랑이 필요하지도 않지. |
토스카나의 저주받은 둘째 딸들 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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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반부에 자꾸 눈물이 차올라서 애를 먹었다. 그러다 마지막엔 좀 울었지. 눈물이 나는 이야기다. 아름답고, 해피엔딩이지만, 그것이 아름다운 마무리가 된다는 점에서 울지 않을 수 없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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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모르고 빌렸는데 너무 좋았다. 자극적이지 않으면서도 재미도 있고, 감동과 교훈(?)도 주는 <토스카나의 저주받은 둘째 딸들>이었다.